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돌아와 주차를 하기 위해 아파트 주차장을 세 바퀴 돌았다. 일요일 밤 12시에는 차들도 고분고분한 학생들처럼 얌전히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차장은 물론 통로까지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한 아저씨가 등산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잠시 지켜보니 터덜터덜 마지못해 걷고 있었다. 밤이 지나면 이제 월요일이 시작되어서일까? 아쉬운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포기하고 아파트를 나와 상가 앞에 주차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알았다. ‘아, 어제 설악산을 갔었지’ 몸 여기저기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일요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으로 먹을) 감자를 삶고 도시락을 챙겼다. 반찬은 전날 밤에 준비해둔 두부부침과 김치볶음이었다. 오이도 썰고, 얼려놓은 물 세 통 중 두 개는 배낭 양쪽 주머니에 넣고, 한 개는 디팩에 넣었다. 새벽 4시 30분에 버스에 타고, 4시간 30분을 달려 한계령에 도착했다.
설악산은 만만치 않았다. 들쑥날쑥한 돌들로 이어진 길을 이리저리 발을 옮겨가며 걷느라 거리에 비해 시간과 힘이 많이 들었다. 뭐 처음에는 항상 힘들어하는 나지만 좀체 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언젠가는 선두에 설 수 있을지). 설악산 산행이 세 번째인 나는 올 때마다 기에 눌리는 기분이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신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발소리도 죽여야 할 것 같다. 잘못한 일이 있는 날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처럼 조심스럽다.
한계령에서 대청봉 8.3킬로미터는 마음속 번뇌와 갈등의 연속이었다. 가다가 멈추고, 이러면 안 되잖아, 자책하고, 심기일전 후 다시 발을 떼고, 그러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위를 보면 힘들어서 그냥 발 밑만 보고 걷다가 한참을 온 것 같아서 이정표를 보면 거리가 조금밖에 줄어들지 않아 맥이 풀렸다. 몹시 실망했지만 그래도 별수 없어 다시 걸었다.
그래도 대청봉이 가까워오자 어디선가에서 힘이 생겼다. 군산에서 설악산에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다시 고속버스로 속초, 그리고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시간을 잘 맞춰도 6시간 이상이 걸려서 당일 산행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전날 도착해서 다음날 산행하고, 돌아올 때도 같은 방법으로 와야 한다. 아무튼 쉽게 오기 힘든 곳을 와서인지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일 테니 힘든 고비는 넘긴 거야,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청봉의 바람은 대단했다. 혼자 우뚝 솟아 있어 바람을 막을 곳이 없어서인지 어찌나 억세고 기세 등등한지 금세라도 몸이 나동그라질 것 같았다. 얼른 바람을 피해 오색 탐방소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야 했다.
안도감 때문인지 처음에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더디게 줄어드는 길과 개성 강한 돌들 때문에 우울해졌다. 발바닥과 발가락이 아팠다. 발가락들 이이건 너무하잖아, 하면서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 만사 정을 봐준다면 설악산이 아니었다. 마음에서는 3단계의 변화가 일어났다. 투정하는 마음 1단계에서 아무 생각도 없어지는 무념무상 2단계, 마지막은 오직 걷기만 생각하는 단계로. 혼자 왔거나 겨울이라면 위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는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한 게 그 정도라니)했다.
내 몸의 한계를 느꼈다. 겁을 먹고 집중한 얼마간의 시간은 본능에 충실한 시간이었다. 내 안에 살고자 하는 원초적인 힘을 확인한 순간.
차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 건어 절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았다. (중략) 이질적인 문화에 둘러싸인 고립된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의 근원을 캐내어 보고 싶었던 혹은 파고들 수 있는 곳까지 파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고유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위기감이 필수요소일까?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로서 성공한 이후에 일본에서 살 수 없었던 이유를 말하는 대목이었다. 그는 낯선 나라에 몇 달씩 집을 빌려 생활하면서 매일 글을 쓰고 달리기를 했다. 어쩌면 매주 산을 가는 내 마음과 비슷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