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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21. 2021

수박 셔틀

2인 가족의 삶에서 내가 얻은 건 타인에 대한 관대함

수박이 나온 지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수박 셔틀을 벌써부터 시작할 수 없다는 생각에 최대한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딸기라고 생각하고 딸기를 사서 나오는데 수박이 6,900원이라는 걸 보는 순간 집에 있는 수박 돼지 얼굴이 떠올라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한 손에는 수박, 다른 손에는 딸기 세 팩, 양파, 오이, 고기가 든 장바구니를 들었다. 아, 보미의 목줄까지 든 채였다. 집까지 원래 15분이면 가는 길을 짐 때문에 쉬었다 가다 보니 30분 이상이 걸렸다. 집에 들어와 보니 초밥이는 또 통화 중.

  

“뭐 먹을래?”

“안 먹어.”


그 말에는 밥이고 뭐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제발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라는 뜻이 듬뿍 담겨있었다. 저 꼴을 어떻게 계속 봐주나, 하면서 칼을 들었다. 올해 첫 수박은 과연 잘 익었을까? 두구두구, 쩍, 하고 수박을 두 쪽으로 갈랐다.   

단맛이 집중된 하얀 부분

  

“와, 수박이다.”


어떻게 알고 나온 건지 수박을 들고 산 넘고 물 건너 온 엄마는 안 보이고 수박만 보이냐는 말 대신 하얗게 단맛이 집중된 부분을 잘라서 초밥이 입에 넣어줬다.   

   



얼마 전 초밥이가 아빠를 만나고 와서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초밥이가 아빠와 과일을 사러 갔는데 주인이 유난히 친근하게 대했다고 했다. 초밥이는 처음 갔지만 아빠의 단골가게인가 보다 하고 주인 할머니가 준 참외를 먹고 있었는데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할머니가 물었다.     


“엄마는 왜 같이 안 와?”

“(잠시 고민했겠지) 엄마하고 아빠 같이 안 살아요.”

“그래? 엄마는 무슨 일 하시는데?”

“엄마 공부방해요.”

“힘드시겠네.”     


그 얘기를 듣자 왠지 모를 자격지심과 아이가 느꼈을 난처함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말했다.

“잘했네.”

“뭐가?”

“있는 그대로 말했으니까. 네 잘못도 아닌 걸 가지고 거짓말하거나 주눅 들 필요 없잖아?”

“나는 엄마하고 아빠가 따로 사는 게 좋은데.”

    

사실 이 소리를 초밥이가 몇 번 하기는 했다. 아빠는 예민해서 전화 통화도 마음대로 못하고 눈치 보게 된다고, 같이 살면 안 편할 것 같다고 말이다.      


요새 내가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하는 중이라 또 그쪽으로 쏠린 건지 모르지만 동훈이 지안에게 “아버지 뭐 하시냐”라고 물었고, 지안은 “돈이 있는 집구석인지 아닌지 알려고 그러냐, 나는 아저씨 아버지 뭐 하는지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그런 게 왜 궁금하냐”라고 했다. 자기의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아이가 상처 받을지도 모르는 질문을 한 할머니의 무신경함이 원망스러웠다.   


개그맨 송은이가 인생 드라마라고 극찬을 해서 보기 시작한 <나의 아저씨>는 알뜰하고 다채롭게 즐길 거리가 많은 드라마였다. 이건 뭐 이해 안 되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서 한심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박동훈의 아내 윤희였다. 차라리 이혼을 하지 뭘 저렇게 연기하고 살까 싶었다.

     

하지만 웰 메이드 드라마는 불륜녀마저 공감하게 하고 말았다. 동훈에게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이 있고 곁에 있는 사람까지 외롭게 한다는, 부부만이 알 수 있는 허기를 말할 때 나는 또다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셋이 살다가 둘이 살게 된 초기에는 나도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상한 건 지금은 처음의 상실감은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제는 기본 값이 2인 가족으로 설정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이틀 만에 자취를 감추는 2인 가족 간식

   

9년의 결혼 생활, 5년의 별거, 두 가지의 형태의 삶을 경험한 나로서는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결혼생활은 두 집안의 가족행사와 가족관계 때문에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고, 관계 속에서의 나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혼이 힘든 일인 건 맞지만 무조건 이혼은 안 돼, 하고 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어느 정신과 전문의의 말처럼 한 가지 삶의 형태만 고집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까지 결핍의 시선으로 보게 되고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게 되지 않을까. 각자 조금씩 다른 모양의 모자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불행할 이유는 아니라는, 내가 별거를 통해 얻은 거라면 그런 타인에 대한 관대함 같은 거다.     


이번 주는 초밥이가 목요일에 아빠를 만나러 갔다. 어차피 온라인 수업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금요일 아침에 (초밥이는 질색하는) 고구마를 구워 먹고 점심에는 어제 보연 언니가 사다 줘서 먹다 남긴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면서 소설 <새의 선물>을 읽었다. (수박 셔틀을 포함한) 행복하고 충만하지만 삭신이 쑤시는 일을 삼 일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휴가라도 얻은 기분이었다.      

    

건강하고 예쁜 음식은 초밥이가 있을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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