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내린 비인지... 어둔 새벽녘이었는지, 해가 떠오른 이른 아침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많은 비가 퍼붓듯 내린 뒤에 조용히 찾아온 아침.
거리는 빗물로 젖어있었으나 비는 멈추었고, 따스한 해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날씨였다.
그 와중에 시원한 바람은 청량했고, 하늘엔 적당한 구름이 덮여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고, 습한 날씨 속에 끈적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청량하고 산뜻한 날씨.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이혼하기 딱 좋은 날.
너무 화창하지도 않고, 글루미 하지도 않고
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날씨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내 감정도 추스리기 힘든데
적당히 한두 방울씩 뿌려주어 좋은 날씨
마음이 착잡하고 기분이 가라앉을수도 있는 이유가 내 마음 탓이 아닌 날씨 탓이라 여길 수 있는
이혼하기 딱 좋은 날
오늘은...
원래 계획 대로라면, 남편과 이혼하기로 한 날이다.
이혼한다고해서 이혼이 바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나, 법원 앞에서 만나 이혼 서류를 제출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오지 않았다.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마도... 앞으로 시작될 일들은 또 지난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이혼 서류를 제출한 뒤, 오후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러 가기로 계획한 날이었는데
이혼도 못하고, 복숭아도 날아가 버렸다.
날씨 탓에 복숭아 수확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 이혼. 내 복숭아.
오늘은 다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