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문과 권유를 받다

합리적이면 바람직한가

by 레톤

우리 학교에는 ‘집현’이라는 이름의 일종의 스터디 그룹이 있었다. 대여섯 명 정도가 자유롭게 모여 유체역학, 분자생물학, 노동경제학 등등 교과목으로 개설되지 않은 세부 분야를 공부하는 활동이었다. 동학년끼리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선후배가 함께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선배님이 게시한 집현 모집 홍보글을 발견한 친구가 나에게 같이 지원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같이 하면 재밌긴 하겠다. 분야가 뭔데?

논리학.


듣자마자 단번에 흥미가 생겼다. 논리학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수학에 있어 증명을 제일 좋아하긴 했다. 모순이 생기지 않게 각종 조건들을 덧붙이고,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탄탄한 그물을 엮어 나가는 것. 나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같이 문자 지원을 한 뒤 면접까지 봤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던 도중 담임 선생님과 짧은 상담이 있었는데, 논리학 집현에 지원했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음, 그래도 진로 관련된 쪽으로 활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생기부에 기록되는 활동이니까, 약학이랑 관련된 화학이나 생물 쪽으로.


일리 있는 말씀인 것 같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문이과 구분이 없는 학교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이 존재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암묵적으로 제한하는 통제선이. 논리학 집현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지만 결국 거절 문자를 보냈고, 다른 화학 집현에 지원해서 들어갔다. 잔잔하게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기가 흘러가던 중에 선생님은 나에게 180도 뒤집힌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너 문과로 갈 생각은 없니?


네? 문과요? 눈을 크게 뜬 내 앞에서 선생님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첫 중간고사 때 국어랑 영어 점수가 높기도 했고, 평소에 지켜봐도 글이나 책 좋아하고, 문과 성향이 강한 것 같아. 아직 1학년 1학기고 진로는 이왕 바꿀 거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한번 생각해 볼래?


어… 글쎄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한국사 점수가 너무 처참한데요… 문과는 싫다기보다 그냥,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반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늘 내가 국어에 제일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과의 기반은 국어 아닌가. 평균 99점이 일상이었던 중학교 성적표에서 단 한 번 91점을 받았던 국어 점수가 커다란 트라우마이자 오점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이후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더불어 우리 기수는 200명 중 문과가 60명에 불과했고, 비주류에 속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9등급제 내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문과 과목은 수강자수 자체가 적다 보니, 상위 4%인 1등급을 받는 학생이 한 명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한 과목당 분반도 적게 열렸기에, 대학교처럼 수강신청을 하는 우리 학교에서는 원하는 시간표를 짜기도 어려웠다. 동시에 그런 환경 속에서도 소신을 지킨 만큼 한 분야에 진심인 친구들이 많아서, 경쟁은 늘 치열했고 점수대도 촘촘했다. 도저히 그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난 특별히 좋아하는 문과 분야도 없는걸?


하지만 1학기가 끝날 즈음에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인문논술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것이다. 당시의 나는 글쓰기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과제나 숙제로 어쩔 수 없이 쓸 때 남들에 비해 조금 더 쉽게 쓰고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감각 정도만 있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간 건데, 금상이라니. 담임 선생님은 조심스럽던 어투를 이제는 확신으로 바꾸어 나를 설득하셨다. 세연아, 너는 확실히 인문계열에 소질이 있어. 진로 고민 진지하게 다시 한번 해 봐.


줏대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고집 있는 성격은 맞기에 그때까지도 나는 그러한 조언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것이 정말인 것 같다. 내가 문과 계열에 아주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이 말에 드디어 나의 적성을 찾았다며 냉큼 방향성을 틀어버렸을 텐데.


그 대회는 수상자 명단이 공개적으로 발표된 첫 번째 대회였는데, 그래서인지 그즈음에 새롭게 안면을 튼 친구들은 내 이름을 인트라넷에서 보았다며 언급해주기도 했다. 내가 당시에 느꼈던 그 상의 가치는 딱 그 정도였다. 자랑스러운 간판까지는 아니고 그냥 배지 하나 수집한 느낌. 그래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이 좋고 화학이 좋다며 이과의 길로 고집을 밀고 나갔다.


1학기 기말고사 때는 수학 점수에도 소소한 상승이 있었다. 2학기에는 A반으로 반을 옮길 수 있는 점수였다. 하지만 과학 점수는 제자리걸음이었고, 계속 이과에 머무른다면 2학년 때는 과학 과목을 압도적으로 많이 수강하게 될 터였다. 과연 그때 내가 성적을 올리기는커녕 유지는 할 수 있을까?


당시 논술 주제는 ‘합리적이면 바람직한가?’였다. 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로봇이 건장한 형사와 어린 소녀 중 생존 확률이 더 높은 형사를 우선하여 구한 건 분명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마냥 바람직하지는 않다. 형사 자신이 본인이 아닌 아이를 구하라는 진심 어린 명령을 내렸기에 더더욱. 합리성과 바람직함은 애초에 이성과 감성이라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기에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도, 늘 함께할 수도 없다고. 열일곱 살의 나는 그렇게 종이 한 바닥을 채워 나갔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댔다. 당장 합리적인 건 문과로 옮기는 거지만 그래도 난 이과 수업들을 들어보고 싶어. 성적이 영원히 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어. 내가 바라는 것을 추구했으니 합리적이지는 못해도 바람직한 삶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고 수없이 많은 가정법이 머릿속에 잔상을 남겼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