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는데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게 머릿속에 온통 일 생각뿐이고 쉬다가 일을 제 때 못 끝낼 것 같고 그래서 쉰들 쉬는 게 아닐 때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쉰다는 게 뭔지 쉬는 날엔 그저 잠을 자든가 치킨 먹으며 멍하니 TV 보는 게 다라서 딱히 개운해지지도 않아서 이제는 쉬어서 뭐하나 그리고 어떤 때는 이렇게 일해서 뭐하나 싶기도 해서 솔직히 사는 낙이 없다.
아.. 내가 적고도 숨 막히고 늘어진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제발 숨 좀 쉬자. 천천히 가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쉼표와 마침표다. 자자~ 다시 써보자.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지칠 때가 있다. 쉬고 싶지만 온통 일 생각뿐이라 쉬어지지도 않는다. 이젠 쉬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쉰다며 하는 거라곤 늘어지게 자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치킨 뜯으며 TV를 보는 거다. 쉰다기보다 그냥 일을 안 하는 시간일 뿐이다. 이러니 사는 게 낙이 없다.
글쓰기 비법의 처음 아니면 두 번째로 나오는 게 ‘짧게 쓰기’다. 끊어 쓰지 않으면 그 긴 문장이 말이 되게 만들려고 머리를 싸매게 된다. 그래서, 그러므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등이 따라붙게 되며 쓰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지치게 된다.
바퀴로 굴러가는 모든 것에는 브레이크가 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중간중간 멈춰야 할 때가 온다.
모든 것을 얼리는 겨울이 가면 모든 것을 녹이는 봄이 오고, 뜨거운 여름이 가면 시원한 바람을 몰고 가을이 찾아온다.
수확철에 열매를 잃은 과실나무는 겨울에 쉬고 봄에 또 열매를 맺을 새순을 밀어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곤충이든 밤이 되면 의식을 끄고 잠을 잔다. 그래야 다음 날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쉼표와 마침표가 없는 것이 없다.
지금 당신이 너무 힘들다면 아마도 오래 달렸기 때문이리라. 오래 달려도 별일 없을 사람은 없다. 분명 탈이 난다. 너무 바빠서 도무지 쉴 수가 없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그럴 때일수록 반드시 쉼표를 찍어야 한다.
치열한 현장에서 강제적으로 쑥 뽑혀나간 경험이 있다. 건강이 와르르 무너져서 일을 할래야 할 수가 없어 그만둔 후에야 ‘아, 내가 쉴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자각했다. 시야를 가린 채 무작정 달리는 경주마처럼 내가 달리고 있는지도, 내가 지쳤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멈추는 걸 할 수가 없는 거다. 일이 너무 좋은 줄로만 알았지, 그래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던 거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현장에서 빠져나온 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온전히 누리고 나서야 ‘쉼의 유익함’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다. 쉬어본 자라야 진짜 쉴 줄 안다. 타짜 쉼 전문가, 에밀리가 유플리더들에게 권하고자 한다.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쉼표를 찍어라.”
어렸을 땐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위로를 받았을 거다. 어른이 된 지금, 엄마는 최후의 보루다. 엄마를 찾기 전에 책으로 달려간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내가 바라는 답을 찾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들을 훑는다. 수많은 제목들 사이에서 얼추 눈이 멈출 때 그 책을 꺼내 들고 추천글, 서두, 목차 등을 훑어본다.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작정하고 읽기 시작하면 내 고민은 서서히 쪼그라든다. 내 의식이 나를 향하면 내 고민은 부풀려지고, 내 의식이 밖을 향하면 내 고민은 사그라드는 현상이 신기하다. 늘 그랬다. 자기 계발 서적이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이야기에 빠져들면 이야기 밖의 나는 제3자가 되어 거리두기나 객관화가 된다. 그렇게 되면 뭐, 가벼워지는 거지. 바위처럼 날 누르던 감정이 먼지가 되어 털린다. 나에게 쉰다는 것은 ‘책을 통해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넣어 나를 비워내는 것, 이것이 내 쉼의 비결이다.
야근에 찌들었을 때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책을 챙겨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낄낄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재밌던지 출퇴근 시간을 기다릴 정도가 되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 책이 자그마치 삶의 낙까지 돼주었다. 몸과 맘이 황폐한 순간에도 그렇게 낙이란 게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유플리더에게 시를 권해볼까 한다. 이유는 별 거 없고, 시는 짧아서 짬짬이 읽기 좋으니까. 30초면 시 한 편 뚝딱 해치울 수 있으니까.
