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의사고, 아들들은 머리가 좋습니다. 특히 큰아들은 수재로 근방에서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의사 아들을 가진 유세가 심한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남편은 고지식하고 완고한 성격이라 제 마음을 몰라줍니다. 좁은 지역이라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저의 가슴은 점점 얼어붙어갔습니다.
저의 유일한 낙은 큰 아들입니다. 영리한 아들은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었고, 저에게 큰 아들은 긍지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과학고에 가기 위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종 경시대회는 물론 고등학교 선행까지도 문제없이 잘 따라와 주는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습니다. 회식으로, 일로 바쁜 남편보다 어린 시절 그를 꼭 빼닮은 아들에게 사랑을 쏟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들에게 학교 친구들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탁월한 아들인 만큼 더욱 특별한 교육을 시키려고 지역에 있는 학원, 과외할 것 없이 알아보다 보니 어느새 저는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엄마들 모임에 가면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덕에 나를 치켜세워주고, 은근히 자랑을 하는 기분도 달콤했으니까요. 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고 있노라면 자식 키운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중2가 되면서 아이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방문을 닫고 나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공부는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앞으로 간섭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중2병이 내 아들에게 찾아올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두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차를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길에서 아들이 어떤 여학생과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천천히 따라가면서 둘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들은 엄마 차가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모르더군요. 오직 여자아이 얼굴만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여자애의 손을 슬며시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본 이후로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아들의 따귀를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차에 밀어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들은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과학고 시험은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학원도 과외도 다 끊었고요. 이번 기말고사는 시험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을 봤습니다. 과학고에 원서를 내려면 내신이 중요한데, 제 속은 타들어만 갔습니다. 제가 심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아들도 여자애 앞에서 자존심 이상했겠죠. 하지만 저와 내가 여태 고생해서 탑을 쌓았고, 이제 마지막 꽃 장식만 하면 되는데 아이가 제 손으로 탑을 무너뜨리는 꼴을 그냥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학원 원장인 저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의 외로움이 느껴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아들이 필요했던 것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요구에 따라야 했던 아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똑똑한 아이였기 때문에 반발을 한 겁니다. 자신의 인생인데 엄마가 더 안달복달하는 이런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아이는 알았던 거죠. 여태까지는 엄마의 기대에 맞춰왔더라도 이제부터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과연 자신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욕구의 발현으로 이성교제를 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요.
엄마가 알게 되면 거품 물고 쓰러질 일이라는 걸 아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실행하고 당당하게 엄마의 영역을 활보하는 용기, 정말 멋진 아들입니다.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할 만합니다.
자신의 공허함을 타인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자신이 핸들링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나는 물론 자식도 불행하게 되는 길입니다.
“자식도 커버리고 나니 내가 아무 필요 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 마트에서 일하고 싶어도 좁은 동네에서 사람들 이목 때문에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그녀의 유약한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의눈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어린 아들에게 기대야만 살 수 있는 그녀가 안쓰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