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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14. 2022

날라리인 줄 알았는데 개념 있네

나와 이인조로 한 시절을 보낸 ‘주’는 나와 다른 점이 많았다. 캠퍼스 첫 번째 봄, 주체 못 할 자유와 기대에 부풀어 있을 그때 불쑥 가 남자와 약속 있다며 밥 먹으러 가겠다고 했다. 내가 (남자 친구는 있지만) 남학우와 친분을 쌓는 일은 명랑한 학교 생활의 필수조건이기에 마다하지 않는 걸 알면서 냉큼 합석을 주선하지 아니하고 혼자만 간다는데 배신감을 느꼈다.     


그즈음 나는 버스 두 코스 거리의 학교를 놔두고 도시 끝자락에 있는 남자 친구의 학교로 등교하느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와 달리 는 이 모든 행사에 성실하게 참여했고, 학교에서 주목할만한 남학우들의 정보를 얻는 소득을 얻었다. 그날 점심 약속한 학우도 그들 중 하나였다.      


1시간이나 지났나? 생각보다 빨리 복귀한 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고, 있었던 일을 보고하지도 않았다. 남학우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공유하는 게 우리 조직의 암묵적 룰인데 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행동이냐고 나는 하지 못했고, 얘 좀 깨는데, 하고 그날 일은 넘어갔다.      


25년이 지나 ‘나 홀로 점심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주가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남학우는 친구와 함께 나타나 “왜 혼자 왔냐?”라고 했단다. 남학우도 당연히 우리가 이인조니까 이인조로 나타날 줄 알았던 거다. 분식집에서 머쓱하게 남학우는 된장비빔밥, 주는 돈가스를 먹지 않았을까 나는 추정해봤다.      


내가 김치볶음밥 같은 걸 주문할 때 는 꼭 돈가스를 시켜서 칼로 고기를 썰어 포크로 찍어먹었다. 열심히 밥을 퍼 나르는 나의 맞은편에 곱게 화장한 얼굴로 입을 오물거리는 주가 있었다.     


돈가스와 김치볶음밥만큼 우리의 연애 노선 또한 달랐다. 나는 호르몬에 의지한 남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전략을 세웠고, 그중 하나는 남자 친구를 내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의 비용을 내가 내는 것이었다. 일인당 맥주 3000cc를 먹던 나와 하마 같은 친구 네 명이 먹는 술값만 3000cc에 9천 원이니까 4만 5천 원이었다. 거기다 안주까지 십만 원 가까이 나왔는데 그 돈을 어떻게든 내가 냈다.      


“어? 내가 낼게.”

“아냐, 내 친구들이 먹었으니까 내가 내.”

하는 거다.     


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란 남자 친구의 표정이란. ‘날라리인 줄 알았는데 개념 있네’가 얼굴에 쓰여있었다. 사실 그 돈의 일부는 나의 협박에 못 이긴 친구들의 주머니에서 나왔지만, 그걸 남자 친구가 알리가 없었다. 반전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탄생했고 더 이상 내 친구들도 눈치 없는 하마가 아니었다.     


2차 노래방에서 나는 벌떼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가사를 외우느라 골백번은 부른 그 곡, ‘Can’t Fight the Moonlight’를 불렀다. 빠밤빰빰, 전주가 흐르면 벌떼들은 일제히 휴지로 귀를 틀어막았고 영문을 모르는 남자 친구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줄 알고 1인 관객이 되어 격한 호응을 했더랬다.     


노래방 하면 주를 빼놓을 수 없는데 주는 소찬휘의 <Tears>, <현명한 선택>, <헤어지는 기회>를 열창했고, 주의 성량은 늘 마이크 성능 이상이었다. 도대체 시끄러워서 남자 친구와 말을 못 하게 해서(일부러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주가 눈을 감고 노래에 심취한 틈을 타 마이크 줄을 빼버렸는데, 그래도 소리가 조금도 줄지 않아 아연실색하게 했다.     


차라리 타령을 배웠으면 득음을 했을 텐데 왜 산이 아니라 노래방에서 성대를 단련시켰는지 모를 일이다. 마이크를 관리하기 시작한 건 내가 예약한 곡을 주가 자꾸 따라 불렀기 때문이었다. 소찬휘와 대결을 펼치는 기분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나는 입만 벙긋거리는 금붕어가 되었다. 내가 마이크 두 개를 사수하고 주는 병따개 같은 걸 쥐고 노래해도 결과는 주의 완승. 주는 창자의 길을 갔어야 했다.   

  

주는 연애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 전략을 고수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처음 보는 남자가 뽑기를 한 인형과 놀기. 옆에서 인형한테 말을 시키는 주를 두고 나는 “술을 마시면 좀 심해져요”라고 하면, 남자는 진심으로 믿는 표정이었다.      


주에게 되지도 않는 연애 조언은 얼마나 많이 했나 모른다. 우회적인 방식이 더 빠른 방법일 수 있다. 세찬 바람은 옷을 더 여미게 하지만 따스한 햇살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것처럼,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매력을 어필할 때 상대의 마음이 움직인다. 순대국밥을 먹으러 가서 여자가 그릇을 받침대에 척 걸치고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남자는 감동하더라, 같은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결과를 놓고 보면 주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건 참으로 잘한 일이다.      


주는 사남매 중 막내로 자라 애인한테만큼은 관심과 집중을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레이스 카라와 개더스커트를 좋아했던 주는 천상 여자였고, 여성적인 취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바랐나 하는 생각이 20여 년이 흘러서야 들었다.     


벌떼들은 연애가 시작되면 하나둘 날아갔다가 종료되면 돌아오고는 했지만, 나는 언제나 모두 함께(옆 테이블 손님까지) 하는 걸 좋아했다. 당시에는 친구들에게 서운했고 남자 기분을 맞추는 게 못마땅했다. 이제와 생각이라는 걸 해보면 어느 쪽이든 내키지 않을 때도 있었을 텐데 내 기분만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와 남자 친구가 나를 맞춰주느라 참아줬다는 깨달음이 참 빨리도 찾아왔다.     


뜬금없는 영어 가사가 나오는 곡,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을 절절하게 불렀던 주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음식부터 옷 입는 취향까지 뭐 하나 같은 게 없는 우리가 어떻게 붙어 다닐 수 있었나 했더니 넘치는 감정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표현할 길은 없지만 같이 얘기하다 보면 조금 채워지는 것 같았다. 뭘 해도 웃기고 만만한 친구가 있어서, 그때가 아니었다면 인생에서 한 번도 그런 대책 없는 객기와 흥을 부려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인형과 대화하는 친구가 그저 고맙다.     


언니들에게 주는 ‘신민아’로 통하는데, <갯마을 차차차>를 보는데 신민아 얼굴에 주가 보였다. 사팔뜨기를 하니까 정말 똑같았다.               

사팔뜨기를 하면 친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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