오랫동안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담겨있던 건데 그날따라 머리가 무겁기도 해서 제일 만만하게 느껴지는 ‘시집’ 장르인 이유로 골라 들었다. 이해인 수녀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다. 큰 기대 없이 펼쳐 들었다가 서두부터 훅 빨려 들어갔다. 당장 유플리더에게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이 순간은 지나가리라, 인생을 놓고 볼 때 지금 이 고민은 그저 점이리라,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고 그래서 힘든 시기일 유플리더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깊이 파고들지 말자. 그냥 나누고 싶은 마음이니 오늘 유플에세이는 쉽게 가자.
JYP가 말했다. 말하듯 노래하라고.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읽는데 이 말이 떠오르더라. 말하듯 시를 읽게 된다고.
48, 50, 51, 67, 74, 81, 94… 좋은 시가 있는 페이지를 적다가 멈췄다.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고 언제든 펼쳐서 읽어봐야겠다. 그러다 외워버리지 싶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시를 외우고 다니는 거구나. 외워져서 입으로 읊게 되는 거였어. 나도 언젠가 시 한 편 외워서 친구를 위로할 날이 올까? 그것도 좋겠네. 내가 어느 날 시 한 편 읊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밑밥을 깔아본다.
옆집 언니 에밀리가 삼천포로 들어서는 게 느껴진다. 의식의 흐름에 쉼표를 찍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뭔가를 느꼈던 글을 바로 소개하겠다.
이만큼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수도복도 많이 낡아서 기워야 되고 오른손에 끼워져 있는 종신서원 반지도 너무 닳아서 얇아졌다. 낡은 것, 헌것도 결국은 모두가 다 세월이 준 아름다운 선물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성당 바로 옆의 느티나무를 좋아하고 나의 글방 옆에 서있는 살구나무를 좋아하며 사계절 내내 피어나는 정원의 다양한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 새롭게 정들이면서 살아오는 나. 오늘도 종탑이 잘 보이는 언덕 길에서 두 손 모으고 종소리를 듣는다. 어느 수도원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우리 집에서도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은 삼종기도를 위한 큰 종을 치고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를 위한 작은 종을 매 기도 시간 5분 전에 친다.
항상 큰 단체 안에서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는 종소리 없는 데 가서 얼마간 자유롭게 살아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적도 있었으나 막상 종소리 없는 곳으로 가서 머물게 되면 즉시 그리워하게 되는 게 신기하다. 몸이 다른 곳에 있는데도 공동 기도 시간이 되면 수도원의 종소리와 수녀들의 기도 소리가 저절로 환청처럼 들리곤 한다. 아마도 밖에서 산 세월보다 여기서 산 세월이 더 길다 보니 그런 것이기도 할 테지만 수도원의 종소리는 나의 삶을 길들이는 ‘지킴이’고 ‘수련장’이며 졸지 않고 깨어 살게 재촉하는 ‘죽비’ 역할을 해온 것이기에 그를 떠나면 이내 걱정이 되고 불안하도록 그리워지는 것이리라. 좀 더 선해지고 좀 더 진실해지고 좀 더 아름다워지라고 오늘도 종소리는 처음의 사랑으로 나를 부르고 있으니 행복하다.
[종소리]
항상 들어도
항상 새로운
당신의 첫 소리
방황하며
지친 내 영혼
울다 울다 쓰러져
다시 들으며
나를 찾네
멀리 있고
높이 있어도
늘 가깝고
귀에 익은
그리움의 힘이여
죽어도 잊을 수 없고
절망 속에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처음의 사랑이여
이 책이 쓰인 2014년은 수녀회 입회 50주년이자 자연의 나이 칠순이라고 했다. 70세 수녀님이 쓰신 시에서 나는 아마도 ‘저물어가는 때에 인생을 돌아보니 모든 게 행복이었소.’를 느꼈던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애정은 청춘이 아닌 청춘이 물러난 때에 느껴지니 참 아이러니다. 살아볼 날이 많을 때에 알면 좋을 법할 것을 살아낸 후에야 알게 되니 인생 참 얄궂다.
