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어요, 배우고 싶지 않아

원장일 때 하지 못한 말 03

by 김준정

“아, 어려워요. 못하겠어요.”

진희는 새 단원을 배울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처음이니까 서툰 거라고,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말하는 나에게 진희는 다시 말했다.

“저는 수학은 안되나 봐요. 엄마도 저보고 문과 체질이래요.”


진희는 엄마와 상담을 왔을 때,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뭘 물으면 마지못해 대답만 했는데, 주변에 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학원에 대해서도, 선생님에 대해서도,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에게서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없는 건, 학원을 많이 다닌 아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진희도 6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 지쳤어요. 배우고 싶지 않아요.”

진희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맞아, 수학이 싫을 수도 있어. 안 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원장일 때 하지 못한 말이다)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하면, 그래도 좋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한 것은 어르고 구슬리는 일이었다. 선생님한테 미안해서 하는 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의식 수준을 어린아이로 묶어두는 것일 수 있고, 공부를 선생님이나 부모를 위해서 해주는 것처럼 여기게 돼버릴 수도 있다.


진희는 문제의 난이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못하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한 단원, 한 단원을 진도를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새로운 유형이 나와도 손을 놓아버리는 진희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진희는 처음부터 의욕이 없는 아이였을까? 혹시 선택할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부 터이지 않을까? 학원을 가기 싫다고,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호기심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뭔가를 배웠을 때,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가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자녀가 최초의 학습을 할 때부터 말이다.


‘모르면 안 되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식욕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는 것처럼. 자신이 음식을 고를 수도 없고, 양도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런 톱니바퀴 속에 자신이 던져져 있다는 것은 알게 되고 리모컨은 부모가 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소심한 거부-학습 무기력증, 또래집단에서 문제행동, 주의력 결핍-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기질이나 부모의 성향, 학습량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공부를 최우선으로 두는 부모, 원칙적이고 융통성이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과도한 학습을 하게 될 때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다.


"리모컨을 버려야 해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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