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에 대하여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체체파리의 비법'을 읽고-1

by 운주

본가로 돌아와 계속해서 집정리를 한다. 책정리를 하다보면 내가 지나온 의식의 흐름들과 욕망이 보인다. 집어든 책은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체체파리의 비법'. 한 때 SF 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아 레퍼런스로 사둔 수많은 SF소설들 중 한 권이다.

중고서점에 팔지 말지 고민한다.

흠.

작가소개부터 펼쳐든다. 이내 결정한다.

아-, 대표작 '체체파리의 비법'만이라도 꼭 읽어야겠다.


이 책을 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이하 셸던)으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치던 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CIA 정보원과 공군 조종사, 군 정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셸던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 받은 경험이 많았기에, 작가의 영역에서까지 '여성-SF작가'라는 이름이 붙기 싫어 필명을 남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1970년대 당시 SF소설계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재조명을 받는 등 역동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다양한 여성 작가가 나오며 그만큼 요즘 SF소설은 예전만 못하다-는 백래쉬가 강하게 일어나기도 했는데, 40대 중년 남성으로 행세한 그는 성, 자아, 환경, 인간에 대한 어둡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녀는 작가계의 젠더 교란자로 감쪽같이 활동하며 "가장 남성적인 SF를 쓰는 남자", "페미니즘 SF를 쓰는 헤밍웨이"로 더욱 그 존재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70년대 SF계의 주요상을 독점하다시피한 팁트리는 1976년 마침내 남편을 둔 60대 할머니라는 사실이 세상에 우연히 알려진다. 작가가 여성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SF 업계는 깜짝 놀랐다. 이를 '팁트리 쇼크'라 회자할 만큼 이 사건의 파장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정확히 안다, 문체가 대담하고 남성적이다, 팁트리는 분명 고위 관료직의 남성일 것이다-와 같은 찬사들에 시원하게 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팁트리의 소설들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셸던은 사회의 압박을 받으며, 당시에 썼던 원고들을 모두 불태워버릴까 고민했지만 그 이후로도 10년 정도 작가 생활을 더 유지한다. 하지만 셸던은 성별을 둘러싼 소란으로 큰 심리적 압박을 받기도 하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지지했던 남편의 알츠하이머 병세 악화, 의붓딸의 자살, 모친상 등 연이은 개인적 어려움을 겪으며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1987년 남편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눈먼 남편을 총으로 쏜 뒤 자신도 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의 동반자살은 합의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셸던의 생애사와 문체에 흥미가 생겨 좀더 찾아보았다. 셸던은 생애동안 두 사람의 남성과 결혼했는데, "결혼한 남자들을 무척 좋아하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부터 마음에 불을 붙이는 상대는 언제나 소녀와 여성이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단다. 나는 여기서 깔깔 웃음이 났다. 남성적인 문체라 찬사받은 그녀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알 것만 같기도 해서, 지극히 그녀가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난 여성 작가들의 삶을 늘 주의깊게 들여다보았었다.

해방감과 상상을 마음껏 풀어놓는 것이 자기자신에게, 사회에게 무슨 의미인지 볼 수 있어서일까.

체체파리의 비법이라는 소설을 막상 읽었을 땐, 사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세상에 대한 그녀의 압박감이 고스란히 글에 녹아 이종(체체파리(screw fly, 원문에서는 나사파리이지만 한국에서 체체파리로 오역))에 대한 혐오로 넘어가는, 답답하고 꽉 닫힌 느낌을 받았다.

이런 소설에 남성적인 문체라는 찬사를 보내는 세상이라면, 나는 내 이름을 떳떳이 드러내고 표현하며 살고싶지 않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그녀의 생애사를 찾아봤을 때 아주 조금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싶나 고민한다.

그림, 글과 같은 내 모든 창작물들은 내 섹슈얼리티, 즉 고유성과 직결된다. 무엇이 되었든 내 손을 떠나가는 이것들은 여기저기 읽히며 '나'로 있고싶어 썼던 내 욕망들에 다시 도전해올 것이다.

나는 얼마나 세상에 나를 던질 준비가 되었을까.


천천히, 천천히 내 안의 무언가를 더듬는다.

내가 가진 지 채 몰랐던 많은 것들과 함께.


'이소연씨의 판타지 읽는 밤' 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먼저 길을 찾아 기꺼이 나눠주는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fantasyworld/knowledge/contents/230426220656945z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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