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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Oct 22. 2016

황량한 그곳에 카페가 생긴 이유는

탄자니아의 달라지는 '커피 지도'

탄자니아 하면 뺴 놓을 수 없는 ‘커피’.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 사이로 커피 꽃이 하얗게 만개하거나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면, 늘 다니던 길도 새로운 길인 것처럼 기분이 신선해진다. 하지만 한국처럼 하루 만에 새로운 카페가 생겨 길거리가 환해지는 신선함은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아무리 아루샤가 사파리 베이스캠프라고 해도 워낙 작아 꾸준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탄자니아 카라투 근처 '커피 코너' 카페 내부. @2016


세렝게티를 향해 달리던 한 달 전, 마지막 도시인 카라투(Karatu)를 앞두고 작고 하얀 표지판이 눈앞을 지나갔다. ‘커피 코너(Coffee corner)’라고 쓰인 아래 원두가 두 개 그려진 귀여운 간판이다. 아루샤보다도 작은 카라투에, 게다가 시내도 아닌 곳에 카페를 열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돌아오는 길에 궁금했던 ‘커피 코너’를 찾았다. 차들이 쌩쌩 달리기만 하는, 민가도 없는 이 썰렁한 길… 과연 카페가 있는 걸까? 큰길에서 흙길로 빠져 표지판을 따라가면서도 반신반의했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가게 이름을 참 생뚱맞게 지어 이름에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루샤에 ‘세렝게티 뷰 레스토랑’이 있거나 테이블 다섯 개 두고선 ‘사키나 라운지’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니 여기도 이름에 커피가 들어갔을 뿐인 현지 음식점 아닐까? 울퉁불퉁한 길이 끝나자 왼쪽 아래로 기다란 계단이 쭉 이어져있다. 앙증맞은 팻말을 달아놓은 작은 텃밭과 나무를 보며 내려가니 탁 트인 전망과 함께 푹신한 소파가 놓인 카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에서는 겹겹으로 싸인 산등성이 까지 한눈에 보인다. @2016


와, 이 길에 이렇게 멋진 풍경이 숨어있었다니. 아주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저 멀리  겹겹이 포개진 산의 능선이 바로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넓게 트인 공간에 카페가 있었다. 저 아래 보이는 작은 집들과 어우러진 울창한 나무들이 시원한 느낌을 주고, 마주 보고 있는 여러 개의 산등성이가 두 번 세 번 껴안아 주는 것 같아 포근한 느낌도 든다. 


커피부터 과일 주스, 맥주 등 다양한 음료와 간단한 샐러드와 샌드위치까지… 메뉴판 한 장에 각종 메뉴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다. '로티아 밸리'라고 하는 롯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탄산음료와 주류는 일반 카페 가격보다 비싼 호텔 라운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자릿세가 포함되었을 거라 생각한 커피는 의외로 아루샤 보다 싸다. 




카페 라떼를 시키고 둘러보니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를 크게 둘러싸고 있는 난간 바로 아래에는 움푹 파인 돌이 하나 놓여 있는데, 물이 고여 있어 주변의 새들이 날아와 물도 마시고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목욕도 한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새는 앵무새뿐이었지만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오후에도 들으니 따닷한 햇볕과 함께 즐거운 기분이 든다. 


난간 근처에는 망원경이 하나 설치가 되어있어 마을도 구경을 할 수 있다. 햇빛이 강하게 내려쬐는 시간이라 사람은 잘 안보였지만 괜히 이리저리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아무래도 뭘 주문하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은 것 같다. 새소리를 들으며 풍경을 보고 한쪽에 있는 기념품 코너에서 구경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바오밥 파우더’까지 사버렸다. 


활짝 핀 커피 나무 꽃. @2015 탄자니아 아루샤.


커피 맛은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조용한 곳에서 색다른 풍경을 보며 마시니 마음도 여유롭고 커피 향도 더 짙게 느껴졌다. 커피는 고도가 높은 곳에 키울수록 맛이 풍부해진다고 한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자라는 속도는 느리지만 단단해진 열매 속에 알차게 영양분을 넣어 풍미가 좋아지는 것이다. 더운 지역에서는 나무가 웃자라서 영 실속이 없지만 추운 지방에서 자란 나무는 튼튼한 것과 같은 이치다.  


탄자니아의 아라비카 커피도 아루샤나 킬리만자로 기슭처럼 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 뛰어난 풍미가 특징이다. 하지만 요즘엔 그 원두의 맛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상승한 온도가 커피 원두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고도가 1540m 정도 되는 카라투에서 재배하는 커피가 킬리만자로 산기슭에서 재배한 커피의 '예전 맛'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있다. 커피의 맛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카라투로 옮겨간 것이다. 지구 온난화라고 하면 공해에 찌든 도시의 문제라서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탄자니아에서 피부로 와 닿을 줄이야. 


적도를 중심으로 펼쳐진 커피 지도. 지구가 더워질수록 점점 그 폭이 줄어들 것이다.  산에서 발견된 조개 화석을 보여주며 “이곳이 옛날엔 바다였다는 흔적이죠.”라고 설명해주는 것처럼, 아주 먼 미래에는 커피콩 화석을 보여주며 “자, 이것이 ‘커피’라는 작물이 재배되었던 흔적입니다. 조상들은 이 씨앗을 씹어먹으며 사교활동을 했죠.”라고 엉터리 설명을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 부드러운 커피 향이 사라진다면 미래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커버 이미지 : 탄자니아 카라투 근처 '커피 코너' 카페 내부. @2016

작은 사진 1 : 작고 귀여운 '커피 코너' 카페 간판. @2016

작은 사진 2 :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산 중턱에 카페가 뿅 나타난다. @2016

작은 사진 3 : 예쁘게 층을 내서 가져온 카페 라떼. @2016

작은 사진 4 : 한 장의 메뉴이지만 커피부터 샌드위치까지 알차다. @2016

작은 사진 5 & 6 : 카페 난간 아래의 돌에서 쉴 새 없이 새들이 지저귄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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