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몸, 쓰는 몸, 계속하는 몸
하루 종일 긴장했더니 몸이 아팠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안이하게 살았나 되돌아봤다. 한산중학교 특강을 마치고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특강 망했어.”
“왜?”
“그냥 엄마가 못했어. 허무하고 바보 같고 맥 빠진다.”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 근데 엄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집에 돌아온 시간은 4시 20분. 김치찌개를 데워서 한술 뜨는데, 진이 다 빠지는 게 나는 이제 밖에서 하는 일은 못 하는 사람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년을 출퇴근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불굴을 만들어 두더지처럼 숨었다.
학교에서 종일 마스크를 끼고 예술제, 졸업식, 수련회 준비로 애쓰는 선생님들도 있는데 나는 참 편하게 살고 있구나. 글 쓰다 배고프면 밥 먹고, 산책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하다니. 자책 때문에 굴속에서도 편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풋내기 작가에게 북토크를 겸한 강의를 제안해준 지 선생님한테 미안했다.
<돈없이도> 제목으로 한 이유
작가가 된 계기
글 쓸 때 무슨 생각을 하나요?
책을 쓰면서 힘들었던 점
만약 돈이 10억 생긴다면
이것은 내가 쓴 책 <돈없이도>를 읽고 학생들이 한 질문인데 그에 대한 답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대학생이었을 때, 부산에 놀러 가면 오성급 호텔 앞에 외제차를 탄 내 또래들이 있었어요. 저와 친구들은 오만 원짜리 민박집에 자면서 막연히 오성급 호텔과 오만 원짜리 민박집의 가격만큼의 행복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타강사는 아니지만 대구 성서 학원가에서 입지를 다져 수강생 수입의 35퍼센트 급여를 받는 강사가 되었어요. 어디에서 학원을 차려도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군산에서 개원했어요. 위치, 시기, 운이 맞아서 정착하는 데 성공했어요.
오성급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며 뿌듯했지만 잠시였어요.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아서 저도 의아했어요. 그즈음 청소년 상담센터 소장님에게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부탁했어요. 얘기를 나누는 중에 소장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원장님은 기질에 맞지 않는 일을 하시네요? 경영과 수학이 원장님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애를 쓰며 살게 돼요. 기질에 맞는 일을 하면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처럼 자유로워요.”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어요. 그때 저는 애쓰면서 살고 있었던 거예요. 문이과, 전공, 직업 선택에서,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내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질문해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어이없지만 사실이었어요.
39살,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게 끝인가? 이제 늙는 일만 남은 건가?’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어요. 상담받고 책을 읽었어요.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에 소개된 검사는 34가지 강점 중 5가지를 알려줘요. 그런 탐색을 쌓아나갔어요.
지금부터 4년 전, 군산 한길문고에서 배지영 작가와 함께하는 에세이 쓰기 수업에 참여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글쓰기가 저한테 맞는 거예요. 앞서 말한 검사에서 저의 강점은 행동, 발상, 수집, 미래지향, 주도력이 나왔는데, 새로운 글감으로 글을 자아내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내일에 대한 기대가 생겼어요.
문제는 폐업하고 글을 쓰려고 하니까 쉽지 않은 거예요. 나한테 맞는 일을 찾아도 술술 풀려나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수학 공부법 유튜브만큼은 18년을 해온 일이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만든 걸 보니 내가 못 보겠더라고요. 글쓰기, 유튜브, 블로그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어요. 일이 년을 무기력과 자괴감 사이를 오가다가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기록하는 몸’ 만들기 훈련-감사 일기 쓰기, 소설 또는 시 한 페이지 필사, 5분 책 읽고 한 문장 쓰기
3년을 매일 하다 보니 ‘기록하는 몸’에서 ‘쓰는 몸’으로 바뀌었어요. 영상, 블로그, SNS에 독특한 게시물을 만드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예요. 고유함에 만들어지는 거죠.
말은 얼마나 무용한지. 강의 제목은 ‘고유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이었다. 2시간짜리 강의를 한 시간 만에 끝내고 도망치면서 다시는 특강 같은 거 하지 말자고, 안 되는 일도 있다, 이것만큼은 내가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굴 속에 파묻혀있다가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벽에 부딪쳤을 때 다른 길을 찾으면서 ‘계속하는 몸’이 되는 건가. 강의에서 못한 말을 글로 쓰는 것처럼. 망해도 다시 한번.
신은경, 전은덕 작가와 공부법에 관한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한길문고에서 합동 강의를 하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음날, 나는 한길문고 대표님에게 톡을 보냈다.
“서점에서 ‘새 학년 교재 선택, 학습 고민 베테랑 선생님에게 물어보세요’ 시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신은경, 전은덕, 제가 함께 질의응답 형식으로요. 서점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대표님은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좋아하셨다. 한길문고는 화분 같다. 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커나가게 해주는 화분. 혼자는 할 수 없다는 걸 오늘도 배운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