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8초 인류
봄이 오고 있어요!
따뜻한 봄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다시금 생의 의지가 샘솟고 있습니다…만, 뭐 하나 진득하니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못마땅해집니다. 나이가 들었나 싶다가도 나이 탓만 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때문이라는 것을.
런던 테이트 갤러리의 연구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박물관의 예술 작품 앞에 멈춰 있는 시간은 단 8초라고 합니다. 그 8초는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래요.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8초 인류] 중-
비슷한 류의 연구 결과는 허다하게 널렸을 테죠. 당장 나 자신만 보더라도 30분만 책을 읽어보자 결심한 후 비장하게 자리잡지만 분 단위로 울리는 까톡과 문자, 각종 알림들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게 만듭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장소나 내용이 나오면 당장 네이버나 구글을 열어 검색하기도 하죠. 큰맘 먹고 SNS 알림을 꺼놓은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스마트폰 찾을 일은 숨 쉬는 것만큼 잦아요. 손 탄다는 말이 있죠? 저 차갑고 까만 녀석이 그래요. 하루 종일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비장하게 애플워치의 방해금지 모드를 터치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차갑고 까만 녀석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거예요. 이 워드를 2~3장 채우기 전에는 절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데 참으로 절망스러운 것은,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 주의력은 분산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집중력의 여왕, 책벌레라 불리던 필자는 금붕어만도 못한 8초 인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우얄꼬…
이렇게 의지력을 상실할 수 없고요! 더 이상 산만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요! 알고리즘의 노예로 살고 싶지도 않아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자,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마주해 봅시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수치와 사례를 보니 오소소하게 소름이 돋더군요.
구글의 가장 뛰어난 전략가였던 제임스 윌슨 윌리엄은 ‘디지털 대기업들의 유일한 목표는 사용자를 가능한 한 오래 접속 상태에 있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래야 돈을 벌기 때문이죠. 그의 말을 소개할게요.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설계된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이 하나 끝나면 다른 동영상이 무작위로 자동 재생된다고들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화면 반대편에는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들로 구성된 수십만 개의 팀이 있지요.”
이세돌을 상대로 소프트웨어 알파고가 4대 1로 승리한 적이 있죠? 그보다 20년 전에 IBM의 딥 블루 컴퓨터가 당시 체스 챔피언이었던 개리 카스 파로프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 소프트웨어가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추천 비디오’ 기능의 개선을 포함한 다른 프로젝트들에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강력한 알고리즘이 화면 너머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윌리암스는 ‘플랫폼에서 나와 전원을 끄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온라인에 나를 계속 남아 있게 하려는 알고리즘의 대결은 이미 시작부터 진 게임’이라고 합니다.
페이스북 알림 색깔도 우리의 관심을 더 많이 끌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트위터의 ‘좋아요’ 버튼을 별 대신 빨간색 하트로 교체한 것도 고심하여 설계된 것으로, 클릭 수를 28퍼센트 올려주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그 무엇도 목적 없이 일어나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은 설계되고 연구된 것이다.
-[8초 인류] 중-
유플리트가 하는 일도 설계니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잘 아니까 더 똑똑하게 분별할 수 있을 거라 믿고 8초 인류에서 벗어날 팁을 공유할게요. 집중력을 회복하여 금붕어보다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하잖아요. (아… 금붕어를 라이벌 삼아야 하는 인류라니!) 역시 [8초 인류]에서 발췌한 내용이에요.
8초 인류를 저술한 리사 이오띠는 어느 날 전시회에 갔다가 어떤 작품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참회하는 막달레나> 앞에 서 있는 커플이었다고 합니다.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과 남성이 작가를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의 외모나 차림새가 아니라 움직임이었는데, 막달레나 조각상 앞에 서서 몇 분 동안이나 꿈쩍 않고 있었대요. 정확히 말하자면 조각상 주위를 천천히 돌다가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하고 조각상을 가리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조각상에 낙서가 되어 있나? 껌이 붙어 있나? 했지만 그건 아니고 그저 조각상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끌려 그야말로 감상하던 중이었대요. 전시 작품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에 바빴던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앞서 소개한) 테이트 갤러리의 연구 결과 우리가 작품 앞에 멈춰 있는 시간이 단 8초란 기사를 본 작가는 테이트 갤러리가 제안한 슬로건 ‘슬로우 룩킹 slow looking’ 즉, 관람객들이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한 그림에서 다른 그림으로, 또는 한 조각상에서 다른 조각상으로 뛰어다니는 것에 반대하여 일으킨 이 운동을 접하고, ‘10분 정도 할애하여 더 주의 깊게 작품을 관찰하고 우리의 ‘메뚜기적 사고” (어떤 것에서 다른 것으로 끊임없이 점프하는 우리의 능력을 분석한 MIT의 학자 시모어 페퍼트가 내린 정의)를 억제하려고 노력할 것을 제안’한 메시지에 동참하기로 작정합니다.
