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꾸리기

by 김준정

크리스마스가 끼여 있던 주말, 나는 덕유산 초입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둘째 날 아침, 여기까지 왔는데 산이라도 가볼까, 하고 구천동탐방지원센터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복, 등산화, 스틱, 배낭, 아이젠 그 무엇도 없는 채였다. 운동화에 롱 패딩 차림. 산악인이라 자부하는 지금은 겨울 산을 장비도 없이 오르는 사람을 보면 위험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그때는 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8킬로미터를 올라가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나는 생수 한 병만 달랑 들고 가는데 등산객들은 배낭에서 사탕, 초코바를 꺼내서 나눠먹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저기요... 저도 하나만 주면 안 돼요, 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사탕 하나가 그렇게 간절히 먹고 싶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삼삼오오 모여서 치킨, 김밥, 각종 반찬을 펼쳐놓고 먹는 걸 보고 난 뒤에는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극한 허기. 아침도 대충 먹었는데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삼박자가 딱 들어맞는 상황. 그래, 향적봉을 가야 한다, 거기에는 라면이 있다, 라면 국물이 나를 펌프질 했다.


겨울인데 땀이 이렇게 나도 되는 건지, 롱 패딩을 벗어던졌다. 뒤에서 보면 싸우는 걸로 보일 정도로 롱 패딩과 사투를 벌였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야 향적봉에 도착한 나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의 심정으로 매점부터 찾았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사발면, 초코파이, 커피를 사서 눈밭에 펼쳐놓았다. 사발면의 따뜻한 온기가 새삼스러웠다. 크리스마스에 일용한 양식을 하사 받은 어린양은 사람들로 북새통인 그곳 한쪽에서 만찬을 즐겼다.


내가 아는 초코파이 맛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복학생 선배가 말했던 ‘군대 화장실에 몰래 먹는 초코파이 맛’인가 싶었다. 어떤 것들은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초코파이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사발면을 두 손으로 받친 채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마시고 나자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득하고 숨 막히는 곳에 와있었다. 전국의 온갖 산을 누빈 지금도 향적봉에서의 조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곳이 분명히 존재하고 생각보다 그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곳.


여기서 아침을 맞이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배가 부르니까 드는 생각) 사발면에 코를 박고 있느라 보지 못했던 대피소를 살펴봤다.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잠도 잘 수 있나? 휴양림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예약을 한 사람만 숙박이 가능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숙박을 할 수 있나 보네.

향적봉 대피소에 예약을 검색하다가 지리산 종주를 알아버렸다.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면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거다, 싶었다. 종주를 다녀온 사람들의 글에는 비장함과 자부심이 있었다. 나도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나면 그런 게 조금쯤 생길 수 있을까, 한 달 후 나는 지리산 종주를 떠났다.



지리산 종주를 위해 필요한 장비가 한 둘이 아니었다. 온라인 쇼핑으로는 뭘 사야 할지 도무지 몰라서 등산 전문매장을 가야겠다 싶었고, 내가 사는 곳은 소도시라 본가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새로 생겼다는 아웃렛 단지에 있는 등산 전문 매장은 규모가 컸다. 1층에는 등산복, 2층은 등산용품이 있었다.

“버너와 코펠 보여주세요.”

사장님에게 말했다.

“그거는 뭐하그러!”

나는 사장님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아빠가 했다. 월남전에 참전해 박격포를 담당했던 아빠는 평소에 귀가 잘 안 들리는데 지금은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캠핑하시게요?”

사장님이 물었다.

“아뇨, 지리산 종주할 건데 대피소에서 사용할 거예요.”

“1월 달에 누가 지리산을 간단 말이고? 눈이 얼마나 있을 건데!”

거의 속삭이듯 말했는데 아빠는 이번에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이날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윙하는 소리가 난다고 우리가 답답해하든 말든 자기는 안 들어도 불편할 것 하나도 없다며 끼지 않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보청기를 착용했다.


“아빠, 계모임 안 가?”

“그거 뭐 늦어도 되고 안 가도 된다.”

아빠는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 내가 등산복 사러 가겠다고 하자 마침 근처에 계모임이 있다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했지만 아빠는 내 말을 무시했다.


고등학교 수련회는 50명의 반 아이들이 다 가는 거였는데 아빠는 못 가게 했고 토요일은 오후 2시까지 집에 오라고 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1차로 즉석 떡볶이를 먹고 2차로 친구 집에서 노는 게 당시 나에게 유일한 재미였는데 아빠는 등하교 시간이 아닌 시간에 버스를 타고 오는 게 위험하다며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에 오라고 했다. 이런 일들은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아무튼 아빠의 감시와 억압을 먹고 자란 인간이 바로 나다.


나는 아빠 말을 못 들은 척하고 티타늄 소재로 되었다는 코펠을 살펴봤다.

“그런 거는 전문 산악인용으로 히말라야 등정할 때나 쓰는 거고요, 손님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장님이 ‘군대 반합‘을 가리켰다.


이후 히말라야 등정을 하고 산악인이 될지 몰랐던 나는 사장님의 말에 바로 수긍하고 군용 반합을 골랐다. 50리터 배낭을 메면서 여기에 2박 3일 치의 식량, 옷, 장비가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큰 거를 메고 우예 산에 간단 말이고?”

나도 딱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역시 아빠의 잔소리는 나보다 빨랐다.


산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면 고어텍스 재킷을 사야 했다, 누구와 싸우는 걸로 보이지 싶지 않다면 파카는 안된다는 교훈을 덕유산에서 얻었다. 정상가 80만 원인 고어텍스 재킷을 50% 할인해서 40만 원에 사고 배낭 20만 원, 등산화 18만 원, 스틱, 스패치, 장갑 등등을 사니 100만 원은 우습게 넘어버렸다. 하지만 생명을 돈과 바꿀 수는 없는 일.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 사기로 했다. 아빠의 잔소리는 BGM으로 들으며 장비를 하나씩 사는데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지리산까지 쫓아오지는 못한다는 걸 아빠도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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