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만 살았던 당신에게: 이겨놓고 싸우고 있나요?

결갈피 독서 모임 후기 : <손자 병법> 편

by 르네

⚠️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사랑과 그 후의 일상〉의 핵심 플롯이 언급됩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감상하신 뒤 돌아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인트로: 7군데 도서관이 전부 대출중


"다 대출중이래요. 7군데가."


독서모임 전날, 멤버 한 명이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였다. 『손자병법』을 구하려고 도서관 상호대차를 신청했는데, 검색되는 모든 도서관이 대출중이라는 것이다. 2500년 된 책이다. 공자나 노자도 아니고 전쟁 매뉴얼이다. 그런 책이 동네 도서관 7군데에서 동시에 품절이라니.


나는 교보문고에 갔다. 평소 같으면 '동양고전' 코너 구석에 꽂혀 있었을 책이 베스트셀러 평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표지도 여러 종류였다. 원문 한자가 빼곡한 고전 해설서부터, 현대전 사례를 곁들인 전쟁사 전문가의 해석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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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멈췄다.


첫 챕터 제목이 이랬다.


"열심히 하면 망한다."


농담인 줄 알았다. 자기계발서 특유의 역설적 제목, '안 하면 안 망한다'류의 말장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손자는 진심이었다.


『손자병법』의 첫 번째 핵심 개념은 '선승구전(先勝求戰)'이다. 직역하면 "먼저 이기고 나서 싸움을 구한다." 승리를 확정지은 다음에야 전쟁터에 나간다는 뜻이다. 순서가 우리의 상식과 정반대다. 보통 우리는 일단 싸우고 나서 이기기를 바란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손자는 그게 패배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내내 독서모임에서 나올 대화들이 미리 그려졌다.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도 그랬어요. 일단 이력서 내고, 면접 잡히면 그제야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일 것이다. "완전 망하는 패턴이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일단 뛰어들어라. 부딪혀봐야 안다. 실패해도 경험이 된다. 그런데 손자는 정반대를 말한다. 준비 없이 싸움터에 나가는 것, 그 자체가 패배의 시작이라고.


손자의 언어로 말하면, 나는 평생 "싸우고 나서 이기기를 구했던" 것이다. 준비 없이 전쟁터에 뛰어들어, 일단 칼을 휘두르고, 살아남기를 빌었다. 이걸 우리는 '열심히 한다'고 부른다. 그런데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기고 나서 싸움을 구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고 나서 승리를 구한다."


소름이 돋았다. 2500년 전 사람이 내 인생 패턴을 정확히 짚어낸 기분이었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이렇게 배워왔다. '노력'과 '성과'는 비례한다. 더 많이 일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더 오래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 풀린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자기계발서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포기하지 마." "끝까지 해봐."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밤새 준비했는데 떨어지고, 야근하며 달렸는데 성과가 안 나고, 진심을 다했는데 탈락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거나,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실패의 원인을 노력의 '양'에서 찾는다. 부족했으니까 안 된 거라고.


개발자 용어로 말하면 '브루트 포스(Brute Force)'다.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때려넣어서 답을 찾는 방식. 효율은 최악이지만 일단 돌아가긴 한다. 문제는, 인생이라는 시스템은 타임아웃이 있다는 것이다.


손자는 다르게 말한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순서라고.


이기는 조건을 먼저 설계하지 않고 싸움터에 뛰어드는 것, 그 자체가 패배의 시작이라고. 아무리 용맹하게 싸워도, 이미 불리한 판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전쟁터에서 기도는 전략이 아니라고.


읽으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게을러서, 재능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그냥 순서가 틀렸던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건 고칠 수 있는 문제니까.


동시에 불편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면 나는 지금, 무엇을 이겨놓고 있는가?"


이 글은 2500년 된 병법서를 놓고, 서울 한복판의 30대 직장인들이 벌인 해석과 적용의 기록이다.


우리는 면접을 이야기했고, 연애를 이야기했고, 다이어트를 이야기했다. 헬스장 등록의 기술에 대해 논쟁했고, 연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투표를 했고, 두바이 쫀득쿠키를 팔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했다. 손자병법이 연애 상담서가 되고, 사업 전략서가 되고, 인생 철학서가 된 기묘한 밤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겨놓고 싸운다"는 것의 의미다. KT 공채에 합격한 어떤 사람, 헬스장을 1년 동안 다닌 어떤 멤버, 그리고 턱걸이 봉을 당근마켓에 판 어떤 사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열심히 하면 정말 망할까? 아니면, 열심히 하는 '방법'이 틀렸던 걸까?





1부: 선승구전 — 이겨놓고 싸운다


"면접을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이 말로 우리 모임의 시작을 열었다. 설계? 면접을? 우리가 아는 면접은 을(乙)의 자리다. 면접관이 질문하고, 지원자가 대답한다. 그들이 판을 짜고, 우리는 그 위에서 춤을 춘다. 그런데 그걸 설계한다고?


"맨 처음에는 어쨌든 나한테 발언권이 오잖아요. 자기소개 해주세요, 라고. 거기서 그냥 평범하게 '저는 어디 학교 나왔고, 뭐 하고 있고' 이렇게 가면 설계를 안 한 거예요. 근데 방향을 조금만 틀면 되거든요. '나는 이런 강점이 있고, 최근에 이런 관심사가 있어서 이걸 해봤다.' 이렇게 문장을 주도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기에 질문을 하게 돼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미끼를 던지는 거다. 내가 준비한 영역으로 면접관을 유인하는 것. 그러면 그건 이미 내가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 된다.


