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체체파리의 비법'을 읽고-2
집정리가 한창이다. 물건 기부를 하고 온다. 전에 봉사활동을 했던 아름다운 가게는 여전하다. 오랜만에 오니 퍽 정겨운 이 곳을 지나 카페로 운전해 간다. 집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이 소설은 어쩌면 때가 되어 만난 것이겠지. 차에선 한영애 씨의 '조율'이 흘러나온다.
"알고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도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내가 믿고 있는 건
이 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
내일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조율 한 번 해주세요."
소설을 읽으며 작가는 어떤 조율을 바랬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팁트리 주니어의 대표 걸작선 중 잘 알려진 '체체파리의 비법(The screwfly solution)'은 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이란 작가가 가명 라쿠나 셸던을 사용해 쓴 책이다. 아메리카 대륙 열대지방에 분포하는 screwfly가 아프리카에서 사는 체체파리(tsetse fly)로 오역되어 국내에 들어왔다. solution 또한 '생식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전체 환경에 해를 입히지 않고 해충을 없애는 해충구제법'을 의미한다. 내가 읽은 책에서 번역자는 나사파리 혹은 검정파리라고 옮기면 그 의미가 제대로 전해지지않고 이전 국내 독자들이 체체파리의 비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제목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소설 도입부엔, 체체파리가 전염시키는 수면병을 예방하고자 남미 콜롬비아에서 생물학적 해충 구제법을 연구하는 한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생물학적 해충 구제법이란 체체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수컷이 암컷에게 무심하게 만드는 실험이다. 떨어져있는 아내 앤과 딸은 주기적으로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웃이자 자신의 연구 동료인 바니의 자료들도 함께.
앤이 보낸 편지와 자료들엔, 미국에서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신흥종교 단체가 여자들의 음부를 칼로 찔러서 죽이는, 페미사이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여성을 악으로 규정하고, '섹스라는 비천한 번식방법을 그만둘 때 진정한 영적 진화가 이루어진다.' 는 신념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이에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처음엔 이 종교 단체만의 문제인 줄 알았으나, 점점 남성들이 여성을 공격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그렇다. 남성들이 집단 페미사이드를 일으키는 감염병이 돌고 있었다.
이 정신병은 북위 30도부터 쭈욱 남하하여 아내도 위험의 대상에서 피할 수 없었다. 여성들의 시신이 넘쳐나 장례식에서는 여성 시신을 받지 않고, 따로 여자 보호 구역이 생기는 등 사건이 심각해지자 주인공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 집으로 가려고 한다. 가는 길의 공중 화장실에 쌓여있는 여성들의 시체를 보며 이미 미국에도 문제의 괴질이 만연하고 있음을 알고 식은땀을 흘리지만, 공항에 들어서 안도하며 오랜만에 만날 앤과의 섹슈얼한 조우를 상상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성기가 아니라 칼을 음부에 찔러넣는 상상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자신도 감염된 것이다. 주인공은 앤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리고 자기가 절대 아내와 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하고 자신을 격리시킨다. 아빠의 울부짖는 모습에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경계하는 엄마의 판단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춘기 딸이 주인공에게 찾아간다. 결국 주인공은 딸을 죽이고 자살한다.
이제부터 살아남은 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을 거의 다 죽이자, 이젠 아이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감염당하기 전 바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숲의 오두막으로 피신할 수 있었던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얼굴에 바른 흙을 바르며 고독하게 도망다녔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이고 다니며 종종 천사와 같은 하얀 존재를 보았다고 한다. 앤도 그 존재를 보았다.
하지만 앤은 행여나 미래의 바니가 보게될 기록에 다르게 말한다.
"나는 바위 밑에 앉아서 그 형상을 지켜봤는데, 집어 든 물건을 보이지 않는 견본 주머니에 집어 넣는 것만 같았어요. 바니, 혹시 이걸 읽게 되면 기억해요. 여기에 놈들이 있어요. 그리고 난 놈들이 우리에게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알아서 멸종하게 한 거죠.
왜냐고요?
사람들만 없으면 좋은 곳이니까요. 그런데 사람을 어떻게 없앨까요? 폭탄, 살인 광선.. 다 미개한 방식이죠. 엉망이 되어버리고요. 전부 부서지고, 구덩이가 패고, 방사능에, 땅을 망치죠.
이런 식으로 하면 혼란도, 호들갑도 없어요. 우리가 체체파리에게 했던 것처럼요. 약한 고리를 집어서 공격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뼈만 몇 개 남죠. 비료로도 괜찮을 테고.
친애하는 바니, 잘 있어요. 난 봤어요. 그게 와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천사가 아니에요.
난 부동산업자를 봤다고 생각해요."
이 휘몰아치는 앤의 무력한 독백에서 나는 숨이 막히기도, 예민해지기도 했다.
꽉 닫힌 고립감과 겁에 질린 이 공간감이 너무 잘 느껴져서일까.
또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자신을 사냥당하는 동물들에 빗대는 앤의 한마디 한마디가 말도 못하게 답답했다.
