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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19. 2020

50점을 넘어본 게 처음이에요

집에 있는데 벨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인터폰 화면에 준이가 보였다. 12시 50분, 시험기간이라 일찍 마쳤나 본데 웬일이지?

“어, 준이야. 뭘 두고 갔어?”

“선생님한테 직접 말하려고 깜짝 방문했어요.”


나는 냉장고 원피스(엄마 옷) 차림이었다. 문을 열어주자 준이는 (내모습은 아랑곳없이) 수학 시험지를 꺼내 흔들었다.

“83점이에요!”

“우와! 잘했다! 실수 안 했나 보네? 어렵지 않았어?”

나는 소리쳤고 제자리 뛰기 3회에 질문도 연달아했다. 오버였다. 준이의 얼굴에는 '지금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요'라고 써있었고, 그런 녀석을 김 빠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들어오고 50점 넘어본 게 처음이에요.”

“그래?”

“풀어본 문제만 나오니까 너무 신기해서, 아, 이런 기분 정말 처음이에요.”


준이의 이전 점수는 30점대. 준이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며 예전의 자신은 잊어달라고 했다. 나는 뭘 잊어 달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제 수학 공부하는 맛을 알아다며 아무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말을 한참 쏟아낸 준이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변하더니 내일 치는 시험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가보겠다며 인사를 꾸뻑하고 돌아갔다. 마치 그 뒷모습은 득음을 하고 하산을 하는 판소리 창자 같았다.


학원을 폐업하고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수학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아이들도 싫었다. 예전보다 나약하고 끈기가 없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 아니 시험을 잘 치게 하는 일은 나 자신을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나니 돈이 떨어졌다. 일 년도 버티지 못하고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과외를 시작했다. 또 이렇게 되는구나, 돈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되는구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죄어왔다. 아파트 베란다에 내건 현수막을 보고 전화를 걸어온 학생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한 타임에 두 명씩, 하루에 한 타임(1시간 30분) 수업을 했다. 그리고 이주에 한 권씩 학생들에게 책을 빌려줬다.


처음에는 생각만큼 고통스럽지 않아서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욕이 조금씩 생기고 아이들과 웃는 일도 생겼다. 학원을 운영할 때도 책을 구비하고 도서대여를 했다. 아이들이 학원을 순회하고 시험 준비만 할 게 아니라 자신도 돌아보고, 공부하는 이유도 찾길 바랬다. 아니 내가 필요했다. 반복되는 시험대비와 시험 점수, 등급, 이런 게 왜 중요한 건지 나한테 설명해야 했다. 학생들은 졸업을 하지만 나는 졸업이 없었다. 이 일을 계속하는 한 시험기간, 시험점수에 갇혀있어야 했다.


시험대비가 시작되면 주말 보강에, 시험 전날 학생이 부족한 부분을 체크해야 하고, 시험 당일에 점수를 확인하고 성적이 오르지 못한 학생들 상담 준비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시험인데 준비도, 책임도 남이 한다. 성적 하락에 대한 책임을 미룰 대상이 있는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기회마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은 뭐지? 메마른 땅에 씨앗 하나가 조그만 싹을 틔운 것 같았다. 이제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한 컵의 물을 먹고 뿌리를 내린 그 씨앗이 너무도 고맙다. 오랜 시간 일을 하는 동안 장담하느라 조금씩 무언가를 잃어온 것 같았다. 내게 있어서도 너무도 소중한 그것을 오늘에야 얼마간 되찾은 기분이었다.


평가하기를 그만뒀다. 그런 권한은 내게 없고 그저 학생들을 도우는 게 내 역할이라고만 마음먹었다. 지각이나 숙제를 안 하는 것을 혼내기보다 내가 수업에 더욱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매일 교습 일지를 쓰면서 오늘 수업한 내용과 다음 수업 준비할 것을 기록했다. 학생들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오늘의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생존해야 했다.


준이와 책 <열네 살의 인턴쉽>을 이야기했다. 준이는 공부만 강요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를 둔 주인공이 힘들어하는 게 자기 이야기 같다고 했다. 그래도 미용이라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주인공이 부럽다고도 했다. 나는 준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앞으로 듣기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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