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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Jul 05. 2022

나를 힘들게 하는 그녀

필자에게는 받기 싫은 전화가 있다. 주로 퇴근 시간인 6시 즈음 오는데 그녀의 번호가 뜨면 한숨을 한 번 쉬게 된다. 6시는 보통 저녁식사 준비 중이라 여러 번 놓쳤고, 놓친 전화가 미안해 그 시간은 전화를 바로 받기 어렵다고 몇 차례나 말했음에도 그녀의 뇌 저장장치는 그 말을 번번이 튕겨냈다. 그렇게 오늘도 6시 즈음 전화해 쾌활한 목소리로 “잘 지냈어?” 묻더니 1분도 지나지 않아 오늘 느낀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새로운 얘기는 없다. 늘 같은 얘기다.  

그녀 주위엔 그녀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뿐이다. 자초지종을 듣노라면 흔히 있을 법한 에피소드여도 그들이 얼마나 무신경하고 생각이 없으며 배려라곤 1도 모르는지 한없이 쏟아낸다. 
“콩나물국 끓일 때 뚜껑을 닫니? 난 열고 끓이는데 그러면 비린내 난다고 자꾸 뭐라고 한다. 무조건 자기 말이 맞대!”, “나는 투썸 커피 좋아하거든? 근데 투썸 커피는 좋은 커피가 아니라는 거야. 투썸 커피가 맛이 없니?” 
콩나물국 끓일 때 뚜껑을 열고 닫는 게 뭐 그리 중요하며, 커피 맛은 기호일 뿐이라고 어찌 맞다 틀리다를 내게 묻냐고 흘려들으라며 달래 봐도 그녀는 못된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했다며 부르르 떤다. 
 
“내 팔뚝이 왜 굳었냐며 막 만져. 미친 거 아냐? 내가 원숭이야?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네가 아픈 걸 아냐고 물었더니 굳이 말 안 했단다. 몸에 이상이 와서 그런 거니 함부로 만지지 말아 달라 먼저 얘기하고 그래도 그러면 그 사람은 나쁜 거다, 일단 오늘은 화를 가라앉히라 했다. 내 말은 튕겨졌고 분노의 말은 한참이나 내 귓가를 때렸다.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긴 그녀는 피부가 굳고 손가락이 까매지며 소화가 안 돼 하루에도 알약 몇십 개를 털어 넣어야 하는 처지다. 늦둥이로 태어나 이미 늙은 부모에게 정성스러운 사랑을 못 받고 자랐으나 언니, 오빠들이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80세 넘은 부모를 부양해야만 했다. 홀로 된 자신의 노모를 나 몰라라 하는 올케를, 자기 아쉬울 때만 찾아와 벼룩의 간 빼먹듯 돈만 빼가는 올케를 밤낮으로 저주하느라 인생이 분노로 가득 찼다. 누가 봐도 부당한 상황이다. 누가 봐도 가여운 처지다. 그녀 달래기를 10년. 하지만 10년 전과 지금,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그 자리다. 
 
무거운 CD 플레이어를 고집하는 게, 버스 타면 한 번에 갈 것을 뺑 돌아가더라도 늘 타는 지하철을 고집하는 게, 마음에 들면 같은 티셔츠를 몇 벌이고 쟁여놓는 게 신기했다. 독특한 정체성의 캐릭터인 줄 알았다. 그녀의 취향을 존중하며 10년을 보낸 후, 병을 비롯해 그녀가 온갖 고난을 쓰나미로 맞은 후에는 10년 동안 달래며 지냈다. 총 20년을 겪으면서 CD 플레이어, 지하철, 같은 티셔츠들 그게 그녀를 단 한 발짝도 앞으로 전진할 수 없게 막아서는 고집의 발현이란 걸 알았다. 굳이 집에서 2~3시간 가야 하는 대학병원을 골라 한 달에 한 번, 한나절 걸려 정기검진 받고는 집에 가서 기절하는 그 미련함을 난 참을 수가 없다. 면역체계가 망가져 온갖 기관이 다 고장 난 지금,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도 “오늘 너무 바빠서 점심도 저녁도 못 먹었어. 나 지금 쓰러질 거 같아~”라며 해맑게 징징거리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잘 챙겨줘서 사랑한다고 고백한 후에는 하루의 일과를 모두 공유한다. 지금 장 보러 왔는데 뭘 샀는지, 집에 가서 뭘 만들어 먹을 건지, 드라마 뭘 볼 건지 다 들으라 한다. 끝도 없이 들려오는 “나는, 나는”에 질리고, 저주스럽게 쏟아내는 “쟤가, 쟤가”에 신경질이 뻗친다. 불쌍하게도 지독한 애정결핍에 답 없는 피해망상으로 그녀는 인생을 망치고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물었다. “왜 네 주위에는 그렇게 못된 사람들이 많을까?” 놀랍게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 모르면 몰라서 문제고, 알아도 마음은 별개여서 문제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컨트롤할 힘을 잃었다. 상담이 필요한 상태라는 20년 지기의 애정 어린 조언을 받아들여 그녀는 정신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오늘도 나는 일단 살리고 보겠다며 그녀의 전화를 받는다. 
 
