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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Jun 08. 2022

칭찬이 어색한 당신에게

필자는 유플리트에서 진행하는 엑스퍼트 포럼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이번 달 내용 중 ‘지지적 피드백’이 인상적이었다. 일터에서 피드백할 때 인정과 격려가 중요하다는 내용인데 결국 서로를 칭찬하잔 내용이 되겠다.  
 
필자는 ‘세상이 아름다운 아이’란 말을 종종 들었다. 긍정적으로 산다는 뜻일 텐데 학교 다닐 때부터 회사 생활할 때까지 두루두루 들었으니 기질이 그런가 보다. 그래서인지 칭찬하는 게 어렵지 않다. 머릿속에 즉각 반응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쩜 눈이 그렇게 흑진주같이 새카맣고 이쁠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천재 아냐?”, “차장님과 있으면 제가 정말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져요. 자존감을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이 퐁퐁퐁 떠오른다.  
 
부작용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의 칭찬을 칭찬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소성이 떨어져서랄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3~4배 이상 속으로 칭찬을 삼킨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놀라겠지? 세상엔 멋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게 보는지 알면 깜짝 놀랄 텐데. 
 
칭찬에도 요령이 있다는 걸 배웠다. (엑스퍼트 포럼 6회 차 ‘지지적 피드백’을 참조하시라.) 내 칭찬이 어색했던 이유는 “너무 좋아요~~~”라는 내 감정 고백에서 그쳤던 거다. 내가 왜 좋아하고 칭찬하는지 상대방이 납득했으면 좋았을 텐데 무방비 상태에서 툭 꺼내놓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자기반성과 함께 칭찬에 대한 흥미가 생겨 바로 도서관에 달려갔다. 검색창에 [칭찬]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 주르륵 나오는 검색 결과를 보며 특이점을 발견했다.  
 
1. 어른보다는 어린이 대상의 칭찬 책이 많다.
47개 도서 중 36개가 아이들 대상의 동화책이다. 

<도서관에서 칭찬을 검색한 결과>


내친김에 교보문고 사이트에 접속해 칭찬을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 총 808개의 서적이 노출된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칭찬이 중요하다는 게 카테고리만 봐도 느껴진다. 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 한 인간의 자존감을 쌓기 위한 자양분이 칭찬임을 바로 알 수가 있다. 


<교보문고에서 칭찬을 검색한 결과의 카테고리>


2. 어른이 되면 칭찬이 도구가 된다. 
인간관계론에 있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작가인 데일 카네기의 저서가 눈에 띈다. 데일 카네기의 책은 고전이라 볼 수 있다. 칭찬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 단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칭찬의 힘]을 추천한다.  
[리더는 칭찬하지 않는다_나쁜 리더는 없다, 서툰 리더만 있을 뿐] 제목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반어법을 써서일 거다. 제목은 저래도 내용은 결국 칭찬하라는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책인데 ‘미움받을 용기’로 핫한 작가다. 미움받을 용기와 리더는 칭찬하지 않는다, 에서 같은 맥락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검색 결과를 훑어보면 어른인 우리는 칭찬을 자기 계발과 처신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동시에 자기 위로와 치유의 도구로도 권장받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칭찬이 무조건적인 미덕인 반면 어른에게는 칭찬이 독이니, 내적 동기 유발이니 등등 그 쓰임새와 효과에 대한 다양한 변주가 나온다. 어른은 칭찬함과 칭찬 받음에 취약하고, 의심하고, 칭찬받을 때 처리하는 방식도 미숙하다는 걸 느낀다. 어릴 때 칭찬을 접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을 수도 있고, 어른이 되면서 동기가 불순한 칭찬을 접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칭찬에 대한 책들을 두루두루 훑으며 내린 결론은 ‘순수한 칭찬’이 진짜 칭찬이란 것이다. 
 
 형형색색 깜찍 발랄한 동화 코너를 지나 자기 계발 코너로 가니 책들이 ‘해라, 해라’ 잔소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문득 칭찬도 일 같이 느껴진다. 그러다 비치된 책들의 제목을 읽어나가는데 문득 직장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솟는다.

<자기 계발 코너의 서적들>


참 많이 갈등하고 있구나. 인정이 고프구나. 삶은 고달프구나.
모두에게 권하고 싶어졌다. 오늘 당장 도서관이나 서점에 달려가 보라고. 당신이 힘들어하는 바로 그 이유로 누군가는 책까지 냈다고. 책 몇 권 훑어보면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란 걸, 당신이 이겨낼 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담배 한 대, 술 한 잔도 좋지만 활자로 박제한 지혜를 탐해보시라. 당신의 삶이 조금씩 풀릴 것이다. 
 
