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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우 Feb 24. 2024

신용회복 3년 차 투잡의 추억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마지막 근무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에 올린 글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신용회복을 시작한 지 벌써 만 3년이 되어 갑니다.  신용회복 첫 해는 집도 팔고 차도 팔고 그래도 1억이 넘는 빚을 안고 일자리도 못 구해서 전전긍긍하며 과일 노점상을 했었는데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네요. 예전에 제 글을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제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아실 겁니다. (물론 저 보다 더 어려움을 이겨내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23년 1월부터 투잡(아파트 보안경비+ 방제회사 영업사원) 뛰면서 겨우 먹고살았습니다. 살림만 하던 와이프까지 영업에 뛰어들어 다시 일어서 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운 한 해였습니다. 다행히도? 만족할 만큼 성과를 이루었고 빚도 좀 갚아가며 남들 사는 것처럼은 아니지만, 애들 학원비가 밀리고 공과금을 못 낼 수준은 벗어난 듯합니다. 



작년 한 해 정산을 해봤는데요. 우리 부부의 1년간 총 세후 입금액을 보니 80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습니다. 따져보니 그래도 1인당 한 달에 300만 원 넘게 벌었더라고요. 국민연금, 의료보험 연체 같이 통장이 압류를 당하는 수모는 이제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사업하면서 납부하지 못한 부가세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3000만 원 정도의 빚을 갚았고 4000만 원 넘게 지출을 했고(많이 썼네요) 택배차를 사려고 조금씩 모아둔 정도가 재산의 전부입니다.



저는 통계와 평균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는데요, 4인가족 기준 생활비 평균이 400만 원에 육박하더군요. 되도록이면 평균이하의 지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40대 기준 평균 수입을 보니 400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벌이 또한 평균보다 높게 벌기 위해 노력했었고 투잡을 뛰더라도 어떻게든 그것을 맞추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250+150 정도로 맞췄습니다.)



올해 목표는 투잡을 정리하고 3월부터 택배차를 중고로 사서 택배일을 할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영업일을 하는 회사에서 영업팀장 자리를 추천해 주시더군요. 열심히 하다 보니 윗분들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나 봅니다.  처음에는 사양했는데 고민 끝에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파트 보안요원은 2월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1년 4개월간 했던 투잡도 종료되는 시점이 다가옵니다. 사실상 보안요원은 방제회사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달을 대비한 생계형 철밥통이었는데요. 혼자서 밤새 CCTV앞에서 책도 많이 보고, 생각도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최저 시급 수준이었지만 분명 저에게는 다시 생활고에 빠지지 않게 해 줄 소중한 직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만났고(아파트 입주민, 미화 이모님들, 보안요원 동료들) 인생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보안요원으로 밤을 새우고 쪽잠을 잠시 자고 다시 영업일을 하러 가고... 그렇게 1년 넘게 살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퇴직을 준비하면서 지난 1년 4개월을 되돌아보니 연차 하나 안 쓰고 잘 모아 뒀더라고요.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새며 결근 안 하고 부지런히 벌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퇴직금, 연차수당, 연말정산 환급까지 하니 생각보다 큰 금액이더군요. 그중에 100만 원을 떼어다가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애들이 엄청 좋아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리는 넘게 남았지만 이 만큼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예전에는 매일같이 싸우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사이가 너무 좋습니다. 같이 영업 다닐 때 둘이서 차에서 회의하고 믹스커피도 타먹고 전략도 짜고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참고로 와이프도 같은 회사 영업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 팀장 돼서 실적 때문에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돼? 걱정하지 마! 내가 팀 실적 절반이상 채울 거니까..."



이젠 가장 든든한 팀원이고 일 때문에 바쁜와중에도 애들 공부며 간식이며 다 챙기는 든든한 아내입니다. 같이 돈 벌면서 저도 집안일에 동참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10년 외벌이 동안 집안일을 안 했습니다.)  장사할 때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설거지도, 빨래도 이젠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영업팀장 자리다 보니 실적에 따라 급여가 변하기에 투잡 때 보다 벌이가 못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것 때문에 사실 많이 망설였습니다. 



"언제까지 아파트 경비하면서 최저시급에 만족해할 거야? 몸도 약해 빠져 가지고 택배일은 퍽이나 잘하겠다. 당신 잘하는 거 해야지! 영업 잘해서 한 달에 천만 원 넘게 벌어야지! 언제 빚 다 갚고 집사고 애들 공부시킬래?"



투잡을 고수하던 저에게 아내의 잔소리는 비수를 꽂았습니다. 불과 3년 전 혼자 차 몰고 산밑에 가서 번개탄 피우고 죽겠다던 아내였는데 (실제로 시도했지만 불이 잘 안 붙고 애들 생각나서 돌아오긴 했음) 아내도 저도 많이 단단해지고 강해졌나 봅니다. 이제는 아내가 더 영업을 잘해서 제 투잡을 합한 금액을 종종 뛰어넘기도 했고 불과 1년 만에 영업왕 타이틀도 따서 고인 물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여자 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고 그랬지...'



하필 제가 그때 읽고 있던 책이 자청의 '역행자'였는데 

'95프로의 순리자들처럼 안주하며 살 것인가. 

'5프로의 역행자처럼 도전할 것인가...

선택과 집중의 시간이 온 듯합니다.



'그래 다시 도전해 보자!! 투잡 접고 영업에 올인해 보자!'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저도 빚 다 갚고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걱정 없이 살 날이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 힘드신 사장님들... 인생은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라고 하더군요. 남들이 앞서 나가고 격차가 멀어져서 의기소침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한 순간일 뿐... 내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히 달리다 보면 꼭 목표하는 정상에 오를 거라 믿습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니까요. 



지금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다 함께 

정상에서 만나기를 바라겠습니다.



응원해 주시는 사장님들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은우


10년간 회사생활 후 7년간 자영업자

코로나 이후 폐업 / 신용회복 3년 차

슬기로운 신용회복기 극복 에세이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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