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를 데리러 학원에 갔더니 늦게 내려왔다.
초밥: 엄마, 수학선생님이 전주에 사는데 전주 애들 진짜 공부 잘한데. 나 가면 망한데. 나 그냥 군산에 있을까?
나: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처음에 초밥이와 떨어져 산다고 했을 때는 서운하기만 했는데, 낯선 감정이 찾아왔다. 빈 도화지를 앞에 두고 뭘 그릴까 상상하는 것 같은 기분. 여기에 뭘 그려 넣으면 좋을까 부풀어 있는데, 이 무슨 도화지에 김치국물 쏟는 소리인지.
나: 성적이 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망하는 거야. 공부는 필요한 만큼만 하면 돼. 그럼 엄마는 삼십 년 전에 어땠느냐. 망했지. 성적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망했어. 그래놓고 시치미 떼고 떠드는 거야. 와하하.
이제 내 관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속 편한 소리가 막 나왔다.
나: 내가 좀 가르쳐주까?”
초밥: 정말? 그래주면 나는 고맙지.
너무했다 싶어서 선심 쓰듯 던져봤는데 초밥이가 냉큼 물었다. 모르는 거 없냐고 하면 늘 괜찮다고만 했던 녀석이 자진해서 가르쳐달라고 하는 걸 보면 진짜 애가 탔나. 한 달밖에 시간이 없지만, 그동안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기초라도 만들어 줘야 하나 싶었다. 이렇게 해서 보호구역으로 남겨뒀던 그곳에 우리는 들어서고 말았다.
나는 초밥이의 앙상한 실체를 보고야 말았다. 근육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한테 팔 굽혀 펴기 같은 걸 시키는 기분이었다. 픽픽 쓰러지는 팔을 잡아주면 다리가 무너지고, 다리를 잡아주면 상체가 쓰러지는 걸 보니 자동연쇄반응으로 화가 치밀었다. 그 와중에 초밥이를 기준으로 생각했다느니, 나를 보게 하는 존재라고 글에 썼던 게 생각나서 자아 분열까지 일어났다.
나: 미안해.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초밥: 어.
나: 이제 진짜 화 안 낼게. 반성하고 있어.
초밥: 알았어.
이상하게 수업만 하고 나면 사과를 하게 되었다. ‘선 수업, 후 사과’라는 루틴이 생겼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면 감정조절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봤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할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첫째, 너무 많은 정보가 인과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초밥이가 늦잠을 자고 휴대폰을 보며 빈둥대는 것과(원인)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이(결과) 나의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이루는 걸 경험했다.
둘째, 초밥이가 수학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건 삼십 년 전의 나였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나를 찾아와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아이는 나와 엄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확신에 가득 차서 소리쳤다.
“걱정이나 하지 말던가. 하지도 않으면서 걱정하면 뭐 하냐? 오후까지 자는 게 말이 되냐!”
나는 초밥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초밥이가 100분의 50을 2로 약분하다가 나머지가 나오는 걸 보고 나는 하루 만에 조용히 책을 덮었다. 수학 말고 다 잘하는 아이를 모두 못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자, 나보다 더 크게 자랄 아이를 내려다보지 말자고 내 마음을 다독였다.
그 결과 우리는 ‘반박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초밥이는 잘하는 게 많지만, 그중 백미는 말대답이다. 주옥같은 말대답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할 때가 많다. 내가 이렇게 대쪽같이 키워냈구나, 내가 이런 결기 있는 딸을 낳았어, 혼자 뿌듯해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