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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16. 2023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할 리가 있겠어?

기술 2-이게 정상이지만 다시 한번

지난 수능일, 영어 듣기 시험에 방해될까 봐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며칠 전부터 각종 언론 매체에서 D-며칠이라며 수능에 집중된 보도가 쏟아졌다.      


내가 과외하는 한 학생은 도시외곽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 학교 학생 중 수능응시자는 한 명도 없다. 90명 전교생이 수능비중이 높은 정시가 아닌 내신성적으로 대학을 가기 때문이다. 이들뿐 아니라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대학을 가지 않는 이들은 이런 날 어떤 기분일까. 스무 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길을 벗어난 기분이 들지 않을까.     


다음은 영화 <리바운드>에서 결승전 전날, 순규와 강호가 옥상에서 나눈 대화다.     


“우리 앞으로도 농구할 수 있겠나?”

“규혁이하고 기범이는 몰라도 우리를 대학에서 받아주겠나?”

“우리는 아무래도 고등학교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내일은 농구할 수 있잖아. 이렇게 살다 보면 우리도 어른이 되어있겠지.”  


영화에 등장하는 규혁은 중학교 선수시절 발목 부상을 입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했고, 그 후 선수생활을 포기했다가 강양현코치의 설득으로 다시 농구를 시작했다. 규혁은 발목이 좋지 않은데도 이를 숨기고 무리하게 시합을 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영화 마지막에 ‘배규혁 선수는 두 번의 발목수술을 했지만 재활에 실패하고 지금은 농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자막이 나왔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는 규혁, 강호, 순규처럼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이 끊어져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 많다. 이른 성공을 이룬 소수와 지금도 길을 찾고 있는 다수가 있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 강양현 코치처럼. 강양현 코치는 고교농구 MVP까지 올랐지만, 이후 프로 2부 리그에 머무르고 만다. 하지만 코치로서 좋아하는 농구를 계속하고 있다. 선수로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는 성공도 있지만, 나처럼 한때 꿈을 버린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는 성공도 있다. 모양도 시기도 다른, 저마다의 성공이 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데, 김은희 작가가 남편인 장항준 감독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할 리가 있겠어? 그냥 포기해.”     


장항준 감독은 그 말에 수긍하고 딸을 학원을 보낼 생각을 바로 접었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 삶을 긍정하는 부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공부에 재능은 없지만 '다른 걸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랬고 내 아이도 그럴 거다. 


이걸 아는 사람은 남의 이른 성공에 좌절하고 내 길을 가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일명 인서울 대학의 입학 정원은 전체 수험생의 7% 수준이다. 달리 해석하면 학부모 중에도 7%만 인서울 할 성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많은 부모들이 사교육에 과다 지출을 하고, 자식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랄까. ‘나는 7%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잘 살고 있으니 내 아이도 그럴 거’라는 마음보다 ‘나는 못했지만 아이라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전에 글에 쓴 적이 있지만, 딸은 청소년상담센터에서 한 기질검사에서 탐구지능이 낮게 나왔다. 상담사 선생님은 “탐구지능은 공부지능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낮으면 지적욕구가 적어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당시 초등학생인 딸이 60점을 받은 수학시험지를 내게 가지고 와서 자기가 잘한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말로는 “50점 넘으면 잘한 거지”라고 했지만, 활짝 웃는 아이와 마음만은 동화되지 못했다. ‘왜 100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상담사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16살이 되는 동안 두 번의 기질검사와 상담, 경험을 통해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는 나와 다르고 다른 사람과도 다르다. 언어지능, 규범지능이 높고, 공부나 연구처럼 혼자 하는 일보다 팀스포츠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 공부는 필요한 만큼은 하겠지만, 공부를 하는 동안 행복하지 않다. 공부보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고 그걸 찾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아이와 나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성적이 다인 것처럼 보이는 학교와 사회 분위기에서 아이가 열등감을 가지지 않기를, 공부만 하다가 결국 잘하게 돼도 ‘하기 싫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었을 텐데, 언제부터 그 일을 찾는 걸 포기했을까.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하는 재능이 필요하다. 그 재능은 처음 가졌던 목표가 좌절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토대, 즉 태도, 사회 분위기 위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이게 정상이지만 다시 한번'이라는 마음을 먹는 게 어렵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강양현코치와 선생님의 대화는 웃기면서도 뭉클했다.     


선생님: 니 진짜 해볼라카는기제?

강코치: 왜요? 저는 한번 해보면 안 됩니까?        


(또) 리바운드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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