"그러면 그거는 어떻게 보면 이미 이긴 싸움을 하는 거잖아요."


손자가 말한 선승구전이 면접장에서 이렇게 구현되는 거구나. 싸우고 나서 이기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놓고 싸움터에 들어가는 것.


사실 나는 이 얘기로 시작하기가 싫었다.


"근데 사실 이 예시는 들기 싫었어요."


"왜요?"


"너무 식상해서요."


웃음이 터졌다. 맞다. 면접 팁으로 '자기소개에 미끼를 심어라'는 말은 이미 널리 퍼진 조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알면서도 안 한다는 거다. 우리는 여전히 면접장에 들어가서 질문이 뭘지 조마조마해하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고, 나와서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협곡이 있다. 손자병법이 2500년 동안 읽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내용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안 하는 것들을 끈질기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분은요, KT 공채에 넣었는데, 면접 전에 KT 대리점을 한 100개, 200개를 직접 돌았대요."


"네?"


"설문조사를 한 거예요. 대리점 사장님들한테. 그걸 다 정리해서 면접장에 가져간 거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100개에서 200개. 서울과 수도권의 KT 대리점을 발로 뛰어다녔다는 얘기다. 그게 얼마나 걸렸을까. 몇 주? 한 달?


"그래서 이 사람이 면접장에서 뭘 갖고 있었냐면, 본인이 직접 수집한 현장 데이터예요. 고객 반응, 대리점주들의 불만, 실제 영업 현장에서 뭐가 문제인지. 면접관보다 현장을 더 잘 아는 상태가 된 거죠."


"합격했어요?"


"당연히요."


그 사람은 면접장에서 질문을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면접관이 모르는 정보를 '주는' 입장이었다. 을이 갑이 된 거다. 정보의 비대칭을 역전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선승구전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그 지원자는 면접장에서 말을 잘해서 붙은 게 아니다. 그는 면접장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문밖에서 이겨놓은 상태였다. 면접이라는 행위는 그저 그 승리를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손자가 말한 '먼저 이겨놓는다'는 건 이런 것이다. 남들이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며 변수와 싸울 때, 고수는 전쟁 전에 변수를 상수로 만들어버린다. 불확실성을 0으로 수렴시키는 설계. 그것이 승리다.




"그런 사람이 진짜 '될 놈'이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단순히 성실한 게 아니다. 200개 대리점을 도는 건 물리적으로 엄청난 노력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걸 왜 해야 하는지'를 먼저 설계했다는 점이다. 남들이 자소서 문장을 다듬고 있을 때, 이 사람은 면접관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역산했다. 그리고 그 그림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러 나갔다.


열심히 하기 전에,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한 것이다.


손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사람은 싸우기 전에 이미 이겨놓은 상태였다. 면접장은 승리를 확인하러 간 자리였을 뿐이다.


"근데 그런 거 있잖아요. 운 좋게 된 사람들도 있잖아요."


세상에는 아무 준비 없이 면접장에 갔다가 덜컥 붙는 사람도 있다. 별 노력 안 했는데 대박 난 사업가도 있고, 대충 산 주식이 열 배 뛴 투자자도 있다. 그럼 그들은 운의 덕을 본 것일까?


"근데 그런 말이 있잖아요. 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거 알아요? '운'이라는 글자를 상하로 뒤집으면 '공'이 된대요."


"무슨 말이에요?"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ㅇ', 'ㅜ', 'ㄴ'을 그리더니 위아래를 뒤집는 시늉을 했다. 정말이다. 한글 '운'을 180도 돌리면 '공'이 된다.


"그래서 공을 들인 사람한테 운이 온다는 거래요."


우연의 일치겠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운도 어느 정도는 설계의 영역이라는 것.


놀랍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한 책은 신수정 작가의 『일의 격』이다.


저자는 크럼볼츠 교수의 '계획된 우연(Planned Serendipity)' 이론을 빌려, 행운조차 무작위 랜덤박스가 아니라 "호기심, 낙관성, 끈기라는 태도(Input)"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값(Output)이라고 말한다. 운도 결국은 디버깅 가능한 코드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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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그는 커리어의 본질을 '부'가 아닌 '자유'로 정의한다. 여기서 자유란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 싫은 사람과 일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회사라는 기차에서 언제든 내릴 수 있는 '진짜 역량'을 갖추는 것.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손자가 말한 '선승구전'의 현대적 해석 아닐까? 남에게 생사여탈권을 맡기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는 것. 그것이 바로 이겨놓은 상태일 테니까.




KT 대리점 200곳을 돈 사람에게 면접관이 호의적인 질문을 던진 건 '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운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건 본인이다. 준비된 사람에게 운이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운을 운으로 바꿀 수 있는 거다. 같은 기회가 와도 준비 안 된 사람은 그게 기회인 줄도 모른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옮겨갔다.


"저는 이거 읽으면서 헬스장 생각났어요."


"헬스장이요?"


"저 작년 1월에 헬스장 등록했거든요. 처음 해보는 거라 몇 개월 할까 고민했는데, 1년이 제일 싸대요. 그래서 그냥 1년 끊었어요."


"1년을요? 대박. 그래서 다녔어요?"


"네, 1년 내내 다녔어요."