지치고 힘든 그대를 위해 ‘이 순간 또한 아름답게 기억될 것’ 이라며 마음을 촉촉하게 적실 시 몇 편을 놓고 가겠다. 취향대로 골라 음미하시고, 관심이 생긴다면 잔디로 알려주시라. 내 그대의 카톡 선물함으로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한 권 넣어드리리라. 그렇게 그대의 하루에 쉼표 하나 찍어드리리다.
사랑과 용서는
어쩌다 마음 내키면 하는
그런 것이 아니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의 모든 순간에
사랑이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고
화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순간마다
깨어 있지 않으면
큰일 나는데
그것이 너와 내가 살아가는
인생인 거야, 알았지?
나도 다시 알았어
오늘은 우산을 쓰지 않고
일부러 비를 맞습니다.
톡 톡 톡
빗방울이
나에게 노크하며
하는 말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봐요.
우는 걸 부끄러워하면 안 돼요.’
내가 요즘 울고 싶어도
못 우는 것을
빗방울은 눈치챘나 보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나서
잔디밭으로 뛰어갔다
울음 대신 웃음이 나와
비를 보고 노래를 불렀지
몸이 아플 땐
먹는 약도 있고
바르는 약도 있는데
마음이 아플 땐
응급실에 갈 수도 없고
기도밖엔 약이 없네
누구를 원망하면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가만히
내가 나를 다독이며
기다리다 보면
조금씩 치유가 되지
슬그머니 아픔이 사라지지
세월이 나에게 준
선물임을
다시 기뻐하면서
나는 말이야
살다 보니 벌써 백 세가 되었네
연길에서 내려와 함께 살던 이들
모두 다 나보다 먼저 가고
이젠 나만 남았잖아
어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네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민망하고…
왜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일까?
수녀가 말 좀 해봐요
내가 그래도 수녀를 알아보는 게 신기하지?
정말 오랜만에 내 방에 왔구먼
시는 성령의 날개라고 내가 말한 것 기억나?
수녀의 모친이 나에게 처음으로
뜨거운 성령 기도를 가르쳐준 것을 잊을 수가 없네
바빠도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알았지?
내 몸은 힘이 드는데
그래도 마음은 천국이야
나의 선종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라
삶은
갈수록 무거운데
나는 갈수록
가벼운 것만 좋아하니
어쩌나?
옷도 가벼운 게 좋고
책도 가벼운 게 좋고
이야기도 가벼운 게 좋고
때로는 무거워야 할 기도조차도
가벼운 게 좋으니 어떡하지?
무거운 것은
생각하기도
쳐다보기도 싫으니
어떡하면 좋지?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가?
바보가 되어가는 징조인가?
오늘은 낙담한 내가
더욱 무거워
우울하고 우울하다
침방
침실
수방
으로 불리는
나의
자그만 방
조은집 407호실
여기서 나는
오랜 시간
생각하고
기도하고
꿈꾸고 잠들었지
언젠가는
먼 길 떠나
이 방을
비우고
다른 이가 들어와
살게 되겠지
오늘은
처음으로 이 방이
바다 위에 뜬 섬 같기도 하고
기쁘게 항해하는
한 척의 배와 같이 느껴져서
창문을 열어보네
내가 살아 있어
새롭게 정겨운
나의 방에서
행복은 이리도
가까이 있는 것을 깨닫는
가을의 아침
아침은
하얀 치약 향기로
나를 깨우네
매일
경건하게
치약을 짜며
조금씩 줄어드는
나의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네
치약을 한입 물고
거울을 보면
나를 향해
환히 웃는
나의 얼굴
줄어드는 시간을
두려워 말라고?
그의 빈자리에
순결하고 견고한
희망을 꽉 채워 넣으라고?
꼭 그래야 한다고
그러면 좋다고
거울 속의 얼굴이
내게 말하네
친구야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흔적도 없이 그렇게 부서져
하얀 가루가 되었느냐?
네 어여쁜 몸이
불가마 속에서 타오를 적에
겁이 많은 너는 얼마나 뜨거웠느냐?
혼자만 갑갑한 곳에 갇히어
얼마나 외로웠느냐?
나는 요즘
자주 보던 네 사진을 보지 않는다
항아리에 담겨서 들어간
너의 조그만 집에도 가지 않는다
그래도 어디선가 자꾸만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 웃음이 보이고
너는 늘 나와 같이 있구나
우리는 역시 죽어서도
단짝 친구구나
언젠가는 나도 너를 따라갈 거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