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초밥 인생관

제주도 여행기 03

by 레톤

우리가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곳은 분홍색 벽지의 기숙사 세탁방. 밤 11시 30분까지 이어지던 저녁 면학이 끝나면 나는 가끔씩 고개를 쭉 뺀 채 여섯 자리쯤 떨어져 앉은 친구를 바라봤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다 좀 떨자는, 우리끼리만 아는 암묵적 신호. 빽빽하게 늘어선 세탁기들 사이로 들어서면 레몬 향과 가루세제 향이 새하얗게 뒤섞였다. 그곳만은 전등이 너무 밝고 환해서 핫핑크색 수박 스무디를 마시는 것마냥 시린 기분이 들었는데, 너는 늘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라.


그날은 당장의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이야기 위로 오르내렸다. 깊게는 진로나 미래 계획, 얕게는 학교 밖에서 먹고 싶은 메뉴 같은 것들. 고등학생의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음식은 계란초밥이었다. 왜 급식으로는 나오지 않는 걸까, 하고 말 같지도 않은 트집을 잡다가 나는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웅얼웅얼 말했다. 계란초밥 전문점...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씩 해. 온갖 종류의 계란을 온갖 방법으로 조리해서 초밥으로 내오는 거야. 성인이 되면 혼자 회전초밥집에 가서 계란초밥만 몇 접시 먹고 나오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


반쯤은 웃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너는 그저 조용조용히 대답했다. 멋진 어른의 기준이 재밌고 멋있다. 나는, 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편하게 밥 사줄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행복할 거 같아.


그것도 멋진데.

있잖아.

응?

우리 마흔 살 되면 한강 보이는 바 가서 와인 마시자. 챙 하고 와인잔 부딪히면서.


그때 너의 문장 속 장소는 왜 하필이면 한강이었을까? 왜 많고 많은 주종 중 와인이었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던 건 손에 잡히는 미래가 아니어서였다. 거창한 목표가 아님에도, 어쩐지 영원히 받지 못할 생일선물처럼 느껴져서. 그렇지만 나는 당장 두 손에 쥐여줄 수 있는, 기약 없이도 확실한 대답을 했다.


그래, 그러자.


꿈을 이룰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지난 겨울 친구는 가보고 싶은 회전초밥집이 있다며 공유해 주었고,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나는 그곳에서 계란초밥만 네 접시를 먹었다. 혼자 간 것도 아니었고 디저트류도 두어 접시 먹었으니 완벽히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강에서 돗자리를 펴고 와인을 마신 적도 있고, 성수동 바에 가서 잔을 부딪힌 적도 있으니 그날의 약속도 비슷하게나마 실현되었다. 미래라는 건 생각만큼 손에 쥐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로망이 하나씩 실현되는 건 즐거웠지만, 기대가 하나씩 지워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주도에 혼자서 오래 머무는 것도 갈망하던 하나의 꿈이었는데, 이번 여행이 끝나면 과연 나에게 뭐가 남아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숙소에 짐을 풀고 택시를 불렀다. 제주 내에서도 제일 가고 싶었던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그렇게 도착한 곳은 유민 미술관. 다른 곳은 계획이 틀어진다면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는데, 이곳은 유일하게 꼭 들르고 싶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까맣고 건조한 건물의 분위기에 어릴 적 읽던 그리스 신화들이 떠올랐다는 맥락 없는 감상 때문이려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계란초밥도 뭐, 특별한 까닭을 가지고 좋아했던 것은 아니니.


