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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ug 06. 2024

mz세대의 작업법

초밥: 엄마, 나 남친 생기면 어떨 것 같아? 아니, 생겼는데 엄마한테 말 안 하면 어떨 것 같아? 숨겼다고 화낼 거야?

나: 같이 살지 않으니까 말하려면 전화를 하거나 만나야 하는데, 말할 기회를 놓친 거겠지 숨겼다고 할 수는 없지.

초밥: 그럼 사귀는 건 허락하는 거야?

나: 허락 안 하면 몰래 사귈 텐데,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있나?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나는 왜 눈치를 못 챘을까.      


한 달 만에 집에 온 초밥이는 늦잠을 자고, 나는 거실에 나와서 책을 읽다가 어제 초밥이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뜬금없이 남자친구 얘기는 왜 했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더니 곱빼기를 먹는 애가 짜장면을 반 이상을 남기고 말이야, 이상하네, 하다가 아, 깨달음이 왔다.     


생겼구나.     


아침 메뉴로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초밥이는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면 맨날 제육볶음이란다. 초밥이가 아니라 제육이라고 할까 보다. 마지막으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뚝배기를 식탁에 놓고 “밥 먹어” 오랜만에 소리쳤다. “어”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초밥이가 방에서 나왔다.     


나: 너 남자친구 생겼지?

초밥: 이제야 눈치챘어? 힌트를 주는데도 모르길래 타이밍을 보고 있었지.

나: 자, 시작해. 편집하지 말고 시작부터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말해.    

 

다음은 초밥이한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다.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고 남자친구 후보라고 했다. 후보는 초밥이네 학교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남자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학생이다. 하루는 초밥이가 학원을 가려고 버스를 탔다. 두 개 학교가 있는 정류장이다 보니 하교시간에 버스 안은 작은 틈도 없이 빽빽했다. 에휴, 사람들 사이에서 몸도 찌그러지고 마음도 찌그러져서 있는데 무심코 바라본 곳에 바람직한 팔뚝이 있더란다. 이상형이 ‘근육질 남성’인 초밥이는 팔뚝의 주인공의 얼굴로 자연히 시선을 옮겼고 그곳에 개안을 할 정도의 훈남이 있었다고 했다.      


그날로 초밥이는 작전에 돌입했다. 방학식까지 삼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 결판을 내야 했다. 알통훈남이 타는 버스는 3200번. 그 버스를 알통훈남을 만났던 시간에 타야 했기에 종례를 삼절까지 하는 담임샘에게 제발 빨리 끝내달라고 기도를 하고 “그만 가”라는 담임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실에서 정류장까지 단 5분 만에 총알이 되어 날아갔다. 첫날은 간발에 차로 버스가 눈앞에서 가버렸고, 둘째 날은 버스를 타는 데 성공했지만 어쩐 일인지 알통훈남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날은 하루. 그날까지 허탕을 치면 개학까지 기다려야 했다.     


원래 초밥이는 함께 학원을 다니는 연서의 할아버지 차를 타고 학원으로 이동한다. 알통훈남을 만난 날은 연서 할아버지가 일이 있어서 오지 못한 날이었다. 작전 시작일, 초밥이는 연서에게 할아버지 차를 타고 먼저 가라고 했지만, 연서 입장에서는 이 흥미진진한 생방송의 관전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연서는 할아버지에게 버스를 타고 간다고 말하고 초밥이 옆에 딱 붙어서 이 장면을 시청했다.     


드디어 삼일째 날, 오늘은 알통훈남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담임샘이 목이 아파서 종례를 패스한 덕분에 정류장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정류장을 두리번거리다가 헉, 알통훈남을 발견했다. 처음 봤던 날 버스에 이미 타고 있어서 앞의 정류장에서 타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3200번 버스가 왔다. 버스로 향하면서 힐끔 돌아보니 이게 웬일인가. 알통훈남이 뒤에 온 75번 버스를 타고 있었다.    

 

초밥: 연서야, 내려내려, 저거 타야 돼.

연서: 우리 학원은 어쩌고.

초밥: 몰라, 몰라.     


초밥이와 연서는 생전 처음으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75번 버스를 타게 되었다.  

   

연서: 우리 지금 학원이랑 완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어.     


연서의 말이 들리지 않는 초밥이는 슬금슬금 목표물에게로 다가갔다. 나란히 설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 초밥이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작전을 개시했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알통훈남의 알통을 톡톡 건드렸다.    

  

“저기요.”     


알통훈남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밥이를 쳐다봤다. 초밥이는 그의 얼굴 앞에 미리 써온 휴대폰 메모장을 보여줬다.     


“너무 잘생기셔서요. 혹시 인스타 아이디 알 수 있을까요? 여자친구 있으시면 죄송해요.”

     

이 대목에서 와! 내가 존경과 감탄의 탄성을 지르자, 초밥이가 말했다.  

   

“내가 이 방법으로 당한 적이 있거든. 스터디카페에서.”

     

참으로 기발한 작업법을 전수받았구나.     


알통훈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액정을 보더니 슬쩍 웃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올타쿠나, 초밥이가 인스타를 켜서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그런데 알통훈남이 주소를 쓰는 게 아니라 터치를 한번 하고는 돌려주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초밥이가 자료조사를 위해 남고 마당발인 윤서에게 협조를 구했다. 유능한 동료는  ‘담장고 알통훈남’이라는 단서만으로 신속하게 목표물의 인스타 주소를 알아내서 넘겨주었다.     


“볼 때마다 공부하고 있어. 운동 잘하고 엄청 순한 형이야”      

윤서가 아는 담장고 남자사람친구가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순한 성격에다 한 살 위인 오빠의 인스타 주소를 손에 넣은 초밥이는 폭풍 검색에 들어갔고, 알통훈남은 검색 이력에 있는 자기 주소를 친 거였다. 

아, 쪽팔려.     


현재 상황은 인스타 주소를 받은 지 2주가 지난 시점이고, 매일 카톡을 주고받고 있으며 1회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내가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초밥이가 당당하게 보여줬다.      


“와! 미친.”     

mz세대의 작업법
제육이네 아침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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