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마일리지

by 아인잠

3년 전 일이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7살, 셋째가 4살이었을 때, 한창 시끌벅적하고 둘째와 셋째의 목소리가 집안을 울릴 때였다


둘째 아이가 뭔 일로 셋째에게 화가 난 상황이서 울먹이면서 언성을 높였고, 셋째는 오빠에게 지지 않고 떼를 쓰고, 집안이 소란스러웠다.

이쯤에서 개입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첫째가 동생들을 책상 앞에 모으고
크레파스를 쥐어줬다.


"00(둘째)야, 화가 나고 괴로울 때는
자, 일단 이 종이에다 3분 동안 마음껏 그리고 칠하고 찢고 하고 싶은 것을 다해.
그러다 보면 3분이 안되더라도
너의 마음이 편안해져 옴을 느끼게 될 거야.
그렇다면 그다음엔 그려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려봐.
자, 구름을 노란색으로 칠해보는 건 어때?
아니면 하늘색?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어떤색이든 괜찮아."

"00(셋째)도 이리 와. 오빠 때문에 놀랐을 텐데 00도 그려봐. 아직 어리지만 칠할 수는 있어
오빠도 그리고
너도 그려
언니도 옆에서 그릴게."

그런 이야기들이 들렸다...
나는 안방에 누워서 아이들 소리를 가만히 듣고 누워있었다.
보통 내가 밤 9시 30분쯤 안방에 들어가 누워있으면 아이들이 놀다가 10시에 자러 들어오는데 항상 그 30분 정도의 시간을
첫째가 동생들을 리드하고 나는 관망하는 시간이다. 지금은 밤 9시 30분에 들어가 안방에 누워있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면교육을 위해 자는 분위기를 만들었었다.


래서 아이들에게 뭔 일이 벌어지면 나는 한쪽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이 해결해나가고
상황이 종료되면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들이 잠들고 거실에 나와보니 테이블 위에
아이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이 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얼마나 많은 그림들을 그려놓았던지,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가득이었는데, 그중에 눈길이 가는 그림들이 있었다.




>>> 첫째 아이가 그린 그림


>>> 둘째, 셋째가 칠해놓은 배경으로 첫째 아이가 사람을 그려 넣은 그림


>>> 동생들 옆에서 그려놓았을, 첫째 아이의 그림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싶었다.

내가 화내고, 남편이 화내고, 다 화내고

모두 화내고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일어날 때에는 그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주려 노력했다.


화를 내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훈계도 아니고 양육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들어주고, 듣기를 원했고 아이들은 할 수 있는 표현으로 표현했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아이의 마음이 달라질 일인가?
내가 언성을 높인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될 일인가?
내가 말로 타이른다고 해서 생각이 변화될 일인가?
나의 무엇으로 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고쳐질 일인가?

그런 생각으로 잠시 기다리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면 아이가 스스로 기분이 진정되고
나에게 다가오는걸 많이 겪었다.
아이가 흥분했거나 감정이 격해졌을 때엔
어차피 내 말을 안 들으니 그땐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오히려 비축했다가 나중에 해결하는 쪽이다.
그게 내가 덜 힘든 방식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인 것 같아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그런 규칙들이 생겼고, 우리만의 문화가 된 것 같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우린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피어난 이야기들, 웃음꽃들, 수많은 그림들과 우리의 인내들,

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 믿는다.



육아는 부모의 인내와 기다림으로 마일리지가 적립되고, 치사랑으로 돌아오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육아의 마일리지를 요즘 쓰고 있는 것 같다.

과분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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