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수산시장에 갔을 때다. 우럭 다섯 마리를 삼만 원에 샀다. 방수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낀 아주머니가 까만 비늘을 가진 우럭을 까만 비닐에 담아주었다. 몸통과 머리가 절단된 열 토막의 그것을 의연하게 건네받는 나를 보고, 함께 간 보연 언니는 용감하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럭지리를 끓였다. 마침 쑥이 있어서 도다리 쑥국 흉내를 내면 어떨까 싶어서 한 줌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 향긋한 쑥향에 싱싱한 우럭이 어우러져서 양념이 필요 없었다. 재료 본연의 맛으로 충분했다.
딸에게 우럭 두 마리를 보여주며 이제부터 각각 한 마리를 먹는 거라고 했다. 하얀 국물에 하얀 우럭 기름이 둥둥 뜬 게 나는 보양식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딸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딸이 우럭과 눈싸움을 벌이는 동안 나는 땀을 펄펄 흘리며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땀이 나는 게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 성장기 어린이에게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딸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 다른 거 먹어도 되지?”
몸 축날 일을 전혀 하고 있지 않는 내가, 남은 건 노화밖에 남지 않은 나만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워냈다.
두 달 후, 냉동실에 있던 우럭 세 마리를 꺼내고 고민이 깊어졌다. 지리는 딸이 입에도 대지 않으니까 말이다. 조림을 하자. 포슬포슬한 햇감자가 있으니까.
생선 조림 양념은 이제 눈감고도 한다. 자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조림간장과 (이모가 준) 액젓을 섞어서 간을 하고 마늘을 많이 넣는 게 비법이다. 딸이 학원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조바심이 났다. 얼렁 끓어라, 주문을 외우고 우선 바닥에 깔린 감자와 우럭을 접시에 담고 딸을 불렀다.
“나 감자만 먹도 되지?”
(빨간 양념 이불로 우럭을 잘 덮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보자마자 딸이 말했다.
“그럼, 그럼. 당연히 되지. 감자라도 먹어.”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뒤집자 뽀얗고 통통한 살이 김을 내며 드러났다. 정말 먹음직했다. 그걸 보는 순간 딸도 안보였다. 내 손은 분주히 입과 음식을 오가느라 바빴다. 살 한 움큼에 감자 한번, 텁텁해질 때쯤 양념 벤 양파 한 번, 감탄사는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우럭 살을 파는 또 다른 젓가락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 젓가락이 민망하지 않도록 말없이 뼈를 발라낸 생선살을 딸의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
딸은 “맛있네”하고 나는 “많이 먹어”라고 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이번에는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확실히 딸이 먹었다. 나만 몸보신하지 않았다. 진짜 싱싱한 걸 샀던지 두 달 동안 냉동실에 있었는데도 우럭 살이 탱탱했고, 지느러미 부분에 불포화지방산이 가득했다. 이게 다 우리 딸 키로 가고 궁둥이로 가겠구나.
나-하정우도 수산시장에서 장을 봐서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대.
딸- 누가 그래?
우리 대화에서 하정우가 나오는 것은 익히 자연스러워 진지 오래다.
나-(하정우가 쓴) 책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코드가 너무 잘 맞는단 말이지.
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엄마 말고도 많을걸?
나-결국 그게 문제겠지, 문제는 오직 하나였어.
더 이상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딸은 학원을 간다며 일어섰고, 나는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우럭 한 마리를 딸에게 먹이고 났더니 큰 일이라도 해낸 것만 같았다. 뱃속에서부터 먹을 걸 나눈 사이여서일까? 네가 먹는 게 꼭 내가 먹는 것 같고 내 배가 부른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