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접근의 나쁜 예와 옳은 예
페이스북 메신저로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프로필에는 파리에 거주하는 성형외과 의사라고 적혀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하나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이고 또 하나는 수술복을 입고 현미경으로 뭔가를 들여다보는 사진이었다.
순간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온 메시지.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통장 잔액을 알고 싶겠지, 메신저 피싱 일거라고 생각하고 차단했다.
사기가 아니어도 파리, 의사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페이스북 메신저 따위로 접근하는 남자라면 그 수준은 안 봐도 뻔하다.
이참에 수준 높고도 바람직한 접근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평소에 그런 상상을 해보기는 하지만, 사실 도무지 기회가 없는 게 더 큰 문제지만 그건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그나마 내가 다니는 산악회에 40대 싱글이 몇 있다. 아, 오해 마시길. 이곳은 진정한 산악인의 회합의 장이다. 하지만 산악인도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할 수 있는 법. 중년의 불륜이 연상되기도 하는 산악회 얘기를 꺼낸 건 내가 남자, 아니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은 산악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교회라도 다녀볼까싶다) 칵테일파티를 배경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나로서도 유감이다.
한 번은 A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예뻐졌네”라는 말을 흘리듯 하고 지나갔는데,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태도와 분위기가 마치 대학교 때 스스로 인기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하는 행동 같아서였다. 42살인 내가 장 스포츠 가방을 메고 캠퍼스 한복판에 서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이 극심한 부조합 때문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말이 나온 김에 하자면 나는 내가 싱글이라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사명감이 들어있다. 이혼율이 높아져서 2명 중 한 명꼴로 이혼을 한다는데 이혼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쉬쉬하다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직접 말하고 싶다. 나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게 동지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는 길이라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싶은 심정이다. 십자가씩이나. 하하.
처음에 7080 산악회에 가입을 했었다. 나이 때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산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만났는데 누구야, 하고 이름으로 부르고 오빠, 형하는 게 어색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불러왔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게 아니라서 이상했다. 나이가 아니라 생각과 취향이 비슷해야 친구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놓고 호감을 나타내는 남자도 싫었다. 나라는 개인적인 특성을 사진 사람에 대한 호감이 아니라 여자로 대상화해서 나타내는 호감은 불쾌했다. 20대에 클럽을 갔을 때는 그런 작업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가 쌓아온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의 관심을 얻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변한 만큼 남자들의 접근방식도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ㅎㅎ건강해 보이네. 요즘도 산에 자주 다녀?”
불쑥 이런 문자를 보내는 남자. 뭐라고 답을 할지 난감하다. 안부를 묻고 싶으면 자신의 근황을 간략히 말하고 생각나서 연락해봤다, sns 보니 건강해 보인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친한 사이도 아니고 어제 만난 사이도 아닌데 뜬금없는 한 줄 문자를 받고 보면 나를 간 보는 거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괜히 아무렇지 않고 별 뜻 없다는 그 가벼운 말투가 거슬린다.
바른 예는 이런 거다.
“문득 생각나서 카톡을 찾아보니 여전히 산에 열심히 다니나 봐요. 건강해 보여서 보기가 좋습니다. 저는 게으름을 피우느라 산에 못 가고 있어요. 언제 만나서 얘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품위 있고 인간미 있는 문자인가?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만나서 걷고 차 마시고 책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제는 20대의 경박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이성적인 매력이 없는 것보다 예의와 품위가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괴롭다. 남자의 관심을 확인받아서 우쭐했던 게 20대였다면 지금은 존중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