놀라운 일이다. 헬스장 1년 등록하고 실제로 1년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3개월 안에 발길이 뜸해지고, 6개월이 지나면 존재 자체를 잊는다. 나만 해도 그랬다. 매번 '이번엔 진짜 다닐 거야'라고 다짐하고, 매번 실패했다.


"비결이 뭐예요?"


"제가 헬스장을 어디에 등록했냐면요, 회사랑 지하철역 사이에 있는 데로 했어요."


"집 근처 아니고요?"


"네. 집 가는 길에 헬스장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헬스장을 안 들르면 역을 못 지나가요. 물리적으로 거기를 통과해야 집에 갈 수 있는 구조인 거죠."


이것은 의지의 승리가 아니다. 동선의 승리다. 환경 설정의 승리다. 바로 환경 설계다. 그는 자신의 나약한 의지력을 믿지 않았다. 오늘 강철 같은 의지도 내일이면 사라진다. 대신 자신의 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물리적 트랩을 설계했다. 퇴근길 경로에 헬스장을 박아버린 것이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집 근처 헬스장에 다시 나가는 건 '싸우고 나서 이기길 바라는' 도박이지만,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헬스장에 들르는 건 '안 들어가면 집에 못 가는' 외통수다.


안 할 수 없는 구조를, 하지 않으면 불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곧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기는 조건'을 미리 세팅한 거다. 다이어트라는 전쟁에서 적(게으름)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싸울 필요가 없게 판을 짜는 것이다.


반면교사도 있었다.


"저는요, 집에 턱걸이 봉을 샀었거든요."


"원룸에요?"


"네. 문틀에 거는 거 있잖아요. 턱걸이 하고 싶어서 샀어요."


"그래서 했어요?"


"1년 동안 한 번도 안 했어요."


폭소가 터졌다.


"그래서 당근마켓에 팔았어요."


"사 간 사람은 할까요?"


"모르죠. 여자분 두 분이 사 갔는데, 걔네도 안 할 것 같아요."


웃음 속에서도 진지한 메시지가 있었다. 장비를 사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 집에 있으면 안 한다. 눈앞에 있어도 안 한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집에 있으면 안 돼요. 그래서 환경을 강제로 바꿔야 해요."


도구를 샀지만, 그 도구를 사용할 환경은 설계하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 놓인 턱걸이 봉은 그저 오브젝트일 뿐이다. 그것이 실행되려면 '의지'라는 불안정한 전력이 공급되어야 하는데, 우리네 직장인의 배터리는 퇴근하면 방전되기 일쑤다. 그러니 빨래 건조대가 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다.


헬스장을 퇴근길 한가운데 등록한 사람과, 턱걸이 봉을 집에 둔 사람. 둘 다 운동하겠다는 '의지'는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차이는 의지의 크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유무였다.


"저는 이게 루틴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정리했다.


"루틴을 만들어놓으면 그게 이기는 싸움이에요. 이겨놓는 조건 자체가 되는 거죠. 저희가 지금 이 독서모임 하는 것도 사실은 그런 거잖아요."


맞는 말이다. 책을 읽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읽지 않는다. '매달 한 권 읽고 모여서 토론한다'는 시스템이 있으니까 읽는 거다. 모임이라는 강제성이, 게으른 나를 끌고 간다.


"결국 시스템이에요. 의지력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돼요. 그래서 환경을 세팅하는 거예요. 내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구조를."


손자가 2500년 전에 말한 선승구전이, 21세기 직장인의 헬스장 등록 전략으로 번역되는 순간이었다.


이기고 싶으면 열심히 싸우지 마라. 이길 수밖에 없는 판을 먼저 짜라. 의지를 믿지 말고 환경을 설계하라. 그러면 승리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확인의 절차가 된다.


"일단 해"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여기 있었다. 무작정 전쟁터에 뛰어들라는 게 아니다. 일단 이길 수 있는 조건을 세팅하라는 것이다. 준비를 '일단' 시작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망한다. 하지만 '이겨놓고 열심히 하면' 이긴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 누군가 중얼거렸다.


"근데 이거 연애에도 적용되지 않아요?"


진짜 재밌는 얘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2부: 화 안 낼 테니까 — 팩트인가, 안심인가


"자, 여기서 잠깐 거수투표 한번 해봅시다."


토론이 중반으로 치닫자 누군가 비장한 표정으로 제안했다. 치킨 무를 씹던 소리도 멈췄다.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비장한 침묵이 흘렀다. 질문은 하나였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가장 부드럽고 위험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을 때, 당신의 선택은?


"나 화 안 낼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1번. 죽어도 사실대로 말한다. 신뢰가 우선이니까." "2번. 죽어도 끝까지 숨긴다. 말하는 순간 끝이니까."


"하나, 둘, 셋!"


손이 올라갔다. 결과는 7대 3. 압도적으로 '말한다' 쪽이 많았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논리는 비슷했다.


"이미 알고 물어보는 거잖아요. 거기서 거짓말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신뢰가 깨지는 것보단, 팩트를 말하고 용서를 비는 게 낫죠." "저는 거짓말하면 얼굴에 다 티가 나서..."


"어? 의외네. 다들 솔직파야?"


"거짓말하면 더 큰일 나잖아요. 이미 알고 물어보는 거일 수도 있고."


"맞아요. 나중에 들통나면 그게 더 신뢰가 깨지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솔직함이 장기적으로 관계를 지킨다. 교과서적인 정답이었다.


그런데 소수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근데요, '화 안 낼게'라는 말 자체가 거짓말이잖아요."


