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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10. 2023

아무리 봐도 가족 도서모임은 부모에게 이득입니다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을 읽고 돌아본 나의 태도

초밥이와 한 권당 만 원을 주고 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만 원을 준다고 하면  매주 하려고 달려들 것 같지만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그런 일은 어지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 분만에 읽는 그림책이라도 어림없다. 우리는 간신히 한 달에 한 번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초밥이와 나의 토론 방식을 돌아보게 한 책이 있다. 신재호 작가의 책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이다.


아이들은 아직 자기 의견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 질문에 맞지 않는 엉뚱한 답을 하거나, 이상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부모에게 자녀의 말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답하기"를 권했다. 나는 말로는 딸과 수평적 관계를 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하는 말투와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최근에 <순례 주택>으로 토론을 했다. <순례 주택>은 세신사로 살아온 순례씨가 주인인 빌라다. 순례씨는 시세보다 낮은 월세에 형편이 어려운 세입자에게 일정기간 보증금을 받지 않고 옥탑방은 커피, 라면을 채워놓고 세입자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한다. 소설은 순례씨를 통해 어른의 모델과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 "지난번에 엄마가 요맘떼콘 사 왔잖아. 이거 보고 샀어. 맛있었지?"

초밥: "어."

나: "순례씨가 월말에 잔고털이하는 거 완전 폼나지? 명품에다 비싼 차와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내가 가진 돈이 모두 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남한테 베푸는 사람 중 누가 부자인가 생각해 봤어."

초밥: "그렇지. 수림이는 나와 동갑인데 훨씬 어른스러운 것 같아. 수림이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세탁소 외상값 갚잖아. 나라면 안 줄 것 같은데."

나: "엄마도 '필요한 게 많았던 시절'에는 남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나한테도 모자란다고 생각했거든. 아까 우리 청국장과 피자를 먹었잖아. 치즈와 청국장은 외국과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 만든 건데, 한 끼를 차리는데도 과거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시간에 빚지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초밥: "그래."


이런 식이다. 초밥이의 의견에서 질문하고 확장하기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열중했다. 글로 옮겨놓고 보니 내가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그걸 아이도 모르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보다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고 존중받는 경험이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나눴다.


나: "순례씨 보고 주변에 생각나는 사람 있었어?"

초밥: "아니. 이렇게까지 이타적인 사람은 없어. 근데 엄마는 최측근 정도는 될 것 같아."


글 쓰고 욕먹고 다니는 엄마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최근에 내가 쓴 글에 비난 댓글이 잔뜩 달린 일이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순례 주택>에서 어른의 정의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딸이 "엄마는 어른이지"라고 했다. 이게 또 뭐라고 45살 어른은 가슴이 벅찼다.


얼마 전에 마트에서 계산하려는데 우유에 사은품으로 붙여놓은 요구르트가 조금씩 새고 있었다. 직원이 바꿔준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그 자리에서 요구르트를 마셨다. 직원은 아, 하더니 나와 함께 웃었는데 마트를 나오자 초밥이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직원이 엄마 멋있는 척한다고 생각할 걸?" 

(이것 보세요. 초밥이도 이렇게 깐족거려요.)


밖에서는 감정을 숨기지만, 집은 기분을 삭이는 공간이다 보니 가족들이 늘 협조적일 수 없다. 가족끼리 갈등이 생기면 독서모임을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책 속의 아빠에게 딸이 상장을 주는 대목에서 내가 다 울컥했다.


가족을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가끔은 벅차하는 아빠를 딸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 건 이럴 때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던 존재가 떠오르고, 이미 커다란 선물을 준 아이에게 욕심을 부린 걸 반성하게 된다.


가족 독서모임을 하면서 생긴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언가를 정할 때 가족끼리 상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책 속의 문장이다. 의견을 주고받으며 풀어나간 경험은 자녀가 갈등이나 억울한 상황에서 덜 당황하게 해 줄 것 같다. 토론을 통해 익힌 가족 간의 수평적 대화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을 때 도움을 주고받는 걸 자연스럽게 하지 않을까. 아무리 봐도 부모한테 이득이다. 이제부터 나도 나를 위한 가족 독서모임이다.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


*오마이뉴스 기사로 읽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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