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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18. 2023

쪽파만 돌돌 말았는데 백반집 부럽지 않은 밥상

요리는 대충, 살림은 야무지지 않게

어떤 분이 내가 한 요리는 맛은 있는데 거칠다고 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음식을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하지 않고 대충 맛만 나게 만든다. 그래봐야 한 끼일 뿐인데 많은 수고와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다. 손님을 대접할 때조차 휘리릭 만든다.


연 언니가 점심을 먹자고 해서 내가 집으로 오라고 했다. 12시 약속을 앞두고 11시 40분에 싱크대 앞에 섰다. 일단 냄비에 물을 올렸다. 모든 요리는 물을 끓이는 것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직 메뉴는 정하지도 않은 채다.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만든 버섯들깨볶음, 시금치무침에다 아침에 만든 달래무생채, 숙주볶음이 있으니 오징어파강회, 된장찌개만 추가하면 되겠다. 메뉴가 결정되었다.


             

치킨보다 맛있는 파전


며칠 전에 쪽파 한 단을 2900원 주고 샀는데 양이 어찌나 많은지 연달아 쪽파요리를 했다. 돼지고기를 넣고 기름을 넉넉하게 둘러 파전을 부쳤더니 고소하고 바삭한 게 치킨보다 맛있었다.


봄에 나오는 쪽파는 가을에 심어 겨우내 언 땅에 있다가 솟은 거라 억센 기운이 담겨 있다. 내가 산 건 길쭉한 쪽파로 하우스 재배한 거긴 하지만, 제철을 맞은 쪽파의 달큼함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고대했던 어떤 일은 이 기쁨을 다시 얻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미리부터 아쉽지만, 매년 돌아오는 제철 음식은 흡족함이 줄어들 염려가 없다. 쪽파 다음에 미나리, 죽순, 두릅, 취나물, 머위, 쑥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 앞 산책길에서 때 이르게 핀 매화를 보았다. 한두 개 꽃망울을 터뜨린 모습이 어찌나 어여쁘고 대견해 보이는지. 이런 순간이 반갑다. 매년 봄은 돌아오고, 매화 다음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대기하고 있어 아쉬움이 없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픈 것처럼 삶의 허기는 문득문득 찾아오는데, 시기마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으로 채우는 게 맞지 않을까? 많은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언제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반찬과 계절이 주는 기쁨이 찰랑거리는 일상을 만들고 싶은 이유다.


쪽파를 다듬으면서 엄지손톱은 쪽파 다듬는 용도임을 알았다. 손톱에 까맣게 흙이 끼는 걸 보자 마트에서 봤던 다듬은 쪽파의 새하얀 뿌리가 떠올랐지만, 5000원이면 두 단인데 안 될 말이지, 하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작년만 해도 다듬은 걸 샀는데 그새 살림 내공이 늘었나. 쪽파와 김가루, 간장, 참기름과 무친 맛이면 고생도 달다.


쪽파를 데친 물에 오징어를 넣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이제 접시에 담기만 하면 된다. 오징어를 썰고, 쪽파는 돌돌 말았다. 쪽파 양이 적어서 마는데 재미가 붙으려는데 끝나버렸다. 그때 현관 벨소리가 났다.


"너무 애쓴 거 아니야?"

연 언니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아침에 반찬 한 거에다 오징어만 데쳤어요."

"파를 자기가 이렇게 한 거야?"


파돌돌이는 해보면 되게 쉬운데, 보기에는 꽤 정성이 들어간 음식으로 보인다는 비밀이 숨어있다.


             

쪽파만 돌돌 말았어요


후식은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와 블루베리, 그리고 연 언니가 사 온 딸기다. 연 언니가 요구르트가 쫀쫀하고 우유맛이 진하다고 했다. 요즘 외식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집에서는 신선한 재료로 식사와 디저트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식당 사장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외식비가 부담스러워서 사람과 만나기를 꺼리기보다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그러고 보면 사는 일에 정답이 없다. 시장에서 할머니가 다듬은 나물을 사려다가도 마트보다 조금 비싸서 사지 않을 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사정에 마음을 쓰고, 가끔은 계산하지 않고 사기도 하면서 야무지지 않게 살고 싶다.


부엌살림도 야무지지 않다. 간장, 액젓, 참기름, 식용유가 싱크대 위에 보초병처럼 서 있고 고춧가루와 통깨도 엄마가 지퍼백에 담아준 그대로 쓰고 있다. 쓸 때마다 용기에 담아야지 하면서도 도무지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요리하는 시간도 아까운데 부엌살림을 찬찬히 정리할 시간이 있을 리 없다. 한 번씩 만정이 떨어져서 병들을 수납장에 싹 집어넣어도 하루 이틀이면 여기가 내 자리야, 하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거칠게 대충 하는 요리라 손님도 쉽게 초대할 수 있다. 뒷정리를 말끔하게 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수고스럽지 않다. 매일 두 가지 제철 나물을 대강 무치고, 가끔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숟가락 몇 개 더 놓는 삶이 꼼꼼하게 누리는 길이 아닐까.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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