나는 그녀를 겪으며 우아하고 교양 있게 살려는 의지 뒤에 감춰진 내 본성을 봤다. ‘나 정도면 인내심이 많다, 나라도 되니 상대해주지.’라는 오만함과 말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뜯어고치고 싶은 욕구, 난 아직 저 정도는 아니라는 이기적인 안도감… 그녀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전히 나 잘난 맛에 살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사람 피 말리는 재주로 내 밑바닥을 건드려 본성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나도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렇다’는 겸손함을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당신이 못 견디는 사람은 누구인가?  

기획안 초안에서 방향에 대한 피드백은 없고, 맞춤법 틀렸다고 지적질하며 완벽주의 성격인 자신을 내심 자랑스러워하며 이해해달라는 상사? 자기 들보는 못 보며 남의 티끌만 들춰대는 동료? 뻔뻔한 건지 지능이 떨어지는 건지 개념을 밥 말아 드신 신입? 저마다 견디기 힘든 기질과 태도가 다르다. 누군가는 거짓과 기만을 싫어하고, 누군가는 이기적인 태도를 싫어하며, 누군가는 무능함에 치를 떤다.  

 
우리가 혈액형, 별자리, MBTI 등으로 궁합을 따져보는 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가 아닐 거다. 내가 싫어하는 걔를 내가 좋아하는 쟤가 좋아하는 게 의아하고, 내가 존경하는 저 사람을 내가 싫어하는 걔가 싫어해서 짜증 나고, 난 쟤가 좋은데 쟤가 날 싫어해서 속상한 일이 일어나니 궁합이나 관계도를 기웃거려 보는 게 아닐까?  
 
어차피 사람이 모인 곳에서 고만고만한 갈등이야 일어나기 마련이고 각자 마음을 조절해가며 적당히 섞여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이 바닥 참 좁다’는 그 사회망 안에서, 거리두기 없이 늘상 봐야 하는 존재들이란 게 문제다. 안 보고 싶어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버텨야 하는 존재들이어서 다들 병들고 지친다.  


 
 
하버드대학은 학생들에게 감성지능을 강조한다.  

한 때는 IQ 높은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EQ(감성지능)니 SQ(사회성 지능)니 새로운 척도가 나와 성공 비결을 재고하게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 굳이 논문이나 조사 결과를 보지 않아도 직접 느끼게 된다. 머리’만’ 좋은 사람은 성가시고 재수 없을 뿐이다. 확실히 성품이 좋고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믿음직하다. 일을 할 때도, 아니 일할 때야말로 높은 감성지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 일이 힘들다면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감성지능이 부족한 누군가에게 시달릴 확률이 높다. 혹은 본인의 부족함이나 미숙함이 스트레스를 불러올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왜 힘든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해결할 수 있다. 두툼한 책 [하버드 감성지능 강의]에서 몇 가지 힌트를 가져왔다. 일단 감성지능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가자. 



“미국 예일대학의 피터 샐로베이 교수와 뉴햄프셔대학의 존 메이어 교수는 감성지능을 다음의 세 가지 능력으로 정의했다. 


