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
요즘 속이 허해서 책을 읽으러 왔다. 사실 배는 주로 더부룩한데, 머릿속이 허하단 느낌이 들어서.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야 하는 일과를 거치다 보니 든 게 없는데 뭘 내보내지?라는 고민이 생겨, 움직이기로 했다.
3일 동안 책을 읽자고 결심했다. (사실 더 오래전일 수도.) 돈을 주고 책을 샀는데도 읽지 않는 내 모습에 나름의 죄책감과 동기부여를 함께 느껴 결국 책을 읽으러 나오게 되었다. 마치 운동을 억지로 시키기 위해 헬스장을 3개월을 등록해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된 것 같달까.
카페에서 책 읽기 좋은 시간은 평일 오후 4시 즈음. 부지런한 사람들과 점심 후식을 즐기러 왔던 사람들이 슬슬 헤어지거나 다음 일정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쯤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쯤엔 오로지 카페 관계자와 스피커와 나만 남는 경우가 많다.
눈치 보지 않고 책 읽기 딱 좋을 자리를 골라 앉는다. 오늘의 자리는 내 키의 1.5배는 될 것 같은 창문 앞이다. 정사각형이고 통창이다.
책을 읽는데 통통한 똥파리 한 마리가 신경을 거슬린다.
무시하고 책을 읽으려 부단히 애를 쓰니 잊혔다가 탁탁하고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어본다. 파리는 계속해서 모든 창문에 발자국이라도 남길 기세로 열심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창문을 뚫고 나가려는 것처럼 날갯짓도 끊임없이 함께.
창문이 바깥인 줄 착각하는 듯했다.
바깥인 줄 알고 열심히 기었는데 실은 창이란 걸 알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허망할까. 때론 내가 그러고 있는 걸까 봐 가만히 서서 살핀다. 내가 파리일까봐.
바람은 부는지,
더운지 추운지,
가고자 한 목적지가
1cm라도 가까워졌는지.
무작정 앞으로 가려고 힘만 주는 게 아니라
뒤를 돌아 출구를 찾아야할 때는 아닌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몇 시간 내내 창문만 서성이던 파리.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