공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생각해보세요. 화 안 낼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이 말이 나온 시점에서 이미 뭔가 심증은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런 말을 하진 않거든요. 그리고 진짜 화 안 낼 사람이면 애초에 저렇게 안 물어요."


"그러면 뭐예요? 어차피 알면서 물어보는 건데,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나요?"


"문제는,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질문이 나왔다는 건, 이미 상대방이 뭔가를 감지했다는 뜻이에요. 그 상태에서 내가 사실을 털어놓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상대방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피고인석에 앉는 거죠."


"피고인석이요?"


"네. 심판과 피고인의 관계가 되는 거예요. 취조하는 사람과 취조받는 사람. 그 프레임에 한번 갇히면 빠져나오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건 애초에 좋은 관계가 아니지 않아요?"


뭔가 찔리는 표정들이 보였다. 연애든 결혼이든, 한 번쯤은 저런 상황을 겪어봤을 것이다. "화 안 낼게"라는 말 뒤에 숨겨진 서늘한 압박.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더 큰 폭풍을 맞았던 기억.


토론이 점점 뜨거워졌다.


"아니, 그래도 거짓말은 안 되지 않아요? 거짓말을 하면 그게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들통나면 '왜 그때 솔직하게 말 안 했어?'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건 들통났을 때 얘기고요. 완벽하게 숨기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돼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제일 좋죠."


"그건 그렇지."


웃음이 터졌다. 맞는 말이다. 최선의 전략은 애초에 저런 질문을 받을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깔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실수는 일어나고, 비밀은 생기고, 어느 날 갑자기 저 질문이 날아온다.


"저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게 뭔가를 봐야 한다고."


조용히 듣고 있던 멤버가 입을 열었다.


"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뭘까요? 팩트? 진실? 저는 아니라고 봐요. 상대가 진짜 원하는 건 '안심'이에요."


안심. 그 단어가 묘하게 울렸다.


"화 안 낼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이 말 속에는 불안이 있어요. 내가 뭔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아. 내가 바보 취급당하는 건 아닐까. 우리 관계가 흔들리는 건 아닐까. 이런 불안이요. 상대가 원하는 건 그 불안을 해소하는 거예요. 팩트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괜찮아, 우리 사이는 괜찮아'라는 확신을 얻고 싶은 거죠."


"그러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건가요?"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프레임을 바꾸라는 거예요."


프레임. 손자병법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나온다. 전쟁에서 중요한 건 싸움 자체가 아니라, 어떤 판에서 싸우느냐다. 적이 만든 판에서 싸우면 진다. 내가 만든 판으로 끌어와야 이긴다.


"상대가 '사실대로 말해봐'라고 했을 때, 그 프레임에 그대로 들어가면 안 돼요. 그건 취조실 프레임이거든요. 거기 들어가는 순간 나는 피의자가 되는 거예요. 뭘 말해도 불리해지는 구조."


"그러면 어떻게 해요?"


"프레임을 바꾸는 거죠. '취조'에서 '사랑 확인'으로. 팩트를 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감정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 걸 물어보다니, 내가 그동안 널 많이 불안하게 했구나. 미안해.' 이런 식으로요."


"그게 되나요?"


"안 될 수도 있죠. 근데 적어도 팩트를 털어놓고 심판대에 서는 것보다는 나아요."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근데 그건 너무 계산적인 거 아니에요? 연애가 무슨 협상도 아니고."


"맞아요. 저는 그냥 솔직한 게 좋아요. 그게 기본이잖아요."


"기본은 그렇죠. 근데 모든 상황에서 기본이 통하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거짓말은 싫어요. 저는 상대가 저한테 거짓말하면 진짜 싫을 것 같아요."


"나도 싫지. 근데 모든 걸 다 알고 싶지도 않아요. 어떤 건 그냥 안 듣는 게 나은 것도 있잖아요."


토론이 평행선을 달렸다. 솔직함이 미덕이라는 사람들과, 때로는 침묵이 배려라는 사람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군가 정리하듯 말했다.


"결국 이거 아닐까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말의 내용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


여러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토론을 들으면서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는 '캡슐화(Encapsulation)'라는 개념이 있다. 클래스 내부의 복잡한 로직은 숨기고(private), 외부에는 필요한 인터페이스만 노출한다(public). 왜 그렇게 할까? 내부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면 시스템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함부로 건드릴 수 있게 되고, 작은 변경이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내 머릿속의 모든 생각, 모든 흔들림, 모든 실수를 상대에게 그대로 전송하는 건 솔직함이 아니라 무책임일 수 있다. 상대에게 내 짐을 떠넘기는 것일 수 있다.


물론 핵심적인 것들은 공유해야 한다.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사안이라면 솔직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은 내가 안고 가야 할 내 몫이다. 그게 어른의 책임이고, 관계를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때 한 멤버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언급했다.


"거기서 주인공 라비가 바람을 피우잖아요. 근데 끝까지 아내한테 말을 안 해요."


소설 속 라비는 외도를 저지르지만 아내 커스틴에게 고백하지 않는다. 뻔뻔해서가 아니다. 소설은 오히려 그것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지만 성숙한 방식이었다고 묘사한다.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아내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건 '이기적인 해소'다. 대신 그는 평생 그 비밀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가면서 아내에게 더 잘해주는 길을 택했다.