- 자신 혹은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분류하는 능력
- 자신 혹은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 감정 정보를 이용해 사고를 이끄는 능력
 


요컨대 감성지능이란 ‘스스로 감정을 관리, 평가, 표현하는 능력, 감정에 접근하거나 감정을 생성해 사고를 촉진하는 능력, 감정을 조절해 지적 발달을 돕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감성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처세와 일 처리에 능하고 사교에 탁월하다.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골먼은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저서 [EQ 감성지능]에서 한 사람의 성공을 촉진하는 요소 중 지능은 20%에 불과하지만 감성지능의 작용은 8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감성지능이 개인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대니얼 골먼은 감성지능에 다음 다섯 가지 영역이 포함된다고 보았다. 
 
첫째는 감정 인식이다.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 변화를 관찰하고, 감정의 출현을 감지하며, 내면의 경험을 관찰하고 검토한다. 이것이 가능해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둘째는 감정 관리다. 감정을 조절하여 적시에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한다. 즉 자기 제어를 의미한다.  
 
셋째는 동기 부여다. 활동의 목표에 따라 감정을 동원하고 지휘한다. 이를 통해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넷째는 공감 능력이다. 타인의 감정을 식별하는 것으로 미세한 사회적 신호를 통해 타인의 욕구와 욕망을 민감하게 느낀다. 타인과의 정상적인 상호작용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밑거름이다.  
 
다섯째는 관계 형성이다. 자신 혹은 타인의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감성지능은 일종의 감정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감성지능이 높다는 것은 감정 관리 능력이 강하다는 의미로 이런 사람들은 온갖 트집과 비난에도 침착하게 대처해 대인관계와 사회 적응력이 좋고,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해서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다. 반면에 감성지능이 낮은 사람은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불만족스러운 일들로 괴로워하고 쉽게 동요해서 성질을 부리는 통에 일을 더 망친다. 이런 사람들은 늘 자신을 통째로 큰 슬픔과 큰 기쁨에 내던지는 큰 감정 기복 탓에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감성지능은 완전히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감성지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언제든지 배우고 향상해도 늦지 않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에서 진행된 감성지능 강의를 14차례 진행된 수업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데, 목차만 봐도 전체 내용을 가늠할 수 있게 잘 구성이 되어 있다. 목차 중에서 일부를 발췌해 소개하겠다. 감성지능의 높고 낮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어떤 소질을 갖춰야 하는지 훑어보자. 
 

두 번째 수업 
감성지능은 성공을 위한 소프트파워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통찰력이 있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교에 능하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아실현이 더 쉽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제력이 뛰어나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좋은 습관이 있다. 
 
세 번째 수업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감성지능 소질 

자존감 :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의 자부심 
자신감 : 평범한 당신을 비범하게 만드는 힘 
관용 : 즐거움의 비결 
정직 : 자신에 대한 성실함, 타인에 대한 신뢰 
겸손 : 하버드는 공부하는 곳일 뿐이다. 
 
네 번째 수업  
감성지능이 낮은 사람의 부정적 정석 

불평 : 인생을 암울하게 만드는 태도 
두려움 : 삶을 무너뜨리는 위협 
충동 : 악마의 속삭임 
우울 :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마음의 감기’ 
증오 : 남에게 상처 주고 나를 벌주는 독 
 
 
자기개발서가 그저 그렇게 느껴질 때가 온다. 누구보다 열심히 내 것으로 만들어 이미 성장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많은 책들 가운데서 정말 괜찮은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오늘 정리한 [하버드 감성지능 강의] 책은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다 아는 말 같지만 요약한 내용을 드문드문 읽는 것과 시간을 내서 통으로 읽는 것은 다를 거라 장담한다. 요즘같이 짧게 소비되는 컨텐츠를 자주 접하는 때일수록 시간을 내서 긴 호흡으로 하나의 맥락으로 흐르는 책을 읽는다는 건 두뇌에 영양분을 주는 행위라고 믿는다. 사색하는 힘, 현상 이면을 꿰뚫는 통찰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은 기본적으로 양질의 데이터가 풍부해야 가능하다. 저절로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면 되는대로 일단 머리에 넣어야 한다.  
 