소설의 은유들에서 느껴지는 문명에 대한 혐오감, 여성으로서의 절규가 돋보인다. 앤은 그동안 내가 쌓아온 부와 학력 이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페미사이드에서 자기자신이 죽게 된다면 묘비에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천한 영장류, 여기 잠들다"라고 쓸 것이라 말한다. 숲 속에서 사냥당해 스튜가 된 암사슴의 눈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이빨 없는 짐승, 체면 걸린 토끼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SF소설에서 미지와 공포의 단골 소재인 외계인과 벌레. 디스트릭트9처럼 아예 벌레 외형을 한 외계인 또한 자주 나온다. 하나는 어떤 신체를 가졌는지 그려낼 수 조차 없는, 바깥 세상의 존재. 하나는 신체가 너무나도 우리와 다르게 생겼지만 힘조차 없어보이기에, 이 이질감을 이해하려 들 필요조차 없는 존재.
이 소설도 마치 인간이 체체파리 방역을 하듯, 외계인이 인간을 방역하는 서사를 그려낸다. 외계인에 대한 공포와 벌레에 대한 혐오. 이 상관성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해충 구제 방역은 크게 물리화학적 방제와 생물학적 방제로 나뉜다. 약물 살포는 내성이 생기기에 이 책의 주인공 또한 수컷이 암컷에게 관심이 사라지게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방제법을 연구한다. 이 방제법을 책에서는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방제법이라 묘사하고 체체파리를 그저 수면병만을 옮기는 해충으로 취급하지만 소설 쓰던 당시의 시대상이 그랬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때 보건학을 공부하며 해충 공부를 아주 짧게 했었다. 그리고 꽤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WHO에서는 해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분류한다. 감염매개체(vector)와 피해야기체(Pest).
Pest는 농작해충, 문화해충, 외래도입해충 등으로 다시 몇 가지로 나뉘는데, 내가 인상깊게 본 것은 불쾌해충(Nuisance)였다. 한 때 서울을 뒤집어놨던 러브버그가 Nusiance의 대표적인 예이지 않을까 싶다. 이 정의는 위험하지 않나 시선이 자꾸만 머물렀다. 상대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내 생존과 직결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 경계하는 마음, 막고자하는 마음의 경계는 어디까지 두어야할까. 간접적인 피해가 계속해서 지속될 때 내 삶을 깎아먹는 기분이 공감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세계보건기구에 공식적인 단어로 등재되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 속에 살고있는 나라면 무언가를 놓쳐도 단단히 놓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쩌다가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어 바라본 벌레들의 삶은 맑고 단단하고 정제되어 있었다. 모기를 예로 들어보자. 모기는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과정을 거치는 완전변태곤충이다. 대부분의 완전변태곤충들은 번데기 시기에 애벌레 상태에서의 자기 몸을 완전히 녹여 성충으로 변화한다. 상상이 가는가?
사람도 10년에 한번씩 크게 몸의 세포들이 뒤바뀌는 시기를 거치고, 우리는 보통 그 시기에 대운이 변한다고들 한다. 그 시기엔 몸이 크게 아파오는 진통의 시기를 거친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성숙'해가는 과정이라 부른다. 이들 또한 '성숙'해져 몸의 엄청난 변화를 거치는 데에 고통이 없을까? 이 번데기 시기에 다양한 숙주천적들이 들이닥치기도 하기에 성충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나는 몸의 형질을 바꾸는 성실함에 감탄이 나온다. 성충이 된 모기는 따뜻한 피를 가진 동물들에게는 한없이 귀찮고 화를 부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개구리나 뱀 같은 양서류 동물들이나 수서곤충들에겐 꼭 필요하다.
변태하여 성충이 된 곤충들의 삶은 길지 않다. 짝짓기가 끝난 뒤엔 대부분 죽음을 택한다. 피를 빠는 모기도 평소엔 과일이나 수액, 이슬이 주식이며 임신 중의 에너지 보충을 위해 잠깐 피를 마신다. 모기 외에도 성충이 된 반딧불이는 입이 없이 완전변태하기도 한다. 유전학 연구에 초파리가 많이 사용되는 이유 또한 세대 교체가 빨라 다양한 형질의 결과를 빠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벌레들은 우리와 다른 생존전략을 택했을 뿐이지 무시하거나 귀찮아하고 혐오할 존재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원초적인 본능처럼 벌레를 혐오하며 상상력의 세계에 늘 벌레를 공포의 존재로 바라볼까? 그리고 이 공포를 그저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그 공포가 실질적으로 없어지는 것일까? 여기에 답을 해주는 평행의 존재가 이 소설에서는 외계인, 즉 부동산업자로 느껴진다.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페미사이드를 해결하는 세상까지 그려내진 않는다. 여전히 전쟁이 있고, 집 앞에 살충제의 주성분인 국화는 보기 힘들지만 방 안에 살충제는 당연하게 존재하는 한 면의 세상처럼.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