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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짐이 되어서 미안해

나림이의 편지

by 김준정



팥빙수에 들어가는 팥 절임을 만들어봤다. 홈 메이드 팥빙수. 생각보다 간단하다. 팥, 설탕, 물을 2:1:6으로 넣고 끓이면 된다. 빙수기가 없어도 문제없다. 지퍼 백에 우유를 넣고 납작하게 모양을 만들어서 얼리면 된다. 돌처럼 딱딱하게 얼면 그 상태로 그대로 두고 절구 방망이(어딘가에 있을 거다)로 사정없이 으깨어 준다. 우유입자가 얼음과는 달라서 푸슬푸슬하게 된다. 여기에 연유나 생크림을 넣고 미숫가루, 인절미, 팥을 넣으면 수제 팥빙수가 탄생이 된다.

완성하고 난 다음의 뿌듯함이란. 자랑하기 위해서 지연, 윤희, 소진에게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팥 절임은 반찬통에 담고 인절미도 사서 각각 세 명의 집으로 배달까지 했다. 자랑하기 힘들다.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쓴다는 것, 참 행복하게 해준다. 배까지 부르니 확실하다.

나림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궁금해 하지도 않는 나림이에게 빙수용 팥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지퍼 백에 얼린 우유를 보여줬다. 감탄은 내가 한다. 이게 중요하다며 파란색 빙수용 유리그릇을 싱크대 수납장을 뒤져서 찾아냈다. 국그릇에 팥빙수를 담을 수는 없으니까. 딸은 호응해주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과묵하게 기다리고 있던 나림이도 완성된 팥빙수를 한 숟가락 먹는 순간 “우와”탄성을 질렀다. 손을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나림이에게 카페에서 먹었던 만원 넘는 팥빙수보다 더 맛있지 않냐고 했더니 바쁜 입은 놔두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진짜 팥이 덜 달면서도 진한 맛이 났다. 팥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입안의 빙수도 금세 녹고 그릇속의 빙수도 점점 물이 되어가서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행복은 찰나니까.

나림이에게 물었다.

"엄마 생일 언제게?"

"7월 14일"

"땡!"

"7월 12일, 아니 10일, 아 언제더라...7월은 맞는데……."

"오늘이야. 아침에 우리 미역국 먹었잖아. 하지만 괜찮아. 엄마는 생일날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는 걸 꿈꿨는데. 아 성공이다! 생일날 아무도 몰라주고 팥빙수나 먹으니까!"


사실 생일은 열흘 뒤다. 그러니까 나는 연기를 한 거였는데, 갑자기 빙수 그릇으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앗, 너 왜 그래! 오늘 아니야. 엄마 생일 7월 15일이야. 장난친 건데 울면 어떡해. 아, 엄청 미안해지잖아. 진짜 우는 거야?"

이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아이라고 도무지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열흘이 남았으니 참 다행이지? 왠지 이번 생일 선물 완전 기대된다! “

끝까지 철없는 엄마를 보고는 눈물을 쓱 닦고 빙수를 마저 먹는 나림이다.

생일날이 되었다. 마침 월요일이고 주말에 아빠한테 간 나림이는 아침에 돌아왔다. 나는 학교에 교통봉사를 하는 날이라 일찍 집을 나와서 나림이를 못 만났다. 전화로 생일파티 언제 하냐고, 준비 다되었냐고 하니까 나림이는 이따 집에서 하자고 했다.


나림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씩 웃으며 사인을 보내자 녀석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뱃속에 불룩하게 뭔가를 숨기고 나왔다.


“뭔가가 큰데? 큰 거는 별로 안 좋은 건데, 작은 게 비싸고 좋은 건데 말이지. 설마 갑티슈 같은 것은 아니겠지?”

“내가 엄마한테 필요한 거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짠~”

손풍기였다.

“엄마 산에 갈 때 들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우와~이거 들고 다닌 사람들 진짜 귀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들고 다니게 생겼네? 신기하게도 보기만 해도 귀찮아진다. 마술 손풍기다. 그건 그렇고, 하나 더 있네. 그건 뭐야?”

“아 이거는 디퓨져. 강아지 때문에 엄마가 냄새난다고 했잖아.”

“음…….이거는 괜찮긴 한데 너랑 같이 쓰는 거다. 그지? 편지는?”

생일을 핑계로 마음껏 깐족거렸다.


<생일 축하해(^.^) 비싼 거 사주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엄마한테 필요한 것만 고려해서 샀어. 미안. 한 열줄 쓰려고 했는데 쓸게 없네. 엄마 꽃길만 걷고 내가 짐만 돼서 미안해.

30살 같은 42살 엄마에게

나림이가>


짐만 돼서 미안하다니, 얼마 전에 딸을 혼내면서 그럴 거면 아빠하고 살라고 했었다. 나는 엄마자격이 없다. 자식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서 아이아빠와 떨어져 사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로 다시 아이한테 상처를 주다니.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나란 인간이다. 편지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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