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과 대리 시절에는 온종일 일 생각뿐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홀로 만리장성을 쌓곤 했죠. 드라마 주인공처럼 성공에 취한 꿈을 꾸기도 했어요. 그런데 왜일까요? 야심만만하게 아이디어를 펼쳐 보이려 하면 매번 용두사미가 되고 맙니다. 내가 어젯밤 펼친 아이디어는 이런 게 아닌데, 엄청 거대한 건데, 성공할 수밖에 없는 건데 PPT에 옮겨 적을수록 작고 초라해지더군요. 그럼에도 아이디어 자체는 밀어볼 만 하기에 상사가 알아봐 주길 기대해 보지만 ‘해봤는데 안 돼.’라는 피드백이 돌아옵니다. ‘아니 이건 다르다고요, 왜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냐고요!’ 나 홀로 외침 3초 후 나는 타성에 젖은 선배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했습니다.
필자만의 얘기는 아니고, 그 시절 동료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했던 얘기들이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합니다. 선배들 뒷담화로 끈끈하게 하나 된 우리 햇병아리들은 그래서 인연을 오래 이어가며 지금은 그 시절의 치기를 안주삼아 깔깔거리고 있어요. 여러분들의 이야기기도 하지요?!^^
타성에 젖은 선배들을 반면교사로 삼기도 했지만 어떤 선배들은 엄청 크게 보기도 했어요. 하루에도 두세 번 외부 미팅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슈를 조율하는 이사님들과 대표님을 ‘문제해결사’ 내지는 ‘타고난 사업가’로 보며 ‘나도 저런 날이 올까? 에이, 난 아예 그릇이 다른 걸.’ 감히 꿈꾸지 못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이사님들, 대표님의 나이가 지금 필자의 나이보다 어리더군요. 와… 지금의 나는 아직도 못 푸는 문제가 많고 여전히 먼지만 한데, 그 시절의 선배들도 필자의 눈에만 태산처럼 보였을까요? 그분들도 늘 발버둥 치고 몸부림치며 일하셨을까요?!
남의 일은 작아 보이고, 내 일은 커 보이는 게 사람 심리죠. 남의 일은 거리를 두고 보기에 작아 보이고, 내 일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기에 커 보이나 봐요. 조금 어른이 됐다고 이제는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긴 시간 몰입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거리두기가 필요해요. 현미경에서 눈을 떼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게 정답입니다.
내게서 눈을 들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태산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나와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이 위안을 줄 때가 있습니다. 태산 같은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거친 후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귀 기울이면 다시 힘이 납니다. 몸부림치는 나의 이 삶이 사실 보편적 삶이란 걸 깨닫는 순간 비로소 폐를 가득 채우던 긴장감이 스윽 빠져나가고 숨이 쉬어집니다.
필자는 지금 통영 여행 중입니다. 박경리 기념관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걸린 문구를 보고 울컥했어요.
저는 원고지를 메울 때마다 언어가 도망가는 것을 봅니다.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감동을 글로 옮기려 하면 그것이 저만큼 달아나 버립니다. 그 달아나는 말들을 붙들기 위해 쓰고 쓰고 또 씁니다. 한을 풀기 위한 노력입니다.”
작가도 아니면서 평소에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필자라서, 텃밭 가꾸며 소소하게 끄적이고 사는 게 꿈인 필자라서, 옮겨 적지 못하고 놓친 생각들이 너무 많아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만 아는 어떤 서러움이 몰려왔고, 그래서 위로받았어요. 태산 같은 박경리 작가님도 그랬구나. 그래서 계속 글을 쓰셨구나. 마음에 담긴 게 너무 많아서 쓸 수밖에 없었구나. 도망가는 언어들이 아쉬워 많은 날들을 속앓이 하셨겠구나.
기념관은 작가님의 삶과 그녀의 문장들로 가득했습니다.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문장들이 따뜻한 손길의 형상으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으며, 인생의 수수께끼를 다 풀고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 그 어느 문장보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필자는 활자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들을 좋아하죠. 또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유플리더분들을 만나 인터뷰할 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일하면서 만난 후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을 때 리본님이 들려주셨던 이야기, ‘스트레스가 많으실 거 같은데 어떻게 푸는지’ 물었을 때 등산을 한다며 그 이유에 대해 들려주셨던 에단님의 이야기, ‘센터장으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물었을 때 우리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가고 싶다던 용용님의 이야기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한토막의 이야기일지라도 그 이야기를 통해 상대를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됩니다. 이해의 폭이 확 늘게 되고 한동안 회자된 드라마 속 명대사가 그대로 적용되죠.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너를 알아.
사람들은 대게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곁을 내어주는 법이라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들은 상대를 평가하기보다 경청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상대의 부족함에도 너그럽습니다. 살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기에 인생을 그리 거창하게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지도 않으며 중도를 지킬 줄 압니다. 그러니 여유가 있죠.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보세요. 겸손한 이가 들려주는 겸손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의 좁은 시야를 넓힐 수 있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사실은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며, 지금까지 못했어도 오늘부터 다시 나아가면 된다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나는 실력이 부족합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 마음이 겸손함 같지만 사실은 교만이라는 것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준비한 후에야 짜잔! 해내겠다는 태도는 지나친 자기애라고 하네요. 혹은 영원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완벽주의의 허점에 빠진 걸 수도 있고요. 그러니 완벽한 자아에 대한 허상을 내려놓고 나를 완성해 가는 여정에 자신을 편하게 놓아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렇게 보편적 삶에 나를 맡기면 인생 앞에 절로 겸손해집니다.
겸손이 있고 없고에 따라 먼지만 한 선배, 태산 같은 선배로 나뉜다면 오버일까요? 그래도 필자는 오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기특하다. 확실히 나 때보다 요즘 것들이 더 똑똑해. 이 부분만 이렇게 저렇게 보강해 보고, 다시 얘기해 보자.” 이런 선배가 되어보자고요. 역지사지는 만고의 진리잖아요.
유플리트의 선배님들, 오늘 하루 따뜻한 시선으로 후배들을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후배님들, 용기를 내어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보세요. 이게 ‘나의 성장, 좋은 동료, 일의 즐거움’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거예요.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