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ㅇㅇ 년 어느날 12월
어느 날 사보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게재한 적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겪고 느꼈던 점을 말한 것 뿐 이었다.
하지만 상사분의 반응은 너무 냉혹했다.
한마디로 자신을 비롯해 전부를 욕먹게 했다고나 할까? 나쁘게 표현 하자면 계장이 쓰니까 너도 쓰냐는 식
그 분의 반응을 보면서 왠지 죄인 같은 느낌이 들었고 공연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주무 국 주무 과이다 보니 한번씩 국장실을 봐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마다 스트레스였다.
문서 수발 할일 있으면 전화해서 불러들이고 출석수업 이라도 있을 때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말해야 하고
내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시켜대는 직원들이 야속했다.
꼭 나야만 하는가? 상황에 따라서는 각자가 가서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것인데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처해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사항 이었다.
내가 보기 싫어서 국장실로 보내려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내가 뭘 그리 잘못 했나 싶었다.
내 위치에서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지금 퇴직을 하셨지만 그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그 일이 계기가 되었을까? 아니면 내 성격 탓이었을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슴속에 묻어둔 채 살았다.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하고 로봇처럼 말이다. 솔직히 무슨 말 하기가 무섭다. 그리고 어차피 이야기 한들 들어주지도 않을 텐데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70년 평화시장 한가운데서 석유를 적시고 분신을 택하며 근로기준법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 열악한 환경 속에서 12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받는 봉급은 고작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근로기준법을 접하게 되었고 정당성을 주장하다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자신 한 몸 희생을 택해야 했던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고 말았다. 그 일을 계기로 민주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어 하나의 전설처럼 일화가 되었다. 유언이 되어버린 한마디 “자신이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대신 해주시라며 배가 고프다.”
지난번 노동자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 다행히 도착하니 비는 멈춘 상태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 대형 스크린 속에 연세 지긋하신 분이 계셨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셨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나 되어 끝까지 가라는 당부 말씀과 정부에 대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그 어머님의 모습에서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평생을 짊어지고 사셨을 한(恨)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이제 다 놓아버리고 먼저 간 자식한테 가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키지도 못할 법은 왜 있는 것일까. 그 법에 대해 알고 정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 실내 사격장 화재로 일본인 관광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거기에는 한국인 사람들도 사망자가 있는 것으로 안다. 부산 시장과 국무총리가 일본인 유가족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면서 대형사고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 방문해 유가족들을 접하면서 언제 한 번 무릎 꿇은 적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언론은 또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듯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왜 일본인 유가족한테는 쉽게 무릎을 꿇으면서 우리들 앞에서 아니 국민들 앞에서는 그렇게 못하는 것일까.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고 약자 앞에서는 힘으로 억누르는 뭐 그런 걸까?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처럼 우리는 비굴 하지도 무릎을 꿇는 일도 하지 않는다.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주장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모두 힘내시고 똘똘 뭉쳐서 당당 하게 살아갑시다.
추워진 날씨에 감기 조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