"더 놀라운 건 아내 태도에요. 책을 보면 아내도 직감적으로 알거든요. 근데 묻지 않고 덮어요. 파헤쳐서 끝장을 보는 것보다, 지금의 '우리'가 더 소중하니까."


이건 기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치명적인 균열을 모른 척 덮어주는 묵계다. 완벽한 진실보다 중요한 건, 결국 관계의 지속이니까.


물론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바람은 극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했다. 솔직함이 정말 상대를 위한 건가, 아니면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한 건가. 진실을 말하는 게 용기인가, 아니면 그 무게를 혼자 안고 가는 게 용기인가.


토론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투명하게 다 말하는 게 좋은 것 같지만, 그게 때로는 상대에게 불안을 전가하는 거일 수도 있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책임 다 했어'라는 식으로요. 근데 그 솔직함 때문에 상대는 평생 그 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근데 이것도 결국 손자병법이네요."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뭐가요?"


"주도권 얘기요. 아까 면접에서 미끼 던져서 질문 유도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결국 프레임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인 거잖아요. 상대가 만든 '취조' 프레임에 끌려가면 지는 거고, 내가 '사랑 확인' 프레임으로 바꾸면 주도권을 가져오는 거고."


맞는 말이었다. 선승구전이 면접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인간관계의 모든 국면에서, 어떤 판에서 싸우느냐가 결과를 결정한다.


"결국 이거네요. 끌려다니면 을이고, 끌고 다니면 갑이다."


"근데 연애에서 갑을 따지는 게 좀 씁쓸하긴 하다."


"갑을이 아니라 주도권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누가 위고 아래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상황을 설계하느냐의 문제."


2500년 전 전쟁 매뉴얼이 21세기 연애 상담서가 되는 순간이었다.


토론이 마무리될 즈음, 한 멤버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그냥 애초에 저런 질문을 받을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예방이 최선이다."


다들 웃었다.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었다.


손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최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싸움 자체를 피하는 것이 가장 좋고, 피할 수 없다면 내가 유리한 판에서 싸워야 한다고.


연애도 마찬가지다. "화 안 낼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봐"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이미 불리한 판에 들어선 것이다. 최선은 그 질문을 받을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게 안 됐다면, 최소한 상대가 만든 프레임에 그대로 들어가지는 말아야 한다.


솔직함은 미덕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솔직함은 때로 무책임이 된다. 상대가 원하는 게 팩트인지 안심인지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심을 줄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이날 밤, 나는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투명함이 항상 선은 아니라는 것. 어떤 것은 숨기는 게 아니라 품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관계에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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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 누군가 화제를 돌렸다.


"근데 요즘 카페 가면 그거 다 팔잖아요. 두바이 쫀득쿠키. 그거 드셔봤어요?"


"두쫀쿠요? 저 먹어봤는데 취향을 이겨버려요. 생각했던 거랑 다르게 진짜 맛있어."


"근데 그거 파는 카페 사장님들 진짜 힘들대요. 본인 철학이랑 안 맞아도 안 팔 수가 없다고."


"왜요?"


"3일 만에 한 달 매출이 나온대요."


3일에 한 달 매출이라니. 트렌드의 힘이 그 정도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이어졌다. 나의 철학을 지킬 것인가, 시장의 흐름에 올라탈 것인가. 장인이 될 것인가, 서퍼가 될 것인가.


손자병법의 세 번째 키워드, '형(形)과 세(勢)'이다.







3부: 파도인가 서퍼인가 — 형과 세


"두쫀쿠 드셔봤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테이블 분위기가 환기됐다. 두쫀쿠. 두바이 쫀득쿠키의 줄임말이다. 2025년 말부터 SNS를 점령하더니, 2026년 1월 현재 배달앱 검색어 1위를 한 달 넘게 독점하고 있는 디저트. 카페마다 오픈런이 벌어지고, 품절 대란이 이어지고, 가격은 초기 3천 원대에서 1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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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먹어봤는데요, 취향을 이겨버려요."


"무슨 말이에요?"


"원래 저 달달한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거 먹으니까 '아, 이건 다르다' 싶더라고요. 쫀득한 마시멜로 식감이랑 바삭한 카다이프가 섞이는데, 예상했던 거랑 달라요."


"얼마나 맛있길래 다들 난리야."


"맛도 맛인데,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파는 쪽이 더 힘들대요."


한 멤버가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카페 사장님이 있거든요. 디저트 카페 운영하시는데, 본인만의 철학이 있는 분이에요. 담백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스타일. 근데 그분이 요즘 두쫀쿠를 팔기 시작했대요."


"철학이랑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안 맞죠. 근데 안 팔 수가 없대요."


"왜요?"


"3일 만에 한 달 매출이 나왔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3일에 한 달 매출. 그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그분이 뭐래요? 마음이 편해요?"


"편할 리가 없죠. 근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내 철학대로 하면 마음은 편한데 가게가 망해. 두쫀쿠를 팔면 마음은 불편한데 가게가 살아.' 그래서 일단 팔기로 했대요."


씁쓸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장인정신과 시장성 사이의 줄타기. 예술가의 고집과 사업자의 생존 사이에서 흔들리는 경계.


누군가 물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본인 철학을 지킬 거예요, 아니면 트렌드를 따라갈 거예요?"


"목적이 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어떤 목적이요?"


"돈을 벌려고 하는 건지, 내 예술을 하려고 하는 건지. 그 두 개가 같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다르잖아요."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과 돈 되는 일이 일치하는 건 행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저는 담백한 거 만들 것 같아요. 두쫀쿠는 안 팔고."


