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반성합니다
누구인가.. 누가 재택근무가 쉽다는 말을 내뱉었는가..
사실 나는 재택근무를 해보기 전, 세상 이거보다 이득인 게 어딨냐는 생각을 했었다. 출근 지옥철 안타도 되지, 늦을까봐 전전긍긍 안해도 되지, 퇴근길에 스트레스받으면 한번씩 쓰던 시발비용도 줄지.. 쓰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쉬워질거라 생각했고 쉬워진 것도 맞는 것 같은데 난 왜 쉽지가 않을까?
모든 구분이 사라졌다.
1. 출근길이 사라졌다.
출근길이 사라지면 그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나마 하던 외출이 없어진 기분이 든다. 아침마다 걸었던 길,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을 구경하고 마주친 수많은 물건들을 구경하는 게 의외로 내 기분을 환기시켜주는 것들이었나보다. 난 약속을 구태여 잡지 않으면 아주 나갈 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시국에 약속을 잡을 리도 없다. 하루 종일 20여평이 되는 박스 속을 거닐며 먹고 자고 싸고 일하는 게 전부가 되니 갇힌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출근길은 일종의 일을 하러 가는 나의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눈을 뜨자마자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장점같지만 준비운동 없이 수영을 시작한 몸처럼 삐걱였다.
2. 외출복을 입지 않는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일하는 모습은 내가 정말 오랫동안 염원하던 부분이다. 처음엔 내 몸의 어느 작은 부분조차 옥죄이지 않는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난 그동안 "그 옷"을 입고 일을 하는 데 습관이 된 탓인지 편안한 옷을 입고 일하는 것이 정말 어색했다. 몸은 편안한데 왠지 일을 시작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3. 식사시간이 불규칙해졌다.
언제든 원하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만 먼저 하고, 저것만 먼저 끝내면 이라는 말로 식사를 미루는 빈도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점심은 점점 저녁에 가까워지고 저녁은 심야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더부룩한 배로 잠드는 건 좋아하지 않다 보니 수면시간까지 늦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학교종"이라도 설치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딩동] 지금은 일하는 시간입니다.
[딩동] 지금은 쉬는 시간입니다.
[딩동] 지금은 밥먹는 시간입니다.
결국 나는 슬슬 알람을 맞추기 시작했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대로 일하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를 체계화시키기 시작했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나와의 약속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보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을 더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달차쯤이었나 나는 나도 모르게 "회사 가는게 속편하다"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재택근무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잠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을 꼭 분리하고 알람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추천한다. 처음 일주일은 전혀 그럴 생각이 안날 지 모르지만 한달차쯤이 되면 "이래서 그런가보다"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집에서 일을 하는 공간을 만들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키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나는 아직도 적응을 조금이라도 한 건지 의문이 든다.
매일을 다짐하며 산다. 오늘은 꼭 12시에 자야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보다 억지로 잠드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재택근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