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째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한 말 아니, 부탁이었다. 드라마, 예능 그 어떤 것도 보지 않았다. 한 회를 보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16부작의 드라마를 보라고 하다니.
“그걸 만든 감독은 드라마 안 볼걸요? 책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드라마도 못 볼 정도로 시간을 아껴서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따위 말을 한 나는 집에 와서 처음으로 한 일이 <멜로가 체질>을 다운로드하는 일이었다. 편당 1,500원씩 결제도 했다.‘절대 16편까지 보지 않으리라. 재미있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시청하기를 눌렀다.
처음에는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울고 있었다. 황한주 때문에. 황한주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살고 있다. 남편은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난다고 했다. “그럼 나의 행복은?”이라고 묻는 그녀에게 남편은 네 행복을 왜 나한테 묻냐며 아이와 그녀를 두고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그래 도망쳤다. 책임과 부담에서 자신만 빠져나갔다.
그렇게 도망친 남편은 유명 개그맨이 되어 텔레비전에 나왔다. 한주는 기저귀를 갈면서 그 모습을 보고, 식탁에서 소주를 마시며 눈물을 흘렸다. 드라마에 다른 재미있는 캐릭터, 에피소드가 넘치는데 나는 한주 때문에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결혼하면서 군산에서 살게 되었다. 대구와는 250km 거리. 군산에 오자마자 과외 광고를 내서 일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는 시에서 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군산에 온 지 일 년이 안돼서 수학학원을 개업했고, 육아와 일을 오가는 삶을 시작했다.
한시도 혼자 둘 수 없는 아이를 키워가며 일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만 보고, 나만 찾는 아이를 떼놓고 수업을 할 때 마음은 찢어지고, 마지막 수업을 할 때면 아이를 보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갔는데 막상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게 또 미안해서 울었다. 자다가도 내 목소리가 들리면 웅얼거리고, 내 몸속으로 파고드는 존재.
그때는 나도 어렸다. 이 아이를 어떻게 보살피고, 사랑해줘야 할지 몰랐다. 무작정 나를 향한 애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이 작은 아이를 나 자신보다 사랑했다. 하지만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미안함과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나는 지쳐갔다.
혼자는 힘든 일이어서 엄마, 아빠가 필요한가 보다. 당시 나는 혼자 감당해야 했고 별거를 하고 있는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그때 마음의 빗장이 내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내가 좀 더 무던하고, 의연한 사람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엄마만 찾던 아이는 이제 열두 살이 되었다. 키도 나만큼이나 훌쩍 커버렸다. 그런데도 그 작은 아이는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일하러 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서른이 넘어 시작한 낯선 도시의 삶. 겉으로 씩씩한 척했지만, 외로웠다. 이제는 아이까지 낳은 어른인데 울 수도 없었다. 엄살 부리지 말고, 아이 챙기고 일을 해야 하니까 강해져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다. 그래도 눈물이 나는 건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까지 흐르는 눈물은 나를 향하는 것이라는 걸. 고생했고, 애썼고 많이 힘들었던 것 안다고 토닥거려 주고 싶다. 마음속에 아이는 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