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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Aug 14. 2024

09. '우리' 학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합격자 발표 다음날에는 곧바로 신입생 예비소집이 진행되었다.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진행된 예비소집에서는 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 대한 안내를 받았고, 수학과 영어 과목 진단 평가에 응시했다. 시험 결과에 따라 상위 50퍼센트와 하위 50퍼센트가 나뉘어 각각 다른 분반에 배정될 터였다.


아직 교복을 맞추기 전이라 각기 다른 옷을 입고 모인 낯선 얼굴들은, 모두 야무지고 생기 있어 보였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합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에도 나는 내가 이뤄낸 성과가 선명히 잡히지 않았다. 그저 운이 정말 좋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미 아는 사이인 듯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 없던 나는 여기가 내 자리가 맞을지 자꾸만 의심하게 됐다. 합격의 기쁨으로 들떠있던 어제와는 다르게.


진단 평가를 보러 이동한 교실에서 배정된 나의 자리는 창가 쪽 맨 뒷자리였다. 시험지가 배부되기 전 텅 빈 책상 위에서 긴장한 얼굴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 보니, 결국 볼펜이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낙하했다.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나보다 먼저 팔을 뻗어 볼펜을 줍더니 내 책상 위로 살짝 건네주었다. 굳이 호의를 베풀지 않아도 될 만큼, 나에게 훨씬 더 가까운 위치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친절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 아이가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대감이 처음으로 들어서.


그 생각이 산산이 부서진 것은 시험 종료령이 울린 직후였다. 그 아이의 영어 시험지를 걷을 때 답안지를 빼곡히 채운 필기체를 보고 나는 감탄 섞인 기겁을 마음속으로 내질렀다. 영화 소품으로 쓰일법한, 내가 채점자라면 내용을 읽어보지 않고도 최고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정갈한 글씨체였다.


역시 뭔가 다르구나. 남다른 사람들이 모였구나. 잠시나마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던 것 같아 조금 민망했고 약간 기가 죽었다. 그런 기분을 달래기 위해 나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팔짱을 단단히 꼈다. 팔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말했다. 진단평가, 영어는 풀만했고 수학은 좀 어려웠어. 실제로 나는 영어는 상위 50%인 A반에, 수학은 하위 50%인 B반에 배정받았다. 그건 어쩌면 첫 번째 지각변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때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던 과목은 늘 수학이었으니까.


그다음 날에는 교복을 맞추러 갔다. 녹색 줄무늬가 그어진 셔츠는 팔에 부드럽게 감기지 않았고 끊임없이 바스락거렸다. 허공을 배회하며 붕 떠 있는 느낌. 실제로 나는 졸업식날까지도 그 셔츠가 몸에 편하지 않았다.


안착하지 못했다고 느낀 건 교복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늘 나의 고등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바다 위에서 흘러가는, 가끔씩은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익숙하고도 익숙한 내 이름 세 글자가 학교 로고 옆에 위치하기만 하면 도무지 내 것 같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면학실 이름표를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일기장에 붙여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내 이름이 도무지 나에게 달라붙지 않아서. 그렇게라도 붙잡아야 할 것 같아서.


내 고등학교 생활의 시작은 코로나와 함께 했다. 우리는 입학식조차 하지 못한 기수였다. 그럼에도 나의 1학년은 얼어붙은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처음 교실에 발을 들이는 유월이 오기 전까지 많은 학교와 학생들의 시간이 정체되어 있었지만, 이곳에서만은 시간이 착실하게 흘러갔다. 화상회의로 동아리 면접을 진행했고, 댓글로 영어 토론을 진행했다. 그 흔한 ebs 강의 한 번 듣지 않고 모든 수업이 실시간 또는 자체제작 영상으로 진행되었다. 학교의 대표 학술 교류 프로그램이었던 심포지엄 역시, 외국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온라인으로 충실히 진행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약간의 고양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남다른 집단에 속해있는 것은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수면 위에 누워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한 번씩 물속에 잠길 것 같은 파동이 찾아왔다. 나는 과연 이 학교에 어울릴 만큼 대단한 사람일까. 충분히 잘 해내고 있을까. 들뜨고 설렜지만 절대 편안하지는 못할 나날이었다. 나는 왜 아직도 내가 이 학교 학생 같지 않은 건지.


나에게 ‘우리’ 학교는 여전히 내가 졸업한 중학교였다.

면학실에 배정된 온전한 나의 자리는 늘 다리 아래에서 삐그덕거렸다.

친구들이 ‘집’이라고 부르던 기숙사를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끌어안지 못한 채 그저 어떻게든 해변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바다 위에 머무르려고 끊임없이 물결을 휘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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