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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프리랜서 Jan 28. 2021

우울의 법칙 2: 평소엔 멀쩡해요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껄?

제목을 적어두고 쳐다보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했다. 당연히 평소엔 멀쩡하겠지. 우울이 특별한 순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평소"에 우울이 포함되어 있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티를 안내고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을 잘한다고 해야 하나? 낯짝이 두껍고 가면을 잘쓰는 편이다. 누군가 나의 우울을 알아채는 것도, 내 우울이 전염되는 것도 워낙에 두려워하는 나는 더 빈틈없는 가면을 쓰곤 한다.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의 지인이자 가족이다.

애초에 우울기질이 전염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난 안우울할거야 긍정적일거야 웃을거야 라고 외쳤는데 그게 더 독이 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기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 우울하다 해서 이상한 것도 아니고 모두 우울증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한탄과 고통과 가끔은 이유 모를 분노까지 받다 보니 우울 자체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절대 우울하지 않을거야. 절대 슬프지 않을거야.


이 말은 내가 우울로 빠져들게 만드는 주문과 같았다. 그럴 수록 나는 힘든 마음을 더 외면하게 되었다. 답답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 일기는 즐거운 추억이 아니라 아픈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글로도 해결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나처럼 우울이 시작된 사람들의 큰 특징 하나가 있다. 그들은 분명 우울을 드러내기를 무서워했을 것이다. 내가 그 주변에 있어 봤기때문에, 그 감정을 받아내봤기때문에 그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내 가면이 두꺼워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점점 진짜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 언제나 양가감정에 시달리기도 한다.


죽고싶은데 내가 죽으면 너무 힘들 주변 사람들은 어쩌나. 너무 이기적이다.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말해서 뭐하나.
괜히 저사람 기분만 나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수많은 되뇌임과 트레이닝을 통해 나는 힘든 상태를 표현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누군가 정말 괜찮아요? 진짜로 괜찮아요? 라고 수없이 두드려도 쉽게 깨지지 않는 벽을 만든 것이다. 표현을 하지 않아 흐르지 못하니, 우울이 고여 썩기 시작한다. 이러다보면 난 얼굴만 웃고 당장 몇시간 뒤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실을 나 자신조차 잘 인식하지 못한다. 마음과 머리가 너무 시끄럽기때문에 다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내 상태가 너무 위험함을 인지하고 병원에 간 것이 아니었다.


너무 단순했다.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되니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간 병원에서 나는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분을 기다리다 첫 상담을 하게 되었다.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위로보다는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우울은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사고와 같은 것이고 어쩌다 그런 증상이 나타난 나는 재활치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 나는 평소에도 종종 우울에 빠지곤 하지만 제목과 같이 멀쩡하게 살아간다. 우울을 어떻게 떨쳐낼지 이겨낼지 혹은 고칠지 이런 노력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그런 상태에 적응하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이렇게 평소에는 멀쩡하게 우울과 같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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