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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26. 2024

우리를 이어주는 작은 털뭉치

월명산 산책을 하자는 나의 제안을 초밥이는 뿌리치지 않았다. 공원 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리자 초밥이가 소리쳤다.     

 

"와! 군산에 이런데도 있었어?"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는 월명산이 초밥한테는 난생처음 발을 딛는 곳이라니. 군산에서 우리가 17년을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사는 동안 동선이 이렇게나 달랐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산과 공원으로 초밥이는 마라탕과 탕후루 가게가 있는 번화가로 다닌 결과다.    


어쩌다 정오에 나왔더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작했으면 완주를 해야 하는 나는 초밥이가 돌아가자고 할 수 없는 중간 지점을 목표로 빠르게 걸었다. 말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경보하듯이 가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초밥이가 내 속도에 맞춰 잠자코 따라왔다.   


얼마큼 가다가 나는 운동화를 벗었다. 맨발 걷기를 해보니까 잠이 잘 오길래 요즘하고 있는데, 초밥이는 이런 어르신스러운 건강 증진 활동을 진심으로 싫어한다. 내가 주섬주섬 신발과 양말을 벗기 시작하면 초밥이는 멀찌감치 떨어진다. 시야에서 사라진 초밥이한테 말을 하려면 전화를 해야 한다.      


요즘 나는 어른들이 나무에 등을 치거나 공원 내에 비치된 운동기구로 운동하는 걸 보면 따라 하고 싶은 욕구가 참을 수가 없는데, 그때마다 초밥이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고 “하지 마” 조용히 주의를 준다. 내가 무시하고 어깨 돌리기를 하다가 “너도 한번 해봐”라고 찾으면 초밥이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그랬는데 이게 웬일인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초밥이가 나를 따라서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걷는 것이 아닌가.    


맨발 걷기 신봉자가 물었다.

“너는 왜 해?”

산에 슬리퍼를 신고 오는 분이 말했다.

“확실히 체험해 보려고.”     


뭘 체험한다는 거지? 견학 왔나? 엄마의 일상 아니 할머니의 일상을 체험한다는 건가? 아무튼 초밥이와 나 그리고 평생을 맨발 걷기를 해온 보미까지 우리 셋은 자연친화적인 산책을 했다.     



(맨발 걷기는 건강과 피부, 숙면에 좋아서 이미 많은 분들이 하고 있어요. 이 글에서는 십 대인 딸과 엄마의 문화와 기호 차이를 말한 거니 그런 관점으로 봐주시면 감사겠습니다)



"엄마, 이리 와봐! 여기 완전 좋아!" 

    

우리는 월명호수 주변을 테크로 조성한 길을 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호수가로 빠지는 샛길이 있었다. 그리로 내려간 초밥이가 불렀다. 초밥이를 따라가 보니 호수가 한눈에 펼쳐지는 장소가 나타났다.     


“군산에 이런 곳이 있었네.”     

초밥이가 벌써 두 번째 하는 소리다.     


호수가로 다가가자 초밥이와 나는 물 앞에서 멈추었는데, 보미는 거침없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헥헥거리던 보미는 물이 배까지 차는 곳까지 가서 물을 할짝할짝 마시고 물살을 가르며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런 보미를 보고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나: 물놀이한다야.

초밥: 맞아. 피서 왔나 봐.     


초밥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 3까지 9년을 침대에서 보미와 함께 잤다. 그랬는데 전주로 가서 보미 없이 자려고 하니 허전하다며 어디서 보미랑 닮은 개 인형을 구해서 함께 잔다고 했다. 그 인형 사진을 톡으로 보냈는데 그걸 보고 나는 얼마나 웃었나 모른다.     


한편 나는 초밥이가 가고 나서 보미를 제 집에서 자도록 훈련을 시키려고 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딪쳐 하루 만에 포기했다. 할 수 없이 보미와의 동침을 시작했는데 녀석은 넓은 자리 다  놔두고 꼭 베개 위로 올라왔다. 옆구리 쪽에 내려놓으면 다시 베개로 올라가고 내려놓으면 또 올라가고. 그래서 보미에게 베개를 상납했다. 그르릉하는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나 잘 자고 있어요,라는 걸 알려주려고 그러는지 몰라도 주인은 그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초밥이는 베개에 올라온 보미 엉덩이에 얼굴에 대고, 그르릉 소리를 들어야 잠이 온단다.

    

초밥이가 전주로 간 뒤로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안부카톡을 하는데 거의가 보미 사진이다. 보미가 하품하는 모습, 창밖을 내다보는 사진 같은 걸 보내면 바로 반응이 온다.     

 

ㅋㅋㅋㅋㅋㅋ개졸귀

헐짱이뻐

보고시퍼     


그때마다 느끼는 게, 요 작은 털뭉치에게는 단번에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거다.     


누가 보미일까요?
스티커를 없애면 세월의 무서운 힘을 알 수 있음
초밥이가 주문한 닭볶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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