다음날 작가는 실험을 해보기 위해 다시 전시회에 갔으며, 곧장 막달레나로 향했어요. 책에서 그대로 발췌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집중하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바꿔 말해 8초 보고 넘어가면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례라서 길지만 발췌합니다.
“그 커플이 했던 것처럼 나도 막달레나 앞에 멈춰 서서 작품에 대해 내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지’ 보려고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막달레나가 두 손에 쥐고 있던 청동 십자가였다. 죽음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무한한 사랑의 상징이다. 나는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는 피로와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버린 막달레나의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카노바는 이 작품으로 단순히 종교적인 것뿐만 아니라 고독의 이미지 그 자체를 불멸로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것을.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막달레나의 얼굴에 수정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조각되어 있는 것도, 예술가가 막달레나의 대리석 머리카락에 독특한 색조를 주기 위해 밀랍과 유황으로 작업했다는 것도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눈을 들어 올려다보았다. 막달레나의 뒤에 거울이 비치되어 있다는 것을 전에는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아마도 관람객에게 관능미를 뽐내는 조각상의 뒷모습과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의 조화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한 큐레이터들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카탈로그에서 막달레나의 첫 번째 소유자였던 쟘바티스타 솜마리바가 실크벽지를 두른 어두운 방에 작품을 두고 두 개의 설화 석고 램프만으로 조명을 비춘 후 작품의 디테일에 감탄하면서, 조각상의 드러난 등허리와 가슴에서 흘러내리려고 하는 옷과 몸의 부드러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의 뒤에 거울을 배치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놀랄 일이 아니다. 이것은 여느 조각상들과는 다르니 말이다. 내가 일부러 시간을 오래 두고 시선을 두지 않았다면 이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
디지털 정보를 연구하는 UCI 도날드 브렌 정보 컴퓨터과학 대학 연구실의 글로리아 마크가 들려주는 다음 실험 결과에 주목해 봅시다.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다른 기기로 시선을 돌리거나 스마트폰 키보드 위를 엄지 손가락으로 두드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측정했다고 합니다.
10년 전에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3분마다 옮겨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겨우 3분이라니. 4년이 지난 후 다시 연구를 진행했는데, 한 화면 앞에 머문 시간이 1분 15초였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연구를 다시 진행해 본 결과 40초로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 있다거나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라 가정한 후 40초를 세어보면 그 몇 초의 짧은 시간으로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요?
글로리아 마크는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메시지와 알림으로 끊임없이 주의가 산만해지고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멈추고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채팅을 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확인한다는 것을 연구로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각한 것은 쉬는 시간이 끝난 뒤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 평균 25분이 소요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에는 까톡이든 인스타그램이든 구글이든 네이버든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생산성은 집중력과 깊은 관계가 있으니까요.
스마트폰의 노예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적어도 필자 주변에는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너무 자주 듣습니다. “나 치매인가 봐.”, “예전 같지 않아.”, “중독됐어.”
스마트폰을 통해 얻고 누리는 게 많지만 우리의 집중력과 맞바꾸기엔 대가가 너무 큽니다. 그러니 집중력을 되찾기로 작정해 보아요. 중요한 일을 할 땐 스마트폰의 방해금지 모드를 먼저 설정합시다. 가방 깊은 곳에 묻어두는 건 더 좋은 방법이겠네요.
그리고 무엇이든 오래 보고, 깊이 보기로 해요. 뇌에 꼭꼭 묻겠다는 의지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천천히 보기로 해요. 우리 모두 잘 아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으로 마무리합니다. 무엇을 대입해도 맞는 말이라서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