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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Oct 17. 2019

우리 열심히 재미있게 놀자

중 1때까지는 놀아줄게, 다음부터는 각자 놀자

세남매를 키워오면서 내 머리 속에 남아 맴도는 사진 한 장 있다.


이 사진, 이 한 컷의 그림이 내 마음 속에 항상 머물러있다.

외할머니가 사주신 비싼 털모자. 내 기준에 비싸다고 절대 사주지 말라고 했는데, 외할머니가 손녀가 이쁘니 사주셨고, 아이는 세상에 다시 없을 행복한 표정으로 작아서 못쓸때까지 겨울철이되면 한참을 하고 다녔다.

 엄마를 사랑하는 친구가 사준 분홍잠바에, 아는 언니에게 물려받은 분홍목도리에, 어디서 물려받은 줄무늬 바지에,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사준 첫 운동화를 신고 폴짝폴짝, 달음질은 얼마나 잘 하던지.


뛰다 넘어지면 벌떡 일어서고, 아장아장 뒤뚱뒤뚱 걷다 뛰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일어날때는 찡찡대고 아파하는게 없었다. 넘어지는것마저 재밌다는 듯이, 큰 아이는 그렇게 컸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내 상황과, 감정과, 일들과,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떠올라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에너지와 호기심이 흘러 넘치고 넘쳐, 휴지도 흘러넘치게 만들고

하루도 집안이 멀쩡한 날이 없었다.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놀이터를 온종일 돌아다니며 놀면 한여름 땡볕에 내 얼굴은 홍당무로 익어갔고,

그런 내 모습을 고층 아파트에서 다른 엄마들이 내려다보면, 나를 두고 이렇게 얘기나누곤 했다고 한다.

"어머, 어떡해, 저 엄마 진짜 힘들겠다!"




그런 첫 째를 꼭 닮은 셋째.

야무지고, 고집있고, 셋 중에 가장 자기 목소리 내어서 할 말 다하는 것 같은 셋째. 막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보니...




누구냐 넌...

어린이집 다녀오면 몸만 그대로 빠져나와서 자기 할 일 하고 노는, 힘과 기분이 넘치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아이. 나닮아 소심하지 않고 대범한 구석이 있고 말이 많다.

 

자전거를 배우더라도

첫째는 '엄마 놓지마, 놓지마, 절대 놓으면 안돼'하며 3일 타고 배웠어도

막내는 '엄마 잡지마,잡지마,절대 잡으면 안돼'하며 3번 넘어지고 하루만에 탔다.

둘째는 그 와중에 친구들하고 놀러다니다가 어느날 보니 혼자서 두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도대체 뭘 그리고 싶었던건지는 모르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지 울먹이고 화내기 직전이었다. 좀 있으면 종이를 찢어버리기라도 할 기세였다. 막내가!



그래서 종이를 돌려 봤더니 이런 모양이 나왔다.

'뭔가를 그려볼수도 있을것 같은데?'

그래서 대충 그려봤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막내한테 '엄마 최고!'라는 소리 듣기는 참 쉽다. 그림을 그려주면 된다. 이게 통하는 나이라니! 감사하게 잘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저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주방 한쪽도 내어주고

나는 밥하고, 저는 놀고.

내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하나다.


'찡찡대지 않게 하기'


집안에 찡찡대고 신경질 내는 아이가 없으면 강 같은 평화가 흘러넘친다. 할렐루야!



물감도 내어주고

붓도 내어주고 달라는건 다 준다. 나만 건들지마!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물감 주는 걸 두려워(?)하는데 나는 물감이 제일 만만했다.

치우면 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쉽다. 어려운 것은 아이의 마음에 들어가는 일이고, 아이의 마음이 나로인해 다치지않게 하는 일이고, 아이의 마음에 쓴 뿌리가 자라지 않게 하는 일이다.

아이를 웃기기 위해서라면 애지간하면 뭐든지 한다.아이를 하루에 3번만 웃겨도 엄마와 관계가 나쁠일이 없다. 아이는 행복해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술편지. 한 번씩 흰 종이에 하얀 크레파스로 글자를 미리 적어두었다가 여기 저기 숨겨놓는다. 그러면 아이들이 귀신같이 찾아내어서 내 본심을 끄집어낸다.


그럼 '까불이' 다운 답장이 돌아온다.



우리의 추억이 쌓여온 과정은 다른 집들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소소하고 끈끈하게 함께 한 추억이 너무나 많다. 우린 서로의 진상도 묵묵히 바라봤고, 울때 함께 안아주었고, 기쁠때 함께 춤을 추었다.

지내온 과정을 다시 육아일기로 써보는 이유는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아이의 마음, 내 마음

아이의 표정, 내 표정

우리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이제 좀 더 한 뼘 물러선 시선에서 이야기들을 남겨주고 싶어서 글로 쓰고있는 요즘이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 글이 전해질때, 엄마의 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함께해왔는지 고스란히 느낄수 있게 되면 좋겠다.


세상에 다시 없는 존재,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누구에게나 자식은 특별하지만, 내가 지나온 세월 속에서 아이들은 내게 등대였고, 산소였고, 햇님이었고, 선물이었다.


아이들과 노는게 를 살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아이들을 지켜온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지켜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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