"진짜요? 3일에 한 달 매출인데?"


"돈 욕심이 별로 없어서요."


"그러면 그건 장사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죠. 개인의 만족을 위한 거니까."


"맞아요. 근데 그것도 선택이잖아요. 돈을 덜 벌더라도 내 철학을 지키겠다는."


손자병법에서는 이걸 '형(形)과 세(勢)'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형(形): 군대의 규모, 무기, 훈련 상태. 즉, 나의 정량적인 '스펙'이다.

세(勢): 벼랑 끝에서 돌을 굴리는 힘. 기세, 타이밍, 트렌드. 즉, 시장의 '흐름'이다.


형은 내 실력이다. 내가 쌓아온 기술, 지식, 역량. 카페 사장님의 담백한 디저트 철학도 형에 해당한다. 세는 흐름이다. 시장의 트렌드, 시대의 바람, 돈과 사람이 몰리는 방향. 두쫀쿠 열풍이 바로 세다.


손자는 말한다. 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춰도, 흐름을 타지 못하면 고립된다고. 반대로 세를 잘 타면, 형이 다소 부족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결국 이거네요. 내 힘으로 노를 젓는 건 노동이고, 파도를 타는 건 레버리지다."


누군가의 정리에 여러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파도를 탄다는 게 말이 쉽지, 어떻게 아는 거예요? 뭐가 다음 파도인지."


"그게 문제죠. 두쫀쿠가 뜰 줄 누가 알았겠어요. 처음에는 그냥 SNS에서 몇 명이 올린 영상이었을 텐데."


"근데 그걸 빨리 캐치해서 올라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게 능력인 거죠."


두쫀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더 큰 주제로 확장됐다.


"근데 이거 디저트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우리 커리어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우리는 이 '노 젓기'와 '서핑'의 비유를 우리의 커리어, 특히 AI 시대의 생존 문제로 확장했다.


일론 머스크는 "3년 안에 AI가 화이트칼라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이제 사람이 직접 코드를 치는 시대는 끝났다. 내가 자바 문법을 달달 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열심히 노를 젓는 행위 아닐까?


"일론 머스크가 그랬잖아요. 3년 안에 화이트칼라 직업 대부분이 위험해진다고."


"그거 봤어요. 무서웠어요."


"근데 진짜 그렇게 될까요?"


"모르죠. 근데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한 거잖아요."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영역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에, 개발자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단순히 기능을 구현하는 사람은 대체될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으려면 뭘 해야 하는가.


"저는 요즘 피지컬 AI 쪽을 보고 있어요."


한 멤버가 말했다.


"피지컬 AI요?"


"로봇이요. 소프트웨어는 이미 AI가 많이 먹었잖아요. 근데 물리적인 세계는 아직이에요. 로봇이 인간의 손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아직 멀었거든요. 그쪽으로 확장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헬스케어도 그렇지 않아요? 의료 쪽은 규제도 많고, AI가 쉽게 침투하기 어려운 영역이잖아요."


"맞아요. 저도 그쪽 생각해봤어요."


우리는 각자의 '다음 파도'를 찾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현재의 파도가 꺼지기 전에, 다음에 올 큰 파도를 식별하고 올라타야 한다. 그게 두쫀쿠를 파는 카페 사장님과 다를 게 뭔가. 본질은 같다. 트렌드를 읽고, 흐름에 올라타고, 레버리지를 얻는 것.


"근데 그렇게 흐름만 쫓다 보면, 나라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조용히 듣고 있던 멤버가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두쫀쿠 팔아서 돈 벌었어요. 그다음에 또 다른 트렌드가 오면 그거 팔아요. 또 그다음 거 팔고. 그러다 보면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게 되는 거 아니에요? 정체성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트렌드를 좇는 것과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것 사이의 긴장. 서퍼가 되어 파도를 타다 보면,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버릴 수 있다.


"저는 그게 밸런스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답했다.


"밸런스요?"


"트렌드를 완전히 무시하면 고립되고, 트렌드만 쫓으면 정체성이 사라져요. 둘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거죠. 두쫀쿠를 팔되, 내 철학이 담긴 디저트도 함께 파는 거예요. 트래픽은 두쫀쿠로 끌어오고, 그 손님들한테 내 메뉴를 맛보게 하는 거죠."


"아, 그거 전략적이네요."


"그렇죠. 트렌드를 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는 거예요. 끌려가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거죠."


이야기는 더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근데 그러려면 일단 큰 시장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이에요?"


"시장 자체가 작으면,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잖아요. 두쫀쿠가 뜬 건 디저트 시장 자체가 크니까 가능한 거

예요. 작은 시장에서는 트렌드고 뭐고 없어요."


맞는 말이다. 파도를 타려면 일단 바다에 있어야 한다. 웅덩이에서는 서핑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다들 AI 시장으로 몰리는 거잖아요. 거기가 지금 가장 큰 파도니까."


"근데 거기 경쟁도 빡세잖아요."


"경쟁이 빡센 건 시장이 크다는 증거예요. 경쟁 없는 시장은 시장이 없는 거랑 같아요."


예전에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맨 처음 할 필요는 없어. 처음 한 사람을 따라가면 돼." 선발주자가 시장을 열어놓으면, 후발주자는 그 흐름에 올라타면 된다. 카피캣이라고 무시하지만, 카피도 능력이다. 적어도 뭘 카피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눈이 있어야 하니까.


