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을 Nov 20. 2020

가난과 행복은 비례할 수 있을까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어

 언제부턴가 우리 삶은 가난함이 곧 불행함이라 정의되어 왔다. 물론 돈이 없다면 상대적으로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돈이 많다고 해서 결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방황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애틋했던 가족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에 대한 문제 등.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가난과 행복은 비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먼저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어릴 때는 '가난하지 않은 척' 하며 살아왔다. 사실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것보다는 크기 전까지 우리 집이 그래도 꽤 괜찮게 사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부족함 없이 모든 걸 해줬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어릴 때는 10평 겨우 넘는 집에서 동생과 부모님 포함해서 네 명이 함께 살았다. 잘 수 있는 방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어서 옹기종기 모여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복잡하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함께 있다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친구들이 메이커 신발을 고집할 때 나는 시장에서 저렴하면서도 그나마 예쁜 운동화를 사서 신었다. 하지만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스스로 마음에 들면 그게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용돈을 주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우리를 데리고 어디든지 나갔다. 공 하나를 들고 운동장을 가기도 했고, 자전거나 인라인 타러도 정말 많이 다녔다. 친구들은 자주 놀아주시는 부모님이 있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물질의 부유함이 아닌 마음의 부유함을 느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살이 되고 어느 정도 집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첫 알바는 '서빙'이었다. 설거지와 서빙을 같이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손이 어느 정도 빠르고 정확해야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씻는다고 열심히 했는데도 거품이 묻어 있거나 깨끗하게 씻겨 있지 않아서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한 번도 누군가 나에게 시킨 적도, 해본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원하는 걸 시켜주지 못했었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어떤 이는 너무 오냐오냐 자란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사랑의 표현이자 한 편으로 미안한 마음을 그나마 표현하려는 일부였을 뿐이었다. 내가 한 번씩 하려고 할 때면 "어차피 커서 지겹도록 하게 될 건데 지금은 쉬어."라는 둥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었지만 커서야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파릇파릇했던 스무 살을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아직도 어렸을 때 과자를 반드시 하나만 골라야 했던 그 시절의 습관을 버리진 못했지만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메이커 운동화도 살 수 있고, 입고 싶은 옷도 어느 정도 살 수 있다. 확실히 그때에 비해서는 돈이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봉이다." , "돈이 없다." 등의 말을 달고 산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부유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왜 지금은 이런 말들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는 것일까. 나만의 기준에만 충족하면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어쩌면 가난함은 곧 불행이라는 정의였다. 물질이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돈'에 있고 이를 쫓다 보니 그 외에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지쳐갈 뿐이었다. 가난과 행복이 비례할 수 있냐는 질문에 반드시 "예."라고 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어."라고는 대답할 수 있다.


 그저 함께 있음에 행복을 느꼈던 그 시절의 어린아이처럼 지금도 충분히 사소한 하나에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가 훗날 자녀를 가지게 될 때 물려줄 재산은 없더라도 내가 살았던 행복한 삶을 느끼게 해 준다면. 하루라는 시간 속에 웃음을 잃지 않고 살게 할 수 있다면. 그만큼 나에게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단순히 돈이 많은 부모가 아닌 행복을 주는 부모가 되길 꿈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