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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Jun 06. 2024

이 구역의 미친년

분노의 화장실 청소

아줌마 써야겠어. 집이 난리야. 이주에 한 번만 와도 집이 좀 정리된다더라.

부스스 잠이 깬 남편에게 속사포 랩이 나온다.

어제 아이들과 논 흔적이 고스란히 거실에  있어 하는 얘기였다.


둘째 기침하는 것도 집에 먼지가 너무 많아 그런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남편은 한 마디 대꾸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잡는다.

방 이렇게 쓸 거면 동생하고 바꿔. 네 방인데 네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여기는 필요 없는 공간이잖아.

아이는 눈치를 보며 청소를 시작한다.


내 입에서 정리라는 단어만 100번 나온 것 같다.

둘째 공간부터 치우기 시작한다. 최근 화분을 키우겠다더니 바닥이 흙으로 난리다.

첫째 공간으로 가니 어제 가지고 놀다가 쏟았다는 붉은색 모래가 난리다. 그동안 만든 것들을 버리지 못해 계속 담아 놓으니 공간들이 꽉꽉 차 있다.


며칠 전에도 아이에게 사진으로 남기라는 말을 했다.

물건은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결국 망가져. 그리고 처음 만들어서 집에 가져왔을 때만큼 기쁜 마음은 곧 사라져. 그러니까 사진으로 남겨. 사진으로 남기고 그때 생긴 네 마음을 글로 남겨. 그러면 언제든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잖아. 이렇게 쌓여 버린 물건은 결국 먼지가 쌓이고 잊히고 짐이 되어 버려. 그러니까 사진으로 남기고 스스로 버려. 엄마가 버리면 마음 아프잖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을 놓지 못한다. 결국 오늘 아이 방에 들어가 그동안 쌓여 있던 그림들과 작품들 중에서 오래된 것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미련을 가득 담은 눈으로 쓰레기 비닐을 보는 아이를 보니 또 딱하다.

빼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줄 테니까.


이번에는 화장실로 간다.

하.............

한숨이 나온다. 남편한테 다시 투덜대기 시작한다.

아줌마 써야 한다니까.

아이들 물놀이 장난감 중에서 이제는 가지고 놀지 않는 것들은 물때가 끼어 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깐 매트 아래로 보이는 머리카락과 먼지에 머리가 아프다.


매트 없애도 되지 않아?

애들 미끄러지면 어떡해. 아직 어리잖아.

매트 들어내고 치우는 게 제일 힘들어. 아줌마 불러서 치우면 깨끗해진다더라.


그래놓고 고무장갑을 끼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아줌마는 나인 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리카락과 먼지를 파내고 매트를 걷어 올려 바닥에 락스를 뿌린다.

쭈그려 앉아 박박 박박 박박.

얼마 전에 화장실 청소에 유용템이라는 도구도 사놨다.

박박박박박

그렇게 화장실 2개를 클리어.


그 사이 남편은 소파를 들어 그 아래에 있는 먼지를 모두 닦아내고 책을 정리했다.

옷이 다 젖은 상태로 머리는 산발. 청소도구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온 나를 보더니

식탁 위에 콩물 한 잔해.


대답할 기운도 없다. 샤워부터.

식탁에 앉아 머리도 말리지 않고 콩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우리 점심 안 먹었네?

미역국 먹으러 나가자.

그래. 몸이 후들거려. 따뜻한 국 먹자. 아줌마 부르자고 노래 불렀는데 그 아줌마가 나였네 나였어.

미역국 먹으러 가자.


한 달에 한 번 이 구역의 미친년이 된다.

어지럽혀진 집을 볼 수가 없다.

내 갱년기가 매우 걱정되는 순간이다.



기록

아침: 시리얼, 떡갈비 / 점심: - / 저녁: 미역국

운동: 격한 청소로 합리화

소감: 일단 집이 깨끗해서 치워진 집을 보니 기분이 좋다. 미역국을 먹고 집에 오자마자 잠들었다. 그 사이 아이들과 디자이너 놀이를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내일부터는 미친년 옷 벗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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