"결국 이거네요. 파도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파도를 식별하는 건 할 수 있다."


"그리고 식별했으면 빨리 올라타야 해요. 파도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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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 마무리될 즈음, 나는 손자병법의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승리하는 장군은 형세를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탄다. 패배하는 장군은 자기 힘만 믿고 흐름을 거스른다. 개인의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된다.


두쫀쿠를 파는 카페 사장님은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내 철학과 맞지 않는 걸 팔아야 하다니. 하지만 그 선택이 가게를 살렸다. 그리고 가게가 살아야, 언젠가 자기 철학을 펼칠 기회도 생긴다. 죽은 장인은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결국 순서의 문제인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무슨 순서요?"


"먼저 살아남고, 그다음에 철학을 펼치는 거요. 순서가 바뀌면 안 되는 거죠. 철학을 지키려다 굶어 죽으면, 그 철학도 사라지는 거니까."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파도를 타서 살아남고, 그다음에 내 방향으로 노를 젓는 거다."


"그러면 형과 세가 둘 다 필요한 거네요. 형만 있어도 안 되고, 세만 있어도 안 되고."


"그렇죠. 장인정신도 필요하고, 시장 감각도 필요한 거예요.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반쪽짜리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디저트 이야기로 시작해서 커리어 이야기로, 그리고 인생 이야기로 흘러왔다. 손자병법이라는 2500년 된 전쟁 매뉴얼이 두바이 쫀득쿠키와 AI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기 전, 누군가 조용히 물었다.


"근데 이렇게 전략적으로 살면, 행복해지는 거예요?"


무거운 질문이었다. 이기는 조건을 설계하고, 프레임을 장악하고, 흐름에 올라타고.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치자.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인가.


"니체가 그런 말 했잖아요. 영원회귀."


"영원회귀요?"


"이 삶을 다시 살아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이요. 똑같은 삶을 영원히 반복해도 좋겠느냐고."






아웃트로: 빨간약을 삼킨 30대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요. 이 삶을 다시 살아도 괜찮을까?"


토론의 끝자락, 한 멤버가 던진 질문에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치킨은 뼈만 남았고, 맥주잔은 비어 있었다. 손자병법에서 시작해 면접 전략, 연애 심리, 두쫀쿠까지 달려온 우리는 어느새 인생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니체가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얘기하거든요. 만약 지금 이 삶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면, 똑같은 선택을 똑같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래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이에요."


"무슨 벌 같은데요. 똑같은 삶을 무한 반복이라니."


"그러니까요. 근데 니체는 그걸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대요. '그래, 다시 살아도 이렇게 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무거운 질문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지금 내 삶을 다시 살고 싶은가?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에서 코드를 짜고, 야근하고, 퇴근하고, 잠드는 이 루틴을.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겠는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근데 그 질문 자체가 좀 잔인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답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포인트인 거죠. '아니오'라면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니까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바꾼다는 것'의 의미로 흘러갔다.


"저는 요즘 현타가 와요. 회사 다니고 싶어서 다시 직장인 됐는데, 막상 다니니까 '이게 내가 원하던 건가?' 싶은 거예요."


"무슨 현타요?"


"아침에 일어나서 지하철 타고, 자리에 앉아서 일하고, 퇴근하고. 이거를 10년, 20년 더 하는 거잖아요. 어디를 다니든 큰 틀은 비슷할 거고. 근데 이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공감하는 표정들이 보였다.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는 극단적인 생각도 해봤어요."


"어떤 거요?"


"배당금으로 월 100만 원 정도 나오게 세팅을 해놓는 거예요. 그리고 시골로 가는 거죠. 생활비 적게 드는 곳으로. 거기서 5년을 버티면서 진짜 하고 싶은 걸 준비하는 거예요."


"시골이요? 진짜요?"


"시골에서 살면 돈이 많이 안 들거든요. 월 100만 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어요. 그러면 굶어 죽지 않는 안전마진이 확보된 거잖아요. 그 상태에서 5년 동안 압도적인 시간을 확보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거죠."


극단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논리는 있었다. 이겨놓고 싸운다는 선승구전의 인생 버전이랄까. 일단 굶어 죽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


"근데 그게 되나요? 진짜로?"


"모르죠. 근데 적어도 생각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다가 10년 후에 '아, 그때 해볼 걸' 하는 것보다는요."


"대단하네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도 결국 마인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멤버가 말을 이었다.


"어떤 마인드요?"


"나는 될 거라는 믿음이요. 나에 대한 리스크 베팅.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배당금 세팅하고 시골 가는 것도, 결국은 '나는 5년 안에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자존감이네요."


"자존감이라기보다는... 자기 확신?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해도 좋고. 어쨌든 그게 없으면 도전 자체가 안 돼요."


"근데 그 확신은 어디서 와요? 원래 있는 사람만 있는 건가요?"


"글쎄요. 저는 오히려 해보면서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작은 거라도 해보고, 결과를 보고, 해석하고. 그러면서 점점 '나도 되겠다'는 느낌이 쌓이는 거죠."


결과에 대한 해석. 그 말이 귀에 꽂혔다. 우리는 흔히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의미 있다고. 하지만 이 멤버의 말은 달랐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다음 과정을 만든다는 것.


