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지만, 우린 가족이야

by 아인잠

곳곳에 피어난 꽃들이 너무 아름다웠던 어느 해, 봄이었다.

6살이던 아들과 길을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들과 나는 제법 성숙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이쁜 꽃들이 피어나는 이유를 알아?"

"글쎄... 봄이니까... 겨울 내내 움츠렸던 꽃잎들이 따뜻한 기운에 피어나는 것 아닐까?"


"그건 말이야.. 멋진 잎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야. 꽃이 피면 곧 잎도 피거든.
같이 있으면 더 아름다워."


"우와~ 정말 멋진 표현이다... 시인 같아.
꽃도 이쁘고 잎도 이쁘지. 봄의 색깔은 참 아름다운 것 같아."


"이 꽃도 이쁘고 저 꽃도 이쁘고...
이리 와봐, 이건 민들레지...
노란 민들레도 곧 하얗게 될 거야. 바람에 막 날아가서 또 꽃을 피우게 될 거야."


"정말 멋지다. 민들레는 날아가서 꽃을 피우고
재밌겠네. 여긴 민들레들이 많이 있네?"




그렇게 한창 여기저기 꽃구경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탐스럽게 모여 피어있는 꽃을 보고 있노라니, 아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엄마... 왜 외할머니는 가족이 없어?"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가족은... 엄마인데 엄마가 아빠랑 결혼해서 떠나온 거지. 그래서 아이들을 낳고... 식구를 이루어서 사는 거지.
나중에 00도 크면 엄마 아빠로부터 독립해서
00의 가족을 이루고 살게 되는 거야."


"그래서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 하고만 살고 가족이 없는 거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게 돼.
나중에 엄마 아빠도... 그렇게 되지.
몸은 떨어져 있지만 보고 싶으면 만나서 보고
전화하고. 계속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거야

아이들은 커서 자기 가족을 만들어서 사는 거야,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많은 가족이 생겨나서 살게 되었지."


"그래도 가족이 너무 없으면 불쌍해"


"우린 지금 가족이 많지만...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독립하는 거야
멋진 어른이 되어서. 멋진 아빠가 되어서
너도 나중에 00처럼 귀여운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될 거야. 떨어져 있지만 우린 다 가족이야.
...자 자기 집에서 사는 거지."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날이 있었다.

아이가 커서 독립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다가 독립해서 나와서, 어이없게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 나름의... 가족.




어느 날, 아들의 친구 녀석이 집에 놀러 와서 맹랑하게 물었다.

"저기요, 그런데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이혼하셨어요?"


어느 날, 딸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모르는 척 물었다.

"근데 이 집에는 왜 아빠가 없어요?"



'요즘 애들', 무섭다.

직설적이고, 아무 생각 없다. ㅎㅎㅎ

나 참, 어이가 없네 ㅎㅎㅎ


우리 집은 부자라서 집이 두 채고,

저쪽에는 아빠 집, 이쪽에는 엄마 집,

아이들은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아빠와 만날 수 있고, 엄마는 이 집에서 독서논술 수업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여긴 사업장으로 꾸민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부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우리 집에는 아주 먹을 게 많거든.


놀러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우리 집은 항상 즐겁고 편안하거든(근데 너는 오지 마, 아줌마가 속이 좁아서!)


됐냐? 그래서 우리는 집이 두 채인 가족이다.



나는 민들레를 보면,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도 많지만, 민들레는 왠지 척박해 보이는 길가나 모퉁이, 시선이 닿지 않는, 널브러져 있는 땅에서 어느 날 보면 피어있고, 또 어느 날 보면 피어있고, 그러다 보면 없어지고, 그러다 보면 없어지고...


환영받을 때는 동네 꼬마들이 너도 나도 솜사탕처럼 들고 다니며 후후 불어대는 때인 것 같으니...


나는 민들레가 참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올봄에는 민들레가 유난히 강인해 보였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눈길이 닿든지 발길이 닿든지 이도 저도 아니어 혼자 지든 피든

민들레는 자신의 때에 한껏 피었다가 제대로 날아오른다.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보면서, 민들레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기다린 것이구나, 홀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홀씨를 피워내고 있었구나,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날아갈 때를 준비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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