이 책도 목차만 보면 왠지 다 알 것 같고, 그저 그런 말 같지만 실제로 펼쳐서 정독하면 마음에 새길 문구가 굉장히 많다. 잘되는 사람이 왜 잘되는지, 저 사람이 왜 날 힘들게 하는지 일깨워주며 분명 팁으로 삼을 만한 정보를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건진 내용 두 가지를 소개하겠다. 아마 나와 당신은 다르기에 당신에게 와닿는 내용은 다를 수 있겠으니 직접 찾아보길 추천한다. 




“2005년 3월 8일, 하버드는 입학 예정자 119명의 입학을 취소했다. 전 세계가 이 파격적인 입학 취소의 이유에 주목한 가운데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장인 킴 클락 Kim Clark은 이들이 학교가 입학 허가서를 발급하기 전에 온라인 지원 소프트웨어의 보안 허점을 이용해 학교 웹사이트를 ‘해킹’해서 합격 결과를 훔쳐봤다고 밝혔다. 킴 클락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학생을 양성하는 기준이 정직, 성실, 신용, 판단력 그리고 도덕성이라면서 이런 종류의 부정행위는 매우 부도덕하며 정직이라는 미덕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또 앞으로 어떤 지원자도 이런 행위가 발각되면 입학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일은 반드시 정직함을 우선시한다는 하버드의 교육 취지를 매우 잘 보여준다.  
정직한 사람의 자아는 순수하고 안정적이며 건강하다. 이런 사람들은 이상적인 도덕의 힘과 의지를 구현하며 타인에게 신뢰받는다. 정직함은 그 사람의 인품을 승화해 더 많은 사람이 그를 지지하게 만들고 더 큰 성공을 거두게 한다. 사람됨의 극치는 진실을 말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다루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은 태도로 일정한 규칙 규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기반을 잃고 사회는 작동의 힘을 잃게 된다.  
 
정직한 사람은 매사에 침착하고 담담하며 대부분 경우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정직함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도덕적인 문제로만 여기고 사람이 사회에서 자리잡기 위한 기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경제 사회에서도 도덕과 이익은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의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왜 어떤 이는 단짝 친구가 없고, 남들과 잘 지내지 못하며, 툭하면 기숙사 방을 바꾸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도 곱게 보지 않으며 아주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남의 장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긴장하는 자신이 싫고, 긴장할 때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되는 자신을 못 참기 때문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천성이라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맹목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면 삶의 멋진 장면을 놓치고 그 과정에서 길을 잃게 된다. 사실 진정한 완벽함이란 일종의 발전, 즉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타협적인 완벽주의자로 이런 사람을 ‘최적주의자optimalist’라고 한다. 이들은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을 오직 자신의 경력과 일에 둘 뿐이며 타인을 구속하는데 쓰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가장 좋게 마무리하는 데만 집중한다. 이러한 성향은 많은 나쁜 상황에서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짧게 쓰고 싶은데 또 길어졌다. 다음 달엔 꼭 짧게 쓰리라 맘먹으며 다음 당부로 마무리하겠다.  




단정하지 말자.  

저 사람은 감성지능이 낮다고 영원히 그럴 거라고 단정하지는 말자. 자기 자신만 봐도 지금 알았던 걸 그땐 몰랐기에 종종 이불킥하지 않는가. 나를 힘들게 하는 저 인간도 언젠가는 ‘사람’이 될 거라고 너그러이 봐주고 기다려주자. 

 
필자의 아이는 어둠을 극도로 무서워해서 잘 때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심지어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꼼짝없이 팔베개한 채 온몸을 안아주어야 한다. 스마트폰이라도 들여다보려면 곧 제재한다. 잠도 안 오는데 멀뚱멀뚱 있기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토로하니 이렇게 말한다. 
“나를 봐. 지금의 난 어제와 달라. 1초 뒤 나도 지금의 나와 달라. 변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봐.” 
어이없어 피식 웃지만 아이도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라는 걸. 나도 너도 멋지게 변할 거라 믿고 서로 너그럽게, 선 넘으면 ‘정중하게’ 뼈 때리고, 그래도 다음 날은 웃으며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자. 그렇게 감성지능 높은 조직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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