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그리고 딸과 엄마
퇴근한 엄마는 어질러진 집을 보며
돼지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집을 치우며
지긋지긋하다. 죽어야 해결되려나 보다.
어서 죽어야지.
그런 말을 종종 했다.
엄마도 지쳐 나온 말이겠지.
지금의 나처럼.
어느 순간 화가 불쑥 나고
생의 의미가 덧없고
지치고 힘들고 망가진 듯한 하루였겠지.
어린 나는 그 이야기를 숨 죽여 들었다.
그저 엄마의 저 마음이 어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엄마는 또 본인이 어서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웅크려 있던 나는 잠자코 듣다가
"응. 알았어. 그럼 나도 따라 죽으면 되니까 괜찮아"라고 말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도 잘 몰랐던 때.
그저 엄마를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때였던 듯하다.
나를 벗어나고 싶어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죽어서라도 따라가겠다는 내가 엄마는 좀 끔찍했을까.
그 이후로 내 앞에서 엄마는 더 이상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한테도 아이한테도
미안함을 넘어서 죄스러운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