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에는 오락실이 3개가 있었다. 오락기에는 최고 단계까지 간 사람 이름을 넣을 수 있었는데 첫 번째로 ‘KHG’(오빠 이니셜)이 있었다. 문제라면 아빠는 이를 축하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 오빠가 오락실 간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되는 날에는 오빠는 매를 맞았다.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밖에 마치지 못했던 아빠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자기처럼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아들이 양복 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걸 보는 게 아빠 꿈이었다.
오빠를 오락실에서 찾아오는 일은 내 임무였다.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는 “오빠 집에 있느냐?”를 나에게 인사처럼 했다. 그다음은 “오빠 밥 줬냐?” (강아지도 아닌데) 오빠가 없으면 엄마는 나한테 짜증을 냈다. 아빠의 화가 부부싸움이 되기도 했지만 오빠가 아빠에게 맞을까 봐 걱정해서다.
명절에 큰집에 갔다가 외갓집에 가기 전에 집에 들렀을 때였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오빠가 사라졌고, 엄마는 오빠의 감시를 소홀히 한 나에게 죄를 물었다. 뒤늦게 오빠가 없다는 사실을 안 나는 엄마의 욕설이 섞인 역정을 들으며 오빠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때 옥상에서 보고 있었던 아빠가 소리쳤다.
“딸까지 잘못 키우고 싶나!"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꽤나 혼란스러웠다. 오빠를 감시하는 건 나의 오랜 임무였는데 그게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란 건지, 그렇다면 나는 억울하게 이 일을 해왔다는 건데. 아니 그런데 이 모든 사단의 발단은 아빠 때문이 아니던가? 애초에 아빠가 화를 내지 않으면 엄마가 나한테 닦달을 하지도, 내가 오빠를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물건은 아니지만 우리는 ‘데리러 간다’ 대신 '찾아온다'라고 했다) 이런 반복의 순환고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 집 생태계 피라미드의 말단에 있는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디 묶어 놓을 수도 없고 발이 달린 인간을 내가 무슨 수로 못 가게 하란 건지. 누나였다면 혼내서라도 붙들어놓겠지만 오빠는 내 말은 듣지 않았다. (오빠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구들의 오빠들이 그렇게도 듬직해 보였다. 이후 내가 한두 살 나이가 많은 남자를 조금 우습게 생각하는 일에 오빠가 기여한 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첫 번째 오락실부터 꼼꼼하게 살폈다. 빼곡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은 모두 화면에 집중하면서 손을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왼손으로 조이스틱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뭔 밥이 나온다고 총알을 쏘아댔다. 뒤에서 구경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마치 자기가 오락을 하는 양 실수를 하면 탄식을 하고, 아까워했다. 마치 류현진이 등판한 야구경기를 보는 듯했다.
그런 아이들을 하나하나 제쳐 가다 보면 게임과 물아일체가 된 오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언제 나갔노? 오빠 니 때문에 내만 엄마한테 씨게 혼났다 아이가.”
“이 판만 죽으면 가께.”
오빠는 날르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하지만 오빠의 전투기는 총알도 피해 가는 액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온갖 위기를 물리치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오빠는 살려고, 나는 죽기를 바라며 화면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축하음이 경쾌하게 울려 퍼지면 우리는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아빠한테 다 일러준다. 오빠 니 마음대로 해라.”
내가 벌떡 일어서자 오빠는 다급하게 200원을 꺼냈다.
“이걸로 떡볶이 먹고 있어라.”
200원부터는 단무지를 준다. 오빠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오락실에서는 떡볶이도 팔고 있어서 먹으면서 오빠를 감시할 수 있었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에게 작은 포상을 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떡볶이를 먹는 동안은 오빠를 채근하지 않았다. 단무지를 아껴서 먹느라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에도 오빠 게임은 죽지 않았다. 나 혼자 간다며 일부러 촤르륵 소리가 크게 나게 문을 열고 나갔다. 창문으로 본 오빠는 엉덩이를 떼고도 엉거주춤 서서 끝까지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었다.
아빠는 자신이 하는 고생이 다 우리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오빠가 공부만 잘한다면 이보다 더한 고생도 괜찮다고 했다. 아빠가 꿈에 집중할수록, 더 노력할수록 우리 집은 자주 전쟁터가 되었다. 아빠는 오빠를 때리다가 “이게 다 너 때문이다”라며 엄마와 싸웠다. 그럴 때 아빠는 무서웠다. 나는 아빠… 아빠… 하며 울기만 했다. 어디로 갈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었다. 지켜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빠가 오락실에 안 가고,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오빠는 맞지않아도 되고 엄마 아빠도 싸우지 않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기업이 성공하면 서민이 잘살게 된다는 우파정권의 공략 같은 아빠의 말을 나는 오래 믿어왔다. (그래서 지금 아빠가 우파정당을 지지하는 걸까?) 오빠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빠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빠가 공부를 잘해야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는 빈약한 논리를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말처럼 의심 없이 믿었다.
우린 어둑해진 골목길을 걸었다. 내가 앞장서고 한참 뒤에 오빠가 따라왔다. 외갓집을 가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아빠는 아까보다 몇 배는 더 화가 났을 거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집을 향해 우린 아무 말없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