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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21. 2020

매일 쓰레기더미 치우는데 샤워는 할 수 없다니

나의 노동을 돌아보게 한 조정진 지음 '임계장 이야기'

생활정보지에 나온 학원강사 채용공고를 보고 면접을 갔을 때의 일이다. 원장이 물었다.

“주말에 일할 수 있어요?”

주말 반을 말하는 건지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당황해 하고 있는데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아기 가질 거예요?”


대구에서 6년간 학원강사를 해온 나는 학원을 개업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곳이 낯선 도시가 될 줄은 몰랐지만 결혼 후 살게 된 군산에서 우선 강사 일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군산에서 가장 큰 종합입시학원에서 면접을 봤고, 여성인 원장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원장에게“남편직장이 있는데 왜 일을 하냐?”는 물음까지 듣고 나왔다. 길을 걷는데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직업을 가진 건가, 그런 직업은 따로 있는 건가, 내가 왜 하필 그런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무례한 사람의 말일뿐이라고 치부되지 않았다.


대구에서 처음 근무한 학원은 원생이 600명이 넘는 대형입시학원이었다. 석 달쯤 일했을 때 학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사평가설문조사를 했고, 원장이 나를 불렀다. 원장은 학생들 평가가 안 좋으니 나에게 그만두라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후임 선생님이 내일부터 출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수업을 마친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다른 선생님들 보기가 민망해서 방석이나 연필꽂이 같은 내 물건을 챙길 수도 없었다. 수치감과 충격에 몸을 떨며 가방만 챙겨서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이 난다.


해고 되었다는 사실도 힘들었지만 방식이 상처가 되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다음 직장을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는 냉정함이 무서웠다. 그것이 사회초년생에게 하는 기성세대의 가르침이라면 효과는 충분했다. 이후로 나는 학원의 어떤 부당한 횡포도 참아내는 순종적인 강사가 되었으니까.


원장이 임의대로 근무시간을 늘려도, 보강수업을 요구해도, 고등부 수업료를 주지 않아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그것은 법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이 아니라는 생각,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단념했기 때문이었다.


<임계장 이야기>는 저자가 2년 8개월간 버스배차관리, 아파트와 빌딩 경비, 터미널 경비를 하면서 쓴 근무일지를 바탕으로 한 글이다. 38년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해온 조정진 저자는 퇴직 후 시급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서 한 말인데,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불러서 알게 된 말이란다. 처음에는 자신의 성씨를 잘못 알아서 부르는 줄 알았다고.


경비원의 일은 하루 24시간을 일하고 다음날 쉬는 형태로 2017년 최저시급으로 계산한 급여는 140만원이었다. 저자는 이것으로 대학 3학년인 아들의 학비를 댈 수가 없어서 아파트 경비와 빌딩 경비 두 가지 일을 했다.


24시간 격일근무를 하는 두 직장을 번갈아 하면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저자가 샤워장 얘기를 할 때는 돈벌이의 처절함이 느껴졌다. 음식물쓰레기통을 매일 씻고, 쓰레기더미를 치우느라 땀과 오물이 범벅이 되어도 아파트에서는 샤워장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 빌딩에서는 간이샤워장이 있어서 저자가 30분의 식사시간에 샤워를 했는데, 이를 안 근무주임이 ‘근무시간 중 샤워장 출입금지’지시를 내렸다. 식사시간은 임금을 주지 않는 휴게 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관리자 말 한 마디에 정의가 뒤바뀌어버렸다. 항의를 해봐야 해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저자는 4년간 네 번의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최근 아파트 단지 주민의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의 일도 있어서 그랬는지 책을 읽고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일을 시작한 이후로 해고와 고용주의 부당한 처우가 더오르기도 했지만, 내가 고용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12년간 학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강사와 기사를 채용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모두 적법하게 대우하고 그 분들도 정당하다고 느꼈을까? 임신계획이 있는 기혼여성보다는 미혼인 강사를 선호했던 내가 과거 그 여성원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조정진 저자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할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일상으로 겪어내고 있는 것을 알리고, 같이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현장에서 보니 개인의 문제로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개인이 해결할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비원을 감독하는 아파트 관리소장, 빌딩의 근무주임, 버스회사 상무도 고용주의 지시를 받을 뿐 규정을 바꿀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 또한 부당한 처우아래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든 피고용인이자 고용인이 될 수 있고, 고객이자 판매자가, 갑이자 을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언제나 젊을 수 없다.


‘몇 살까지 일을 해야 할까?’살아있는 동안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계속 해야 할 것 같은데 책을 보면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으로 고령노동자를 부르는‘고다자’가 우리의 종착지라면 거기에 자유로운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아니어도 나의 부모, 배우자, 친구, 이웃이 될 수 있다. 노동자체가 비루할 수는 없다. 잘못된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나의 노동의 과거를 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게 되었다. 언제 나의 것이 될지 모르는 다른 이의 노동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저 혼자 참고 말았다면 그 편이 편했을지 모를 일을 해낸 저자처럼 체념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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