도서관에 갔으니 얻는 게 있어야 하는 법. 칭찬의 기술을 알아보는 것은 당신의 몫으로 남기고 필자는 당신이 왜 칭찬에 서툰지 알려주겠다. 하라 구니오의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에서 발췌해본다. 

“왜 우리는 칭찬을 어색해할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칭찬 포인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가 진짜 문제인데, 바로 칭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칭찬 포인트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를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아내의 헤어스타일이 바뀐 걸 알아차리지 못해 부부싸움을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주 조금만 관심 있게 지켜봐도, 정말 조금만 칭찬해도 부부 관계가 원만할 텐데,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 칭찬 포인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관찰력이 떨어져서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아마 그 사람은 새로운 것이나 재미있는 것을 찾는 것도 어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칭찬하는 힘을 익히면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고, 아이디어를 낳는 힘도 커진다. 이게 칭찬의 마법이다. 
그렇다면 칭찬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상대를 칭찬해도 바뀔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칭찬의 의미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칭찬은 상대를 응석받이로 만들어 역효과가 난다고까지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인생에서 칭찬을 하거나 칭찬을 받아서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칭찬의 마법을 실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안타깝다. 이 단락을 읽고 찔림이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칭찬을 공부해야겠다.   
 
필자에게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칭찬을 받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무 정직한 사람이라서 칭찬을 받으면 빨개지는 얼굴로 칭찬받을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다. AI처럼 “아니에요.”라는 대답을 내놓고, 넣어두라는 손짓을 보이며 도망간다. 칭찬을 잘하는 내가 이렇게나 칭찬받는 게 불편한 이유는 뭘까? 
이번 성취는 우연인 것 같고 내일 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내일 실패하면 오늘 칭찬이 무색해질까 봐. 자의식 과잉이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좀 산뜻해야 하는데 너무 딥해서 내가 진짜 칭찬받을 자격이 있는지 증거가 백만 개는 나와야 수긍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기준치를 높게 잡아놔서 좀처럼 만족할 수 없는 거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인색한 자의 전형적인 ‘자의식 과잉’  
 
대학 때 전설적으로 아름다운 동아리 후배가 있었다. 엠티를 갔는데 다음 날 아침 다들 단장하느라 요란한데 그 후배는 여유롭게 마스카라 하나 쓱 바르는 게 끝이더라. 그럼에도 단장한 친구들보다 뽀얀 얼굴, 그려낸 눈썹보다 선명한 자연의 눈썹, 색을 입히지 않아도 붉은 입술. “와~ 예쁜 얼굴로 사는 기분은 대체 어떤 기분이야?”라며 감탄하자 후배는 그저 방긋 웃기만 했다. 고수의 답을 보았다. 수없이 들었을 칭찬에 미소로 답하는 센스. 굳이 언어를 써서 자신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는 비언어적인 수용.  
 
내가 칭찬을 어색하게 튕겨내고 있음을 깨달은 이후로 그 후배의 미소를 팁으로 삼아 이제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안한다. 누군가의 칭찬에 호의적으로 답하고 싶다면 외워둔 문장을 꺼내시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을 하는 것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버겁거든, 책 읽을 힘조차 다 소진됐거든 자연을 보러 나가보자. 자연은 당신을 칭찬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다. 
불평불만 없이 자리를 지키는 들꽃을 보라. 감미로운 향기를 내뿜는 장미를 보라. 누가 더 잘났는지 재는 게 의미 없어진다. 모든 인생이 소중함을 알게 된다. 
동네 작은 공원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하늘을 보라.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보면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도 좋다는 걸 깨닫는다. 
바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품을 줄 아는 너그러움을 배워보자. 나도 바람처럼 누군가의 뺨을 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산책을 하고, 등산을 하고, 꽃을 가꾸는 사람은 의식하든 안 하든 알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내가 자연을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듯 자연 또한 나를 판단하거나 책망하지 않는다. 서로 그저 존재하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한 번씩 자연을 보고 돌아오면 넓어진 마음과 시야로 나와 타인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힘으로 당신의 하루하루가 치유되길 바란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나. 마음 같아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가며 왜 당신이 좋은지 나열하고 싶은데 주책이라고 할까 봐 삼킨다. 대신 흘러넘치는 애정을 꾹꾹 눌러 담아 유플리트 안에서의 당신의 하루가 날마다 따뜻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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