미술관에 도착하자 주변 풍경으로 눈이 트였다. 광활한 초원과 몰아치는 바다,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갈색 말 한 마리. 그리고, 파랑과 초록으로 뒤덮인 자연 위에 홀로 무채색으로 세워진 미술관. 그 조화가 비현실적으로 잘 어울려서 표를 발권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아껴 걸었다. 현무암 액자 같은 네모난 입구를 지나자 좌우 벽에서 폭포처럼 물이 흘렀고, 더 이상 형용할 표현들도 잊은 채 나는 열심히 되새기고 되새겼다. 살면서 본 건축물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공간 자체에게 이렇게까지 압도된 적이 있었나? 그 길의 끝에는 돌벽 위 가느다란 틈 사이로 성산 일출봉이 보였다. 누군가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려주었을 때 그 손틈 사이로 보이던 짧은 빛 한 줄기 같았다.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건물이 자처해서 액자가 되어 주는 느낌. 햇빛에 맨살이 타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들여다보고 난 뒤에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둘러보아야 했던 내부 전시는 유리 공예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질서 있고 차갑던 미술관의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다채로워 그 역시도 찬찬히 둘러보게 되었다. 동굴 속에 들어와 하나의 자각몽을 꾸는 기분이 이어졌다. 수년이 지나도 영원히 비일상으로 남아, 두고두고 나를 오늘의 스물두 살로 되돌려주고 말 그런 순간.


사실 이곳에 오면 제주라는 장소를 더 이상 꿈꾸지 않을 줄 알았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었던 건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이니까.


무엇을 봐도 설레지 않고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고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린

처음을 더 이상 만날 일 없는

닳을 대로 닳아빠진 어른이 되어 버리고 싶었어.


기대했던 카페에 갈 때, 또는 보고 싶었던 영화가 개봉할 때 늘 스스로에게 새기는 소원이 있다. 한 번의 경험만으로 만족하고 끝나기를. 다시 오고 싶다는 욕심이 내 안을 차지하지 않기를. 나는 인생 전반에 바람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 번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가져야만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의 가치를 깎아내리려고 애써 노력했다. 당연하게도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는데, 갈구하고 발버둥 치는 그 모든 과정이, 좀, 징그럽게 느껴져서.


그렇지만 그날은 무구함으로 끝없이 들떴고, 극단에 치우친 마음으로 두 시간을 걸었다. 나이가 바뀔 때마다 이곳에 계속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애란 작가님의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문장은 늘 이런 방식으로 나를 치고 지나갔다.


고등학생 때 가졌던 꿈은 정말 단순히 계란초밥이 너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회전초밥집에서 혼자 단일메뉴만 먹으면서도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단단함, 가성비 떨어지는 식사임에도 편하게 누리는 경제적 기반, 이 모든 것들을 여유롭게 만끽하는 마음의 안정감, 그런 것들이 갖고 싶었다. 내게 없는 정서적 고요함이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으니, 내 꿈은 아직 나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구나. 폐장 시간까지 미술관에 머무른 뒤, 숙소로 돌아올 때에는 섭지코지를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더운 날 2km에 가까운 거리를 걷지 않았으니 도로에 사람은 없었고, 내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려 나갔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걷고 한 걸음 돌아보면 노을이 지는,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기에 차를 타는 미래는 조금 유예해 두기로 했다.


그날은 파도와 새소리를 듣는 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네 개의 곡을 무한히 반복해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이었다. 가사가 뒤통수를 친다는 점에서 좋아했다. 제목도 예쁘고 어조도 나긋나긋하면서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는 고백이라니.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며 나도 내 꿈의 뒤통수를 칠 용기를 조금 얻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이번에야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여유가 없고 불안은 많다고. 그렇지만 그 불안정을 하루빨리 교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저녁 아홉 시가 넘어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사장님께서 돌하르방 모양의 얼음을 얹은 말차 빙수를 만들어주셨다. 빙수 그릇을 들고 방으로 돌아갈 때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와 같이 걸어가 주었다.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자랑이 섞인 생존 신고를 보내며 생각했다. 그때의 네가 떠올린 한강과 와인 뒷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꿈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나도 내 꿈의 이면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어.


그러니 마흔 살이 되면 너랑 꼭 와인을 마시러 갈 거야.

너는 너의 말을 벌써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2025.08.13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