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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07. 2023

<리바운드>를 이야기해야 할 때

기술 1-마음은 가난하지 않은 명랑함 

영화 <리바운드>를 4월 5일 개봉일에 맞춰서 관람했다. 내가 영화를 보다가 이렇게 열렬히 응원한 적이 있었나? 실감 나는 연출 덕분에 영화관을 농구장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골을 넣으면 세리머니를 하지 않나 선수들(배우들)이 쓰러지면 안타까워서 눈물을 훔쳤다. 그랬더니 영화관을 나오는데 신기할 정도로 속이 후련하지 뭔가. 누가 잘되기를 바랄 때 그들과 하나로 연결되고, 내 욕심이 사라지는 느낌이 좋았다.      


보통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곧바로 리뷰를 찾아본다. <헤어질 결심>을 봤을 때 미진한 이 감정이 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봤나 해서 유튜브를 시청했다. 하지만 <리바운드>를 보고 나서 내가 느낀 그대로 소화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      


농구만 얘기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희들이 앞으로 농구를 하든 다른 걸 하든 겁먹지 말고 다시 잡아내라.”     


강코치가 결승전에서 한 말이다. 농구를 계속하고 싶어도 대학에 선발되지 못하는 선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해줄 말을 별로 준비해두지 못했다. 슛을 쏴도 들어가지 않을 때, 공이 튕겨 나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잘하고 싶었던 일일수록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게 두려워서 다음부터는 좋아하는 일보다 유리한 일을 택하는지 모른다. 


나는 문이과 선택부터 전공, 직업을 내가 가진 자원에서 손해보지 않고, 점수가 아깝지 않은, 돈벌이하기 좋은 길을 찾아왔다.  

 


    

국어시간이면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과 시는 자연스럽게 나와 하나가 되어 물결을 타고 함께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빡빡한 고등학교 시절 잠시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던 것도 국어시간 덕분이었다. 국어선생님들을 친밀하게 느꼈고 속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어쩐지 내 마음을 잘 알아줄 것 같았다.      


하지만 대다수 70년대생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이과를 갔고, 귀여운 학점 때문에 대기업 취업에 실패하자 학원일을 시작했다. 어쩌다 하게 된 일이지만, 잘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새벽 1시까지 수업하고, 스터디를 하거나 (믿을 수 없겠지만 그 시간에) 과외를 했다. 사랑과 야망의 시절을 보내고 억대연봉이 남이 아닌 내 것이 된 적도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매일 이런 생각을 하는 삼십 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     


“이게 끝이라고? 이렇게 늙어가는 일만 남았다고?”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인생이 이럴 수는 없다고,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심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가장 두드린 책은 한비야 작가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다. 매일 새로운 길을 떠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하루를 살아가는 그녀가 부러웠다. 간절하게.       


그즈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독서와 상담이 자기 탐구가 되었고,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쌓아가다 보면 기대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학원을 폐업했고, 현재는 평일에는 과외를 하면서 글을 쓰고 일요일에는 산에 가고 있다.     


내가 응원한 선수들 아니 배우들

슈팅한 공이 골인되지 않았을 때 다시 잡아내는 ‘리바운드’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이제는 세대를 막론하고 리바운드, 리바운드 기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때다. 나에게도, 내 딸에게도, 청년에게도, 과거에서 의미를 찾는 시간이 필요한 나의 70대 부모님에게도.      


(잘 아시겠지만) 나는 ‘돈 없이도 누릴 수 있는 것’을 기록했다. 폐업한 후의 불안과 상실감을 떨쳐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생활을 유지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나에게 여전히 많은 것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하게 하는지. 이 경험을 글을 써서 공유했고, 덕분에 돈을 적게 벌어도 마음은 가난하지 않은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화관을 갔던 날도 맥주를 마시면서 볼까 해서 매점에 갔더니 350ml 캔이 4,500원이라고 해서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런 경우 예전이라면 보는 시선 때문에 사고 나서 후회했겠지만, 지금은 “어이쿠, 그냥 마신 걸로 해야겠네요”하고 돌아섰다. 나만의 '돈없이도' 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만한 일에 기죽지 않는 법이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5,600원짜리 맥주피티를 사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영화의 여운을 함께 나누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맑은 정신 덕분에 대사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다.  

  

이전에 내가 봤던 스포츠 영화는 주인공 한 명이 불굴의 투지로 승리했다면, <리바운드>는 선수는 물론 감독까지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모습을 그렸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이들이 나누어 가진 것에 비하면 아주 작다는 걸,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집으로 모시고 온 승리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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