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8월 11일
열이 너무도 크게 나는 밤이었어 물 없이 씹어먹은 해열제는 텁텁했고 눈앞에서는 자꾸만 흰색이 녹아 흐르더라 흰색은 인간의 색이 아니라던데 그렇다면 나는 신의 손거울을 엿보고 있나 신의 옆자리에는 과연 네가 앉아 있을까? 돋보기로 태양을 반사해 하늘에 쏘아붙이고 싶을 때가 참 많았지만 네가 그곳에서 사랑받고 있을까 봐 그러지 못했어 너의 옷깃은 조금도 태우고 싶지 않으니
한여름을 한겨울처럼 사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본 적 있으려나 나에게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고 어릴 때는 그런 밤마다 비몽사몽 일어나 해열제를 한 스푼씩 먹었어 물도 한 잔 마시고 약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기를 잠시 기다리다 그대로 누워 잠들면 아침에는 가뿐해지곤 했지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두 눈으로 꼭 확인해보고 싶어졌어 열이 어떻게 차올랐다 지는지 달 관측 일기를 그리던 열두 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말이야
시체의 기분으로 몸을 늘어뜨리자 기운이 비운 자리에는 오한이 들어앉았어 내가 좋아하는 새벽의 시간이 주혈색으로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을 때쯤 시침이 손가락을 부딪혔고
탁
순간 두통도 인후통도 썰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더라 해열제의 약효가 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32분 그걸 알게 되어 나는 분명 기뻤는데 차게 우린 잭살차는 왜 머리맡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는지 여름이 우려낸 흔적들이 땀의 언어로 쪼그라들어서일지도 모르지 땀과 눈물을 저울질하며 물의 신분을 따져보다 나와 잭살차의 눈물 중 무엇을 먼저 닦아주어야 할지 고민했어 나에게 흘러나온 건 염분뿐일지도 모르지만 울지 말라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내뱉지 않을 거야
미안해 내가 또 말을 너무 무섭게 했나?
그저 그 어느 때보다 네가 보고 싶었어 나와 비슷한 열감을 지녔을지 감히 가늠이나 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왜 나보다 네가 먼저였는지 그게 늘 의문이었거든 너를 너무나도 예뻐해서 이르게 곁에 두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나는 신을 믿지 않으니 그 모든 원망을 하늘에 쏟아냈고 그래서 나의 계절은 온통 여름이었나 봐
그러므로 나는 영원히 분노해야 마땅한 건데 영원히 아파하고 영원히 볏짚마냥 감정을 태워내야 당연한 건데 사실 이제는 열이 37도 위로는 잘 오르지 않아 어쩌면 면역력이 생겼나 봐 인간은 단단한 자아와 약간의 애정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더니 나 역시도 타이레놀 한 알이면 밤을 이겨낼 수 있는 성인이 되었고 여전히 사람보다는 인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
내가 여름을 앓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 제철에 맞는 병이 나에게 돌아와야 할 것만 같은데
며칠 전에는 발가락이 아파서 진통제를 먹었어 고작 그 정도 불편에도 약의 힘을 빌리는 나의 통각이 우스웠지만 평온이 나에게는 오히려 쉽지 않네
언젠가 네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네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아버렸지 악수는 같은 손으로 해야 마땅하지만 내 오른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거든 손가락의 마디들은 맞물리지 못한 채 버석거렸지만 너와 마주 보기보다 옆에 있고 싶었으니 오히려 어울렸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건 내가 너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내일 아침에는 해가 뜨지 않으면 좋겠다 아주 오래도록 이 더운 밤이 지나가기를,
그렇게라도 내가 너를 꺼지지 않게 새겨두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