실패했어도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난 안 되나 봐'라고 해석하면 거기서 끝이다. '이번엔 안 됐지만, 이런 걸 배웠어'라고 해석하면 다음 판이 열린다. 같은 결과도 해석에 따라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니잖아요.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긴 전쟁이에요. 한 번 졌다고 끝이 아니고, 한 번 이겼다고 끝이 아니에요. 계속 싸우면서 배우고, 적응하고, 다시 싸우는 거죠."


손자병법이 다시 떠올랐다. 전쟁은 한 번의 전투로 끝나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보면, 하나의 패배는 데이터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데이터를 다음 전투에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근데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인생의 쓴맛이라는 게 뭔지."


97년생 막내 멤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테이블에서 유일한 20대였다.


"쓴맛이요?"


"아까부터 계속 나오는 얘기들 있잖아요. 현실의 민낯이라든가, 세상이 더럽다든가. 저는 아직 그런 걸 잘 못 느꼈거든요. 제가 아직 덜 살아서 그런 건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30대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뭔가 공유하는 게 있는 표정이었다.


"20대 때는 잘 몰라요. 저도 그랬어요."


한 멤버가 입을 열었다.


"어릴 때는 세상이 대체로 선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열심히 하면 인정받고, 착하게 살면 좋은 일이 생기고. 근데 30대가 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아, 세상이 꼭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는구나.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고, 착하게 살아도 손해 보는 경우가 있구나."


불현듯 나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영화 매트릭스 아세요?"


"네, 알죠."


"거기 보면 네오가 빨간약을 먹잖아요. 파란약을 먹으면 환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빨간약을 먹으면 불편한 진실을 보게 되는 거죠. 저는 30대가 빨간약을 먹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매트릭스에서 세계는 세 단계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가상현실이에요. 사람들이 환상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단계. 두 번째는 진짜 현실이에요. 인간이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디스토피아. 세 번째는 네오가 그 현실마저 초월해서 진짜 세상을 보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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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인생이랑 뭔 상관이에요?"


"비슷하지 않아요? 20대 때는 첫 번째 단계예요. 세상이 대체로 괜찮다고 믿는 환상 속에 사는 거죠. 근데 30대가 되면 빨간약을 먹게 돼요. 회사에서 정치를 보고, 관계에서 배신을 당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걸 경험하면서. 아,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아름답지 않구나. 인간 본성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구나."


"그러면 우울해지는 거 아니에요?"


"처음엔 그래요. 근데 거기서 끝나면 안 되는 거죠. 네오처럼 세 번째 단계로 가야 해요. 현실이 더럽다는 걸 알면서도, 그 위에서 자기 길을 찾는 거예요. 환상도 아니고, 절망도 아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자기 방향을 잃지 않는 거죠."


20대의 낙관도, 30대 초반의 냉소도 완성형이 아니다. 그 너머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 현실을 알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단계. 손자병법 식으로 말하면, 전쟁터가 잔혹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승리를 설계하는 장군의 경지랄까.


"근데 저는 30대가 오히려 재밌어요."


"진짜요? 왜요?"


"20대 때는 뭘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갔어요. 근데 30대가 되니까 조금씩 보여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아, 그런 의미에서요."


"네. 20대 때는 지도 없이 헤매는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적어도 지도가 생긴 느낌이에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게 된 거죠."


여러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30대의 역설이랄까. 체력은 떨어지고, 현실은 더 무겁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삶의 방향은 더 선명해지는 시기.


"저도 그래요. 20대 때는 그냥 열심히만 했거든요. 방향 없이. 근데 지금은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것만으로도 발전인 것 같아요."


"맞아요. 뭘 안 할지 아는 것도 능력이에요."




어느덧 두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토론 진짜 좋았어요. 손자병법이 이렇게 쓰일 줄 몰랐네요."


"그러게요. 전쟁 얘기인 줄 알았는데 인생 얘기였어요."


"결국 다 연결되는 거 아닐까요? 전쟁이든 면접이든 연애든. 살아남아야 하고, 이겨야 하고, 흐름을 타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누군가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오늘 핵심은 이거 아닐까요? '일단 해'라는 말의 진짜 의미."


"어떤 의미요?"


"무작정 뛰어들라는 게 아니라, '일단 이길 수 있는 조건을 세팅해'라는 뜻이요. 준비를 일단 시작하라는 거죠. 싸움을 일단 시작하라는 게 아니라."


그 말이 오늘 밤의 결론 같았다. 열심히 하면 망한다. 하지만 이겨놓고 열심히 하면 이긴다. 의지를 믿지 말고 환경을 설계하라. 팩트보다 안심을 줘라. 내 힘으로 노 젓지 말고 파도에 올라타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삶을 다시 살아도 괜찮을 만큼 주체적으로 설계하라.


2500년 전의 전쟁 매뉴얼이 2026년 서울의 밤에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다시 정리해본다.


내일부터 뭘 바꿀 수 있을까. 거창한 것 말고, 작은 것부터. 헬스장 등록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확실한 것부터.


면접에서 미끼를 던지는 것처럼, 내 커리어에도 미끼를 설계할 수 있을까. 두쫀쿠를 파는 카페 사장님처럼, 나도 지금의 파도를 탈 수 있을까. 라비처럼 어떤 무게는 혼자 안고 갈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영원회귀. 이 삶을 다시 살아도 괜찮겠느냐는 질문.


아직 자신 있게 "네"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 나는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불빛은 밤에도 하염없이 흘러간다. 저 불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싸우고 나서 승리를 구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겨놓고 확인하러 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그리고 내일부터는 어느 쪽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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