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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Jul 21. 2024

에스프레소의 아찔한 추억

인종차별인 줄... 

습한 날이다. 

곧 중국으로 떠날 언니를 만나러 교대역으로 나섰다. 

자주 길을 잃어버리는 내게 낯선 장소는 두려움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닌다.

어쩔 수 없다. 팔자다 생각하며 기꺼이 두려워하며 사는 중이다.

하도 잃어버리다 보니 이제는 낯선 장소는 호기심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교대역 근처도 그런 곳이었다.

라운지인데 커피가 맛있다는 곳으로 간다. 

에스프레소가 맛있는 곳이라고 한다. 

보통은 원두가 맛있다고 하지 않던가? 에스프레소도 맛있을 수 있나?


의심쩍은 에스프레소. 

너무 습하다. 일단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 날이다. 

아무리 봐도 일반 건물 1층에 온전히 카페인 것처럼 되어 있는 라운지카페가

흥미롭다. 

동네 사람들의 쉼터인 듯 몇몇은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어? 정말 에스프레소의 종류가 좌라락 나열되어 있다. 

추천을 받아 위스키잔에 곱게 단장한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데 연유가 들어간 에스프레소라고 한다. 

일단 연유가 들어간다는 말에 안심이 된다. 


처음 마신 에스프레소는 온몸의 털이 바짝 솟을 만큼 쓰디쓴 맛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짧은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할 만한 장소가 필요했고 미국에서 그런 장소로는 스타벅스가 제격이었다. 

커피가 목적이 아니라 장소가 목적이었다. 

제일 저렴한 커피를 찾는다. 


이름이 불리고 커피를 찾아가는데 너무나 작은 컵이다. 

들어있는 거 맞아? 뚜껑을 열어 확인해 본다. 

작디작은 컵에 내용물까지 거의 바닥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인가?'

찜찜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 준 직원을 한 번 쳐다보고 자리로 돌아온다. 

자리에 앉아 한 입 마셔본다. 

온몸에 털이 선다. 뱉지 못해 삼킨다. 

 

마음속에 확신이 생긴다.

'그래 이거 인종차별이야.'


점원에게 간다. 

"물 한 잔 좀 줄래?"

그란데 사이즈는 되는 컵에 물을 가득 담아 준다.

'뭐지 물은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거야?'

당최 알 수가 없다.


커피는 자리값이다! 하며 테이블 앞에 두고 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과제를 했다.

잠시 후 친구가 왔고

친구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이야기를 한다.


"에스프레소는 원래 그래."

"어?"

"너 에스프레소 시켰지? 에스프레소는 원액이라고 생각하면 돼. 거기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지."

"아.."


지금 생각해도 확신의 인종차별이라고 느낀 내가 웃기다.

달달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며 이 날의 이야기를 해 주니 다들 기가 막혀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함께 자주 마시던 낭만적인 에스프레소였는데.

그래도 이런 재미난 추억 하나 가지고 사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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