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기차 안에서 조는 바람에 도착역을 지나친다. 1시간 30분을 기다려 역방향 기차를 타고 구례역에 도착하니 계획한 출발시간에서 2시간여 지체된 상황이다. 게다가 성삼재까지 간다던 택시도 빙판길에 올라가지 못하고 시암재에 여자를 덜렁 내려놓고 가버린다. 이건 종주코스에 없는 건데..... 여자는 A4 3장 빼곡히 적힌 일정을 보며 중얼거린다.
하는 수없이 처음 매어 보는 50리터 배낭을 고쳐 메고 빙판이 된 아스팔트 길을 올라가는데 또 다른 택시 한 대가 멈춰 선다. 택시에서 20대 여성이 자신보다 두 배쯤(진짜 2배) 큰 배낭을 들고 내린다.
얼굴을 보니 인상이 좋은 아가씨 같다. 여자는 동병상련을 느껴 무척 반가웠지만 혹시 방해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말을 걸어본다. 둘은 지리산을 향해 함께 걷기 시작한다.
<지리산 종주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1. 삼겹살 기름
삼겹살 구울 때 나오는 기름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햇반을 비벼 먹을 때 쓰는 것(여기서 트랜스 지방이니 하는 불손한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2. 배낭의 실제적 사이즈를 이해하는 방법
왜 내가 소주를 가방에 쑤셔 넣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종주 내내 떠나지 않는다. 배낭은 소주를 넣고 남은 공간이 그 배낭의 원래 사이즈로써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른 그 어떤 것이 없어도 이 소주로 교환 가능하며 그 가치는 측정 불가능. (2017년은 국립공원 내 음주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이 없었다)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세면대, 비데 달린 양변기, 샤워기, 화장대, 옷장이 없음으로써 씻고 말리고 옷 고르고 화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제로에 가까워짐으로써 몸뚱이는 그저 걷고 먹고 그다음(?) 자면 된다. 일어나면(?) 다시 먹고 걸으면 된다. 굉장한 시간 활용의 효율성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4. 잠을 자고 눈을 뜨는 방법
하루 종일 걷고 배 채우고 눈감으면 잡념은 사라진다 내 배부르고 머리 누일 곳 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 두 가지면 되는 것이었다니)
눈을 뜰 때 알람은 필요 없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님으로 비워 주어야 함은 물론 갈 곳이 있기에 주저 없이 일어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고 오늘 또 가야 할 곳을 향해 주저 없이 일어나는 아침을 일상에서도 맞이하기를 바라며.... 이 또한 내가 꿈꾸는 자유다.
5. 어떤 신체부위의 위치를 느끼는 방법
그곳이 어디든 종주 이튿날부터 생기기 시작하며 걸을 때마다 몸이 알려준다. 그 고통은 종주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하며 약은 없다. 쉬어야 하는데 도착지점까지는 계속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통제라면 아까 소주(?) 술김에 걸으면 안 아프다.
일상에서 벗어나 그 누구도 아닌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걷고 먹고 마시고 웃다 보니 얼굴에 통통하니 살이 오르고 가슴에 뜨거운 영감으로 가득 채워 온 것 같다.
감옥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힘들어서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파도가 치지 않기를,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 버티기보다 파도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떠난 지리산 종주, 혼자 엄청난 고독을 씹으면서 걷는 고행이 될 줄 알았더니 이건 뭐 유쾌하고 감동적인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다.
2017.01.30
지리종주를 다녀와서
위의 글은 처음 지리산 종주를 했던 2017년에 썼던 글이다. 시작부터 계획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희(인상 좋은 아가씨)를 만났고 유 대장, 하 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광주, 수원, 서울, 군산에서 온 우리는 직업도 나이도 모두 달랐지만 3일간 가족이었다.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에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배역에 충실한 배우 같았다.
유 대장은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산에서 말을 거는 사람은 죄다 여자였고 나와 지희도 거기에 걸려들었다. 그는 술을 가져오지 않은 우리를 구박하면서도 술잔은 열심히 채워주었다.
"술 모자라면 네가 구해와야 한다."
이 첩첩산중에 술을 어디서 구해오라는 건지 나는 유 대장의 말을 흘려들었다.
둘째 날 유 대장은 자기가 가져온 술이 떨어졌다며 투덜거리더니 남자 산객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내려가는 길입니까?"
상대가 아니라고 하면 지나치고 그렇다고 하면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가다 보면 어디가 조망이 끝내준다, 거기서 사진을 찍어라, 차편은 택시를 타고 가서 기차를 타는 게 제일 빠르다, 내가 알고 있는 택시기사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 하면서 상대의 혼을 빼 논 다음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다.
"술은 좀 남았습니까?"
유 대장의 속셈을 알아챈 나는 창피해서 멀치감치 떨어져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산객이 선뜻 소주 두 병을 내놓는 게 아닌가? 육포, 라면 등 남은 식량을 마구 꺼내놓으며 무거웠는데 잘됐다며 고맙다고 했다. 산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 덕분에 유 대장은 "봤지?" 하면서 더욱 기세 등등해졌다.
유 대장이 술 보급에만 힘쓴 건 아니었다.
“내일 형제봉에서 일출을 보자고.”
형제봉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유 대장이 시키는 대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처럼 하얀 소복 입은 처녀 귀신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산속이었다. 그렇게 완벽한 어둠에 갇힌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참을 걸었을 때 파리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여명이었다. 까만색 도화지 위에 파랑, 주황, 빨강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색의 스펙트럼이 펼쳐졌다. 눈 앞뿐 아니라 옆과 뒤까지. 그곳은 아득히 먼 것 같기도 하고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라고 하면 맞을 장면을 맞닥뜨리게 되니 잠자고 있던 생각이 깨어났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내가 이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숙연하고 경건한 기분. 내 마음도 변화무쌍한 감정으로 물들었다.
형제봉 1115미터에서 보는 일출은 특별했다. 몰래 엿보는 듯하기도 하고 내 것인 양 느껴지기도 했다. 일출 직후가 인상적이었다. 추위와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온통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버리는. 굽이굽이 산골짜기까지 골고루 비춰주는 햇살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뭐가 이렇게 감사한지 모르겠지만 엄마품에 안긴 듯 마냥 감사했다. 해병대 체험 같은 걸 각오하고 온 나는 얼이 빠져바렸다. 회초리 맞을 걸 예상했는데 짜장면을 사주는 선생님을 만난 기분이랄까?
마지막 날 천왕봉을 올라갈 때는 칼바람, 비바람이 몰아쳤다. 문득 눈물이 솟구쳤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를 몰아세우며 살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디까지 다그치려고 여기까지 끌고 온 거냐며 이제 그만하라고 남과 비교하는 일도,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일 모두 그만두라고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눈물과 빗물이 범벅이 된 채로 통천문을 지나 1915미터 천왕봉에 섰다.
모든 게 자신이 없었다. 남편과 이혼하는 것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일도, 친구와 가족들 앞에 서는 일 모두. 마흔이 넘으면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여전히 의지할 곳을 찾고 있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3일간 산속에 있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강해져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산에 있는 돌멩이, 낙엽, 나무, 산죽 어느 것 하나 같은 것도 없고 서로 닮으려 하지도 않았다.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었다.
죽비를 맞는 것처럼 거센 빗줄기를 맞아서인지 상상초월의 바람을 맞아서인지 뭔가가 씻겨 내려간 것 같았다. 여전히 확신 같은 건 없지만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파도 타는 법따위 몰라도 상관없다.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삶에 있어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잃지 말자, 누구와도 대체 불가능한 나를 잃지 말자, 나로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아내자. 그걸 위해 나는 산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