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일화입니다. 전공수업에서 2인 1조 과제가 있었는데, 교류가 없던 후배와 짝이 되었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데, 수업이 끝난 후 후배는 바로 사라졌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전화를 반복하기보다는 콜백을 기다리는 편이라 ‘사정이 있겠지.’ 하며 기다렸고, 슬슬 만나야 하지 않나 조바심이 나려던 차에 알아서 하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별다른 수식 없이 용건만 담긴, 나름 정중한 문자였습니다.
발표날이 되자 후배는 평소의 과묵한 모습을 벗고 타고난 연사처럼 강의실을 장악했어요. TV에서나 보던 기업의 PT 현장처럼 그의 능수능란한 모습에 감탄하고 말았지요. 필자는 그렇게 점수를 거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찝찝함이 있었으나 화가난다거나 부끄럽다거나 등등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은 건 어지간히도 무덤덤한 필자의 기질 때문이라 생각하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묻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사실 그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만 무덤덤한 기질을 핑계로 ‘그럴 수 있지.’ 묻어두었던 거죠. 조금 더 어른이 된 지금에야 ‘그래도 어떻게든 연락해서 같이 할 걸 그랬어. 가만히 기다리기만 한 나도 공범자야.’ 생각하게 되네요.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이유는 필자의 무의식이 보내는 비상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필자는 그의 행동을 (무의식 중에)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역시 나처럼 완벽주의자였고 나 또한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완벽주의자에게는 혼자가 빠르고 편합니다. 친분이 없는 필자와 이런저런 격식을 차린 후 역할을 분담하고 진행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만나는 것보다 연락을 쌩까는 불편을 택하고, 홀로 준비하는 게 편했을 거예요. 같은 종족이기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필자의 선택은 협력보다 후배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습니다. 둘 다 참 어렸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 필자는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어요. 존 에이커프의 [FINISH. 힘 빼고 가볍게 해내는 끝내기의 기술] 책을 본 후에야 내 약점과 직면했습니다. 단언컨대 (완벽주의 기질 때문에) 뭐 하나 끝내기가 버거운 사람이라면, 캐주얼하고 경쾌하지만 톡 쏘는 이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왜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 안에서 모순을 발견할 때도 있고요. [FINISH] 책에서 발췌해 볼게요.
‘극도로 이기적인 뻐꾸기는 산란기가 되면 다른 새가 지어놓은 둥지를 찾아간다. 그들의 목표는 다른 새로 하여금 자기 자식을 대신 키우게 하는 것이다. 이때 둥지의 주인인 다른 새들은 정작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뻐꾸기 알이 부화하는 시기가 더 빠르다. 그래서 대체로 알들 중 가장 먼저 부화한다. 부화한 뻐꾸기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날카로운 부리를 사용하여 다른 알들을 부숴버리는 일이다. 다른 알들이 이미 부화를 한 경우 뻐꾸기는 어미 새가 먹이를 찾으러 간 사이 같은 둥지를 쓰던 형제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어미 새의 아이들은 차례로 죽어간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몸집이 큰 종을 먹여 키우는 일은 어미 새를 지치게 하고 만다.
놀랍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우리의 인생에 뻐꾸기처럼 가장하고 숨어 있는 ‘비밀 원칙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보고 들어서 배운 것이든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든 우리는 자신만의 그릇된 인생 원칙을 세우고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비밀원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책 안에서 2개 사례를 발췌해 볼게요.
‘2008년에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대단한 인기를 끌며, 개설한 지 9일 만에 4000면의 독자가 생겼다.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는데 그에 반해 당시 내가 세운 원칙은 ‘10일 안에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라는 것이었다. 시작한 일이 곧장 어마어마하게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나는 계획하고 시도한 일을 쉽게 포기하곤 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내 둥지에는 완벽주의가 심어놓은 비밀 원칙을 재잘대는 뻐꾸기들로 가득했다. 거의 10년 가까이 그 원칙을 고수해 온 결과, 내게는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내 아버지는 교회의 목사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아버지께서는 누군가 자신에게 고급 승용차를 준다면 그 차를 당장 돌려보낼 것이라는 말을 내게 수차례 하셨다. 성공을 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든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편견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뻐꾸기의 거짓말 때문에, 나는 지난 6년을 조금 힘들게 보냈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믿겠다. 갑자기 얻은 성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더 큰 성공을 거둘수록 그들의 죄책감은 함께 커진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보험회사 대표이사는 연봉이 2000만 달러래. 그 연봉을 받고 어떻게 부담감을 견디지? 밤에 잠이나 편히 잘 수 있을까?”
나는 “아마 헝가리산 거위 털 이불을 덮고 침대에서 편안하게 자지 않을까?” 말하고 싶었다. 친구는 성공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소득이 특정 수준을 훨씬 웃돌면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감으로 더 이상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게 대체 무슨 기준이란 말인가?’
당신에겐 어떤 그릇된 신념이 있나요? 떠오르는 있다면 다행입니다. 뻐꾸기처럼 둥지에 숨어 우리의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비밀 원칙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해야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된 거니까요.
비밀 원칙들을 없애는 방법
하나, 비밀 원칙을 인지한다.
둘, 비밀 원칙을 파괴한다.
셋, 비밀 원칙을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필자의 뻐꾸기는 ‘뭐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스스로 해결하는 게 현명한 것’입니다. 그럴 듯 하지 않아요? 하지만 함정에 빠지는 느낌이 들곤 했어요.
[스스로]
[끝까지 책임지는 것]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 신념을 일순위로 붙잡고 사느라 힘들었어요. 이 두 가지 원칙이 막강하게 심겨져서, 이게 안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괴로웠나 봅니다. 다행히 이제는 달라요. 함께 하는 힘을 믿습니다. 혼자 꾸역꾸역 성취해 내는 결과보다, 함께 성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나를 키워간다는 것을 알아요.
첫 직장 첫 워크샵이 설악산 등반이었는데, 필자에겐 인생 첫 등반이 하필 설악산이었죠. 이 악물고 한 치 앞 땅만 보고 죽어라 오르고 실려오다시피 내려왔어요. 그리고는 다음날 엄청난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다시는 내가 등산을 하나 봐라!” 외쳤습니다. 지금은 설렁설렁 풍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가 아니라 풍경을 즐기는 게 목표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인생의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성취인 줄 알았는데, ‘함께’가 들어가야 의미가 있더군요. 혼자 일궈낸 성취는 (완벽주의자에게는) 또 다른 성취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직진하는 길에 또다시 날 몰아세우게 되고요. 함께 하는 동료가 있다면 나만의 시야, 나만의 신념, 나만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다양성을 배우게 됩니다. 서로를 부수고 서로를 채워주는 과정에서 더 나은 우리가 될 수 있죠. 아프다고, 귀찮다고, 맞지 않는다고 피하기보다 잠깐의 불편함 뒤에 찾아올 성장을 기대하며 ‘나의 성장, 좋은 동료, 일의 즐거움’을 실현해 가길 응원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데, 거실 창가에서 시들어가는 화분이 보이네요. 문득 타운홀미팅에서의 윈디님 메시지가 떠올랐고, ‘화초가 목말라 보이면 물을 주듯 우리도 서로 부족할 때 채워줘야지.’ 상기하며 흐뭇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리더십 개발 전문가인 김현정 교수님의 영상에서 발췌하여 윈디님이 전해주신 내용입니다.
“리더의 ‘취약성’이 드러나면 조직원이 심리적 안전감을 더 가질 수 있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조사해 보면 ‘심리적 안전감’이 1위인데, 일과 관련된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비난받거나 조롱받지 않으며, 과도한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나 리더의 취약성이 드러날 때 조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손흥민 선수의 예가 와닿았어요. 이기면 기뻐서 울고, 지면 바닥에 앉아 우는 손흥민 캡틴. 비난하려던 관중들은 우리도 속 터지는데 선수들은 얼마나 더 속상할까 싶어 위로하고 싶어지고, 함께 뛴 동료들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실패율을 줄이는 게 성공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시대이기에 리더도 부족하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게 바람직한 리더십이라고 하네요. 리더뿐일까요?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게 주저된다면 그것이 나의 뻐꾸기는 아닐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부족함이 드러나야 채워지고, 채워가며 성장하는 법이니까요.
지금 시들어가는 누군가가 보이나요? 물 주러 갑시다! 누가 나를 응원하나요? 힘냅시다! 그렇게 ‘나의 성장, 좋은 동료, 일의 즐거움’이 실현되는 유플리트의 9월을 기대할게요!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