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고 싶다.”
초밥이한테 톡이 왔다. 초밥이네 학교는 한 달간 야간강제학습을 (자율학습 아님) 하는데, 톡이 온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야자 하니까 보고 싶지?”
이렇게 답을 했는데, 초밥이가 반응이 없었다. 이상한 촉이 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야자 마치는 시간에 학교로 갈까?”
“울어?”
그러고 나서야 답이 왔다.
“아냐. 엄마 피곤하잖아. 눈물 나서 복도에 나왔어. 우리 반 90%가 고3처럼 어려운 문제도 척척 잘 풀어. 쌤들이 대학 가려면 생기부가 중요하니까 자기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그러니까 부담되고 긴장돼. 하필 내가 교탁 코 앞에 앉아서 쌤들이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는데 허둥대고 모지리같이 굴었어. 아빠한테 선생님들이 겁주니까 위축된다고 하니까 아빠는 겁을 줘도 안 먹으면 되지 이러고.”
“왜 교탁 앞에는 앉아가지고. 선생님들 기선제압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다른 애들도 다 쫄았을 거야. 내 마음은 나밖에 모르잖아.”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앞으로 이런 압박은 심해질 텐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확실히 고등학교는 다른가보다. 초밥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입학할 때, 새 학년이 될 때 한 번도 불안해한 적이 없었다. 하루 만에 친구 몇 명 사귀었다, 선생님들 너무 좋다고 한 애다.
“아, 빨리 내일 되었으면 좋겠다. 학교 가게.”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소리를 하지 않나.
“빨리 여름 되었으면 좋겠다. 수박 먹게.”
눈이 오고 있는데 이런 소리를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 너의 그 긍정 마인드 말이야, 수학 문제 푸는 데는 불리한 것 같아. 문제도 다 니 맘 같다고 생각하잖아? 슥슥슥슥 좋네 좋아하고 푸니까 무슨 함정도 아닌데 푹푹 빠지잖아. 이렇게 쉬울 리 없어하고 자세히 봐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게 없잖아.
초밥:...
내 말에 반박할 줄 알았는데 돌연 침묵을 지키던 초밥이는 염색약을 사러 간다며 나갔다.
잠시 후 띠띠띠띠 현관비번 누르는 소리와 함께 초밥이가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면서 큰소리를 쳤다.
초밥: 금방 들어오다가 아이팟 하나가 사라졌거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서 갔는데 나는 분명히 아이팟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내가 예상한 장소에 정확히 있었어. 엄마 말 듣고 내가 너무 긍정적인가, 그게 안 좋기도 한가 싶었는데, 아냐, 사람은 긍정적이고 봐야 돼.
나:...
이번에는 내가 침묵을 지켰다.
이 일이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인데, 등교 이틀 만에 이런 쫄보 같은 모습이라니.
그렇다면 초밥이가 말한 ‘고3처럼 공부를 척척’ 하는 아이는 어떨까? 과외하는 학생 중에 중학교에서 전교 일등인 학생이 있다. 그 학생에게 고등학교 이틀 다닌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잘하는 애들이 많은 것 같아서 불안해요.”
군산에는 19개 중학교가 있다. 각 학교 전교 1등이 7개 고등학교로 분산된다. 과외하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아파트 밀집지역에 있어서 선호도가 높아서 10명쯤이라고 하면, 1등급을 놓고 전교 1등끼리 경쟁을 하는 거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는 결론.
가끔 초밥이한테 내가 쓴 글을 보여주면, 초밥이 반응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초밥: 가독성은 있는데 참신하지는 않아. 재미는 없지만, 아줌마들은 공감할만한 소재네.
나: 무슨 평론가냐? 왜 그렇게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완성한 게 뿌듯해서 보여준 건데, 초밥이가 이렇게 말하면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초밥이는 뭔가. 선생님과 학교 방침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권위에 압도돼서 따르기만 하려고 하고 있었다.
‘생기부가 중요한데 왜 선생님한테 잘 보여야 하지?’
‘자율학습인데 왜 강제로 하는 거지?’
‘학교가 공부를 하는 곳이지, 경쟁을 시키는 곳인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하듯이 해. 네가 엄마한테 잘하는 거 있잖아. 반박하고 의심하라고. 나한테는 잘만하면서 왜 그러냐?”
무슨 공부해야 된다고 방학 때나 온다더니, 일주일 만에 겁을 잔뜩 먹고 온 녀